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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 두두물물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여여(如如)합니다. 자연의 한 부분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께서도 당연히 그러하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마디 고언을 할까 합니다. 이것도 다 시절 인연이겠지요.

 

사실 저는 경제나 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다만 지금 논란이 되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보노라면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국토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엄청난 일을 오로지 '경제' 논리만으로 추진하려는 듯해서입니다. 임기 중 경기 부양 효과라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먼 미래의 후손들도 온전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운하 건설의 최대 명분인 '경제성'조차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의견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 당선인께서는 이들 전문가들이 합리적 논거를 들어 우려를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기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저는 불문에 귀의한 출가 수행자로서 이 당선인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존중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말 그대로 참된 이치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와도 부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당선인께서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지금도 자연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장로이시기도 한 이 당선인께서는 어찌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고 하신 이 세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일을 벌이려 하십니까. 기독교의 입장에서 대운하 건설 문제를 바라보면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신에 대한 도전'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결코 당신의 피조물이 처참하게 파헤쳐지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이미 대운하 건설 예정지의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쩌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빈부 양극화에 더하여, 대운하로 경제적 이익을 볼 일부와 그것과 무관한 다수로 양극화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모습으로 안착해야 할 한국의 자본주의가 노골적 천민화의 단계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듭니다. 이 당선인께서 누구보다 앞장서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의 직무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의 전반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특히 환경 문제는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중요한 현안입니다. 개발과 반개발이라는 이항 대립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환경 보호는 이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하면 좋을 일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이 당선인께서도 그것을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당선인께서는 당장의 성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시는지요.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다수의 국민이 이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이 당선인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당선인 자신도 한반도 비핵화, 교육, 청년 실업, 복지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도, 꼭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대운하 문제로 자승자박하시는지요. 산에 사는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CEO의 눈이 아닌 생명의 눈으로

 

외람된 질문이지만 대운하 예정지의 현장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물론 그러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설 회사 CEO의 눈이 아니라, 생명의 눈으로 한강과 낙동강을 비롯한 우리네 생명의 젖줄을 육친적 연대감으로 바라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곳을 흐르는 건 물만이 아닙니다. 역사와 문화, 신화와 전설이 흐르고, 온갖 생명이 흐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운하는 경제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 당선인께서 의욕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보인 청계천 복원사업은 (물론 다양한 비판도 있지만 이 편지에서는 논외로 하는 것이 순리이듯) 순리이자 순천(順天)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운하 구상은 한반도의 근간인 백두대간을 두 동강 내고 생명의 젖줄을 절체절명의 궁지로 빠트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땅을 사무치게 사랑한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밝혀 놓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고 한 산과 강의 존재 방식은, 국토의 체(體)인 산(山)과 국토의 용(用)인 강(江)이,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명을 거두는 원리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백두대간은 이미 삼팔선이라는 비극적인 철조망으로 단절된 지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여기에다 대운하의 거대한 물길이 백두대간의 몸통을 자른다면 마침내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유장한 민족정기의 근원은 세 동강이 나고 말겠지요.

 

이는 산천 조화의 원리를 훼손하는 일이자,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차마 못할 짓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런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미래 세대들로서는 조상들이 뿌린 인(因) 때문에 엄청난 재앙의 과(果)를 받아야 할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무섭습니다. 백두대간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유사 이래 독자적 생태계를 유지해 왔던 낙동강과 한강의 경계를 무너뜨리면, 이 땅의 생명질서는 회복 불능의 교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가 수없이 많은 사례로 증명해 보인 바를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이 땅의 산하는 대통령의 것도 아니요, 몇몇 학자들이나 경제인들만의 것도 아니요, 여당이나 한 정권만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인 동시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나 미래 세대들의 살붙이입니다.

