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제 좀 지겨울 법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좀 지난 사건이니 만큼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해볼 문제일 것이라고 봅니다. 다들 알고 계시듯 설 연휴 마지막 날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했고, 언론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그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가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평소 우리가 얼마나 문화재에 관심이 없었는지, 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형편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말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어쨌든 이 일에서 문화재청의 잘못에 대해서는 달리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문화재청과 언론, 시민단체들이 모두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2005년 낙산사에서는 산불이, 2006년 창덕궁 문정전과 수원 화성 서장대에서는 이번과 유사한 방화사건이 있었음에도 이번 사건에서 문화재청의 대처가 상당히 무력했다는 점을 본다면, 문화재청에 대한 비판은 불합리하다고 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언론과 여론의 수많은 비판과 질타, 지금의 문화재 관리 실태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언론이든 시민단체든, 문화재청이든 관계 전문가든 '적정수준의 예산과 인력의 확보',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이런 것들이 이제는 확보되고 지속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기대도 갖게 되는 한편으로 회의적인 생각도 많이 듭니다.

 

그럼,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재, 왜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숭례문이 불탔을 때 왜 그렇게 분노하고, 안타까워하셨습니까?

 

문화재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 가지만 꼽아 보겠습니다. 1961년 ‘문화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한 ‘문화재보호법’은 제1조에서 그 법을 만든 목적으로 “문화재를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아울러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법이 말하는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며,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덧붙여 이론적으로 봤을 때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문화재보호법 말고도 헌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는 헌법 제9조가 그것입니다.

 

물론 이 법조항들에 나타나는 이유 말고도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문화재보호법 제1조 맨 앞부분에 나오는 “민족문화”의 “계승”, 헌법 제9조에 나오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민족문화의 창달”과 같은 이유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것은 별다른 이견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이 두 법 조항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재와 관련되어 보도되는 신문기사들을 분석해보면, ‘문화재’가 '민족‘의 ’전통문화‘란 의미로 계열화되고 있음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의 정당성은 대체로 ‘민족주의’,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 측면에서 구해집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라고 하는 만큼 문화재의 보호도 충분히 내실 있고, 철저하게 이루어져 왔을까요?

 

많은 분들이 충분히 예상하시듯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화재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듯이 ‘개발주의’의 파고에 밀려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라고 하는 ‘민족주의’, 그 민족 문화의 물질적 증거라 할 수 있는 ‘문화재’가 한국사회의 담론을 지배하는 ‘민족주의’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율배반일까요? 그렇게 소중하다 강조되는 민족의 문화유산이 경제개발에 밀려 희생되는 현실이 모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족주의 논리의 내부에 문화재파괴의 가능성은 크게 열려있습니다.

 

많은 민족주의, 탈 민족주의 논자들이 파악하기로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시대에 방어적인 성격으로 나타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시는 제국주의의 시대로 민족주의의 관점은 세계를 적자생존의 세계로 파악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그래서 ‘우리(민족)’도 생존을 위해서는 뭉쳐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서구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바로 개화담론, 민족주의입니다. 동일한 세계관 아래 강자의 입장이라면 팽창적 성격으로 약자의 입장이라면 저항적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와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 간의 차이라면 차이겠지요.

 

