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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 말 대표적인 문신 겸 학자로 단심가(丹心歌) 등 곧은 절개를 표현한 것 외에 선죽교에서 격살된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이다.

최근 들어 포은 선생의 출생지에 대한 논란이 여러 차례 제기되어 다시금 현장을 찾아보고 기록을 살펴보았다. 기존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정몽주 선생에 대해 시호는 문충(文忠),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게들 알고 있다.

출생지 논란과 관련유적

경북 포항에서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출생지를 오천읍 문충리라고 하고 있다. 그 근거로 포항시에서는 <포항에 뿌리박힌 포은(圃隱)의 자취>란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각종 문헌 기록들을 인용하여 포항시 남구 오천읍 문충리가 선생의 출생지임을 알리고 있다.

실린 일부 내용을 보자. 포은은 영일 문충리에서 탄생하여 인근 오천 구정리에 옮겨 살다가 유년 시절인 9~10세 경에 영천 우항리로 가서 외가댁에 잠시 머물렀고 가족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후에는 영천으로 완전히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포항 일대에 거주하는 영일정씨 원로들의 말도 대체적으로 같다. 문충리는 탄생지이고 구정리는 성장지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다른 문헌 기록들을 인용하여 오천이 포은 선생 출생지임을 밝히고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오천 구정리의 포은 유허비가 있는데, 안내문에 의하면 이 비각은 고려시대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고자 이 지방 유생들이 뜻을 모아 선생의 생장지이고 고택의 유허지인 이 곳에 인조 12년(1634)에 비각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구정리에 유허비각
▲ 유허비각 구정리에 유허비각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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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리 유허비 전경
▲ 구정리 유허비 구정리 유허비 전경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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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오천서원 역시 1588년 포은을 봉사하기 위하여 그가 자랐던 옛 집터 근처인 청림에 창건되었다. 오천서원은 현의 동쪽 10리에 있으며 이광약이 현감으로 와 있을 때 꿈에 한 어른이 와서 보고 이르기를 '현의 동쪽 10리에 곧 나의 집이 있었으나 허물어진 지 오래되어 편히 살 곳이 없다'했고 이로 인해 청림동 포은의 옛 집터를 물어 찾아 거기다가 서원을 지었다. 중간에 고현성으로 옮겼으니 지금도 비각이 있다고 한다.

오천서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서원이다.
▲ 오천서원 현판 오천서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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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서원 전경이다.
▲ 전경 오천서원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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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군데 모두 현재 아직 지정된 문화유적은 아니어서인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영천 임고서원과 우항리 생가터 유허비

영천 쪽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은 이러하다. 포은 선생의 문집이 10여 차례 간행이 되었는데 출생지가 영천 우항리로 최초 기록된 곳은 조선 선조 중년에 교서관본으로 간행된 포은선생문집이다. 조선 세종 21년(1428)에 최초 간행된 구본과 중종 28년(1533)의 신계본 및 선조 초년의 개성구각본이 교서관본보다 앞서 간행되었다.

교서관본 다음으로 선조 17년(1584)에 왕명에 의해 서애 유성룡이 앞선 네 종류 문집의 내용을 교감하여 개찬본이 1585년 7월에 완성하였으나 관국에서 간행하지 못하고 임고서원에서 간행하니 바로 영천초각본으로 불린다.

영천초각본 연보고이에 보면, 지원 3년 정축(충숙왕 복위 6, 1337) 12월 무자일에 선생께서 영천군의 치소 동 우항리에서 나셨다. 처음에 어머니 변한국부인께서 임신하셨을 때 난초 화분을 안았다가 놀라 떨어뜨린 꿈을 꾸고 깨어서 공을 나으셨으므로 몽란이라 이름 지었다.

임고서원은 임고면 양항리에 있으며, 1553년(명종 8)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603년(선조 36)에 다시 지었으며, 이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643년(인조 21)에는 장현광, 1727년(영조 3)에는 황보인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65년 정몽주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복원하였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다시 배향하였다.
임고서원에는 포은 선생의 영정이 있다.
▲ 임고서원 임고서원에는 포은 선생의 영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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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서원내 영정
▲ 포은 선생 영정 임고서원내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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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우항리에는 포은 정몽주 유허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2호)가 있다. 안내문에는 공민왕 5년(1355) 부친상을 당하여 묘 곁에서 3년상을 치르고, 그 후 공민왕 14년(1365) 모친상까지 당하여 역시 3년상을 지내였다. 이토록 지극하였던 그의 효성이 조정에 보고 되자, 출생지인 이 곳 우항리 마을에 비를 세워두도록 하였다. 비는 반듯하고 널찍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우항리 일대는 선생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 우항리 전경 우항리 일대는 선생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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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리 비각 현판
▲ 비각 우항리 비각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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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리에 있는 포은 선생 유허비
▲ 우항리 포은 유허비 우항리에 있는 포은 선생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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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에는 효행을 행한 마을이라는 뜻의 ‘효자리(孝子里)’라는 글귀를 세로로 큼직하게 새겼다. 공양왕 원년(1389)에 세운 것으로, 그 후 잃어버렸던 것을 조선 성종 18년(1487) 땅속에서 찾아내어 비각을 세워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보면 출생지가 우항리인 것으로 보인다.

한 역사적 인물을 후대에 이렇게 기록들을 인용하며 자기 고장의 출신인물이라 하니 서로 지역간의 원만한 합의를 하여야 할 것 같다. 지역간 산재한 정몽주 선생의 유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다시금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태그:#포은 정몽주, #오천서원, #임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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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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