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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 나타났다.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복심'으로도 불리는 최측근이다. 이미 내정한 초대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장 인선은 물론 앞으로 남은 청와대 수석, 각료 등의 인선에 있어서 이명박 당선인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몇 안되는 '헤드헌터'다.

 

5000명에 달하는 인사들의 검증자료를 뒤져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발굴하는 것이 그의 일. 그가 인수위에 나타나자, 기자 10여명이 "실세가 나타났다"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두언 의원은 인수위 본관 3층 경제2분과, 대변인실, 경제1분과 등을 차례로 들러 인사를 나눴다.

 

정 의원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은 이동관 대변인은 웃으며 "옛날에는 실세가 대변인실에 오면 봉투라도 하나 놓고 갔는데, 빈손으로 왔다가느냐"며 농담을 던진 뒤, (2층 브리핑룸으로) 내려가서 (기자들에게) 정보라도 왕창 쏟아놓고 가라"고 주문했다. 정 의원도 비서관을 돌아보며 "여기 봉투 10개만 가져와"라고 농담으로 맞받았다.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2층 브리핑룸 앞 로비에 자리를 잡은 정 의원은 즉석에서 약식 간담회를 열었다. 첫 질문은 역시 가장 큰 관심사인 청와대 수석 인선에 대한 내용. 정두언 의원은 "무슨 인선? 아직도 인선 얘기하는 사람 있나"라며 시치미를 떼면서도 "(인선 얘기만 나오면) 징그러워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정두언 "여태까지 왜 싸웠냔 말이야, 괜히 싸웠어"

 

화제를 돌려 한 기자가 "(총선 출마를 위한) 공천 접수는 했느냐"고 물었다. 정 의원은 "이제는 사실 한참 뛰어야 할 때"라며 반가워했다. 특히 정 의원은 "내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겠다. 웃기는 코미디"라며 전날(4일) 공천 서류 작성을 위해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

 

"(공천 서류를 작성하려면) 본인이 직접 범죄사실증명서를 떼야 한다. 그런데 경찰서에 갔더니 (나의 범죄사실이) 아무 것도 없대. '어? 나 벌금 70만원 있는데' 했더니, 당에서 요구하는 자료에는 (벌금은) 안 넣는 거래. '그럼, 김무성 의원은?' 하고 물어봤더니, 그 사람 것도 안 넣는 거란다. 그럼, 여태까지 왜 싸웠냔 말이야. 진짜 웃기는 얘기야. 한번 확인해봐. 그동안 괜히 싸운 거야. (공천) 접수가 다 되는데. 당에서 요구하는 자료에는 벌금이 안 나오게 돼 있어."

 

최근 한나라당은 공천 규정을 둘러싸고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가 분당 직전까지 가는 대혈전을 벌였다. 그 핵심에는 친박계의 '좌장'인 김무성 의원의 공천 기회 박탈 여부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양측이 "탈당도 불사하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인 게 '괜한 짓이었다'는 정두언 의원의 얘기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내분은 지난 2일 최고위원회가 만든 '공천신청 기준 완화 권고안'을 4일 공천심사위가 수용하면서 봉합 국면을 맞았다. 부패전력자의 공천을 불허한 당규를 뒤집음으로써 '차떼기당', '부패당'으로 되돌아가면서까지 얻어낸 '평화'다.

 

혹시 정두언 의원의 얘기는 이런 과정을 거쳐 공천신청 기준이 완화된 결과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정 의원은 확신에 찬 어조로 "노(NO)"라고 말했다.

 

"아니다. 바꾸지 않았지…. 이것은(벌금형은) 자기가 얘기하지 않는 한 문제가 안되는데, 괜히 난리 피운 거다. 사실이 그래. 세상에 그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어제 (경찰서에 가서) 보고 황당하더라고. 애시당초 안 나오는 거 갖고, 왜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지, 허무하더라고. 허무개그야!"

 

정두언 의원의 말이 끝난 뒤 다시 청와대 수석 등의 인선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정 의원은 최대한 말을 아끼며 즉답을 피해갔다. 다음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뜨는 정 의원을 바라보며 기자들은 "그럼, 여기 뭐 하러 온 거야?"라며 허탈해 했다.

 

정작 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닫은 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허무개그'만 소개하고 간 셈이다. 왜 일까?

 

박근혜계의 허무개그?... 정두언 의원의 허무개그!

 

정두언 의원 말대로 한나라당의 공천 논란 과정을 다시 확인해 봤다.

 

공직선거법 49조에 따르면 정당의 공천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금고 이상의 형의 범죄경력에 관한 증명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경찰서에서는 후보자에게 금고 이상의 전과기록만 떼어준다. 정 의원이 설명한대로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 이상 정당에 제출한 자료로는 후보자의 벌금형 유무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한나라당 내분의 핵심은 '부패전력에 의한 벌금형도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사람에게 공천을 주지 않도록" 당규를 개정했다.

 

특히 지난달 29일 당 공천심사위가 당규를 공천 심사에 그대로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99년 알선수재죄로 벌금 10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은 친박계의 '좌장' 김무성 최고위원이 공천 신청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박근혜계가 이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당은 분당 위기에 처했다.

 

결국 당 지도부가 2일 "부패전력자라도 벌금형을 받은 경우 공천 신청을 허용해준다"는 내용의 타협안을 내놨고, 이를 공천심사위가 수용하면서 내분은 일단락됐다.

 

이명박계의 핵심인 정두언 의원이 이런 상황을 모르고 "괜한 짓을 했다"며 '허무개그'라고 소개했을까? 멀게는 4년전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했고, 가깝게는 지난해 이명박 당선인의 후보 등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정 의원이다. 그가 정말 공천 신청 조건에 벌금형은 상관없다는 것을 어제서야 알았을까?

 

정 의원의 이날 느닷없는 '허무 개그'는 지난 1일 박근혜계가 선거법 위반자와 파렴치범 등에 대한 공천 자격도 박탈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던 일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박근혜계의 입장은 이명박계 의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박근혜계의 '책사' 유승민 의원은 "선거법 위반 중에서 지역주민에게 벽시계를 돌리거나 향응을 베푸는 행위는 죄질이 아주 나쁜 행위"라며 "이는 부정부패에 관련된 사항으로 봐야 한다"고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지역구 업소들에 벽시계를 돌린 혐의로 98년 벌금형을 받은 이명박계의 '좌장' 이재오 의원과 2003년 모 식당에서 열린 지역주민 친목회에 참석해 주민들에게 식사를 접대한 혐의로 2005년 역시 벌금형에 처한 정 의원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특히 박근혜계가 선거법 위반자의 공천 문제를 쟁점화하는 것은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압박으로도 볼 수 있었다. 이 당선인이 범인 도피 및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만큼 당선인의 측근들이 비리혐의자의 공천 불허를 계속 고집하는 것이 자기모순임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공천 갈등이 수습된지 하루만에 정두언 의원이 기자들을 만나 일부러 지난 과정을 "괜한 싸움", "허무개그"라고 희화시킨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근혜계의 집단행동을 '괜한 짓'으로 몰아, 현 상황을 무마하고 자신의 치부를 변명하려는 정두언식 '허무개그'인 셈이다.

 

정두언 의원의 지역구인 서대문을 총선에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인수위를 떠나는 정두언 의원에게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해서 물었더니, "(출마여부는 모르겠지만) 나오면 좋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가 정 전 장관의 출마를 그토록 원하는 이유는? "(선거가) 심심하니까…."


태그:#이명박 당선인, #정두언 의원, #박근혜 전 대표, #허무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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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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