이것이 바로 문화재를 밀어버리고 도로를 내버리는 개발논리의 실체입니다.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밀어버리는, ‘민족중흥’이란 기호로 표현되던 개발독재의 ‘조국근대화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생존하기를, 더 나아가 ‘열강’이 되기를 바라는 ‘민족주의’의 논리아래 ‘민족의 문화유산’은 별로 소중하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냥 ‘개발’의 ‘걸림돌’이고, ‘규제’일 뿐입니다. ‘개발’, ‘경제성장’과 동의어였던 ‘서구화’의 반대개념으로 ‘미신’으로 치부당해 없어지거나, ‘전근대적’이라고 단절되고 천대받던 우리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많은지는 번잡하게 설명해 드릴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민족주의라는 관점은 민족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민족’의 ‘찬란’했던 ‘과거’로부터 조선시대로 가며 점점 ‘쇠퇴’했다는 직선적인 역사인식, ‘민족’의 혈통적인 동일성이라는 교조적 전제는 지방과 계층에 따라 같은 시기에도 천차만별의 차이가 나는 문화재, 당시 유물의 해석에도 빈곤을 낳았습니다. 조선 평민의 막사발이 일본의 보물이라는 우월적 시각의 해석도 이런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2006년 12월 KDI 국제정책대학원은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기본조사 및 정책연구’라는 용역보고서를 기획예산처에 제출합니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그러니까 사회적 신뢰수준이 매우 낮은 수준임을 지적하고, 특히 정부와 국회에 대한 신뢰는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신뢰보다도 낮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전쟁, 급속한 도시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존한 근대화, 시민사회의 위축” 등 “우리나라의 근대화과정과 밀접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정부주도의 근대화”로 인해 “시민사회가 위축”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하는 정부의 경험과 역량이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또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인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개발주의를 비판한다’라는 책을 통해 독재정권의 “국가주의적 국가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민주정부의 실패를 지적합니다. 독재정권의 ‘국가 가부장제’ 아래서 시민은 행정에 지적하고 참여하기가 어려워지며,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국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는데, 이렇게 국가 가부장제 아래서 시민은 수동적 주체로 길들여지게 되고, 민주정부에 와서는 ‘정부의 실패’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일어날 때 마다 사람들은 ‘정부의 보상’을 바라고, 이것을 ‘정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데 정부가 민주화된 후, 민주화된 정부는 이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정부 외에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져야함을 말하는 것이고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렇다고 방관해서는 안되겠지만,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숭례문 화재를 비롯해서 문화재의 보호·관리에 문화재청에 책임이 있고, 그 보호의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역량은 전국에 산재하는 모든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매우 부족한 것도 현실입니다. 문화재청이 10년 단위로 발표하는 “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2002)”에 의하면 예산에서는 문화재청 예산이 “정부전체의 투자우선순위가 매우 낮으며 절대액도 부족한 실정”이고, 조직은 “집행기능 위주의 조직 편제 등으로 종합적인 정책 기능이 취약하고 행정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대응능력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보호․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는 문화재 보호운동 등 국민 참여를 보다 확대하고 문화재 보호와 관련되는 NGO단체 등에 대한 지원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숭례문 화재를 거치며 거센 비판 여론 가운데서 또 다른 종류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미디어오늘에서는 고정 칼럼을 통해 문화재에 대해 무관심했던 그동안의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으며, 오마이뉴스에서는 한 인턴기자의 미디어 비평기사를 통해 결과론적이고 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언론의 보도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언론 비평 시민단체인 민주언론 시민연합은 2008년 2월 13일자 ‘숭례문 화재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을 통해 마녀사냥 식의 언론보도들을 비판하였으며, 연합뉴스의 문화재 전문기자인 김태식 문화부 차장 등 문화재 전문기자들은 기자협회보를 통해 지나치게 사건 사고위주의 언론보도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적들이 결코 기우가 아닌 것이 2005년 낙산사 화재 때에도, 2006년 창덕궁 문정전과 수원 화성 서장대 방화 때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이런 보도와 여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언론은 항상 ‘구조적인 모순’, ‘총체적인 부실’을 이야기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누구의 탓을 하는 것보다는, 책임 규명의 무효용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태를 객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언론 보도가 지향해야 할 바이기도 할 것입니다.

 

더디긴 하지만 다행히 문화재청의 업무영역은 넓어지고 있으며, 시민적 자조의 활동이라 할 수 있는 국민신탁운동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2006년 ‘문화유산과자연환경자산에관한국민신탁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유산 국민신탁 법인과 자연환경 국민신탁 법인도 생겨났습니다. 힘든 일임에 분명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런 활동이 고무적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 앞으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용솟음치는 사랑이나 지속적인 관심보다는 보다는 행정역역의 지속적인 확장과 언론의 체계적 비판, 시민사회의 성숙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숭례문, #문화재, #민족주의, #개발주의, #국가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