 

설사 경제성이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최후 보루를 버리고 눈앞의 신기루를 좇아 끝끝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요? 검증되지도 않은 대운하의 경제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한 번 파헤쳐지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금수강산을 임기 내 실적의 제물로 삼아야겠는지요? 아니, 그 정도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심각한지를 간곡히 묻고 싶습니다.

 

무섭고도 두렵습니다

 

저는 7년 전쯤에 낙동강 1300리 길을 따라 27일 동안 걸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 땅의 젖줄답게, 압축 성장의 결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던 강은 참으로 아름답고 수려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식수 위기를 불러왔던 낙동강 페놀 사태 이후 수십 조 원을 들인 노력 끝에 간신히 회생의 실마리를 찾은 것입니다.

 

이러한 마당에 다시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데 또 수십조원의 혈세를 쏟아 붓는다면 도대체 새 정부의 '경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몇몇 학자들의 '19세기적인 발상'에 한반도 전체의 명운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이제 곧 이 당선인께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할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반대자들에게도 대통령입니다. 그야말로 통 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경청까지는 아니어도 좋으니, 며칠 전 '대운하는 재앙'이라는 서울대 교수 80여 명의 토론회와 정파적 이권이나 사심 없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목소리도 귀에 담으십시오. 그러다 보면 분명히 '길'이 보일 것입니다.

 

국토의 운명을 놓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이나 총선 전략으로 사용하거나, 순박한 내륙 강안(江岸)의 사람들이나, 이미 땅을 사놓은 이들에게 투기 심리나 허황된 꿈을 부풀리며 민의를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상위 5개 건설사를 내세워 '민자'로 포장을 해서도 안 됩니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해 달려드는 대기업들에게 한반도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고도 치졸한 국정 운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익이 있다 하더라도 강이라는 항구적 공공재를 기업의 사적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은 경제 정의는 물론 민주주의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제발 대운하 구상만은 거두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행여 그 구상이 정말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면 미리 시간을 정하지 말고 치밀하고도 투명한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미래 세대들도 승복할 수 있는.  

 

'좋은 대통령'은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동력을 얻는 특정 정치 집단의 리더가 아니라 국민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도자일 것입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혈세를 뿌려 엄청난 재앙을 불러들일지도 모를 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실패를 위한 실패'가 될 것이며 세계 최대의 반경제, 반생명, 반화합이라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역사적 증거가 될 것입니다.

 

저는 두렵고도 무섭습니다. 대운하가 몰고 올 국토 파괴가 두렵고, 국민적 불복종 운동 등 끝없는 갈등과 국론 분열의 소용돌이가 두렵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운하가 아니라 죽음의 장례 행렬이 누대에 걸쳐 끝없이 흐를 대운구(大運柩)가 될 것만 같아 무섭습니다.

 

오는 12일부터 운하 현장으로 길을 나섭니다

 

이 땅의 산과 강은 생명의 요람이자 교회요, 성당이자 법당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가오는 2월 12일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를 생명의 현장으로 길을 나섭니다. 여러 종교계의 어르신들과 함께 순례의 발걸음으로 1백여 일 동안 생명의 근원인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과 금강을 모실 것입니다.

 

그 품에 안긴 온갖 생명들과 교감을 나눌 것입니다. 살얼음이 낀 강변에 천막을 치고 밤새 떨지도 모르겠지만, 인간만의 욕망 때문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온갖 생명체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참회의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한마음이 청정하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고, 한 몸이 청정하면 모든 중생의 몸이 청정하고, 한 국토가 청정하면 일체 국토가 청정하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청정해질 때까지 참회하며 눈 밝은 이들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혹 결례가 있었다면 아직 수행이 부족한 탓입니다. 더 정진해야겠지요. 부디 이 당선인께서도 더욱 신앙심을 깊이 하시고 길이 후손들에게 칭송받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쁘시겠지만 행여 시간이 허락된다면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의 길 위에서 허심탄회하게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수경 스님은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입니다.


태그:#경부운하, #대운하, #한반도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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