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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간토(関東) 대진재 발생 후 85년이 되는 해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일어난 간토대진재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쿄(東京), 요코하마(横浜) 등에서는 대화재를 일으켜 사망자 9만1344명, 행방불명자 1만3275명에 달하였다(東京市役所조사). 그런데 이 대진재 때 재일조선인의 대량학살이 행해졌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금 일본의 규슈(九州)·야마구치(山口) 지역에서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패널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간토대진재 직후에 퍼진 조선인에 대한 악의에 찬 유언비어를 실은 당시 신문기사를 비롯하여 군대, 경찰, 자경단 및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사진, 그리고 목격자와 체험자들의 그림과 증언 등 생생한 사료들을 전시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규슈·야마구치는 한반도와 가장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으며 현재는 한일교류가 가장 활발한 일한해협권(日韓海 峡圈 )이다. 부산에서 하카타(博多)항과 시모노세키항으로 매일 고속선과 훼리가 수 편씩 왕복해 규슈·야마구치와 한국 간 왕래자는 월 10만명을 넘는다. 북부 규슈와 시모노세키에는 한일교류를 주된 활동으로 삼는 시민단체들이 많고, 재일조선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기타큐슈시(北九州市)를 시작으로 하여 시모노세키시(下 関市), 타가와시(田川市)를 거쳐 다시 기타큐슈시에서 진행되는 이 순회전시회는 한일의 우호와 평화,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바라는 한·일·재일 시민들이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마당이다.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과 관련한 패널들은 1월 17일부터 19일까지는 재일조선인의 인권운동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 고꾸라교회에서 전시되었고, 23일부터 27일까지는 시모노세키시민활동센터에서 전시됐으며, 30일부터 2월 3일까지는 타가와시 석탄·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2월 13일부터 17일까지는 기타큐슈시립 남녀공동참획센터 '무브'에서 진행된다. 각 전시장에는 간토대진재 관련 전시물과 함께 일본인이 그린 역사이야기 '한일합병과 지쿠호오'를 전시하여 재일조선인의 형성과정과 간토대진재를 전후한 한일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이 전시회를 일본에서 개최하기까지 일본 평화운동가들의 신념과 노력이 대단했다. 이 순회전시회는 아힘나 운동본부가 작년 9월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평화행동을 한국에서 실시하였던 것에 찬동한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이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며 실행위원회를 조직해 개최하게 됐다. 

 

 

각 지역 실행위원회의 핵심들은 작년 봄에 '사죄와 우호, 평화를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1톤의 비석을 끌고 평화순례를 한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의 중심멤버들이다. 각 지역 실행위 사무국을 맡아 실질적으로 전시회의 모든 준비를 담당한 분들은 쿠와노 야스오씨, 아카사카 슈우지씨, 이토 칸지씨인데 이 세 분들은 스톤워크 코리아에서 5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비석을 끌고 행진한 사람들이다.

 

일본 평화운동가들의 전시회 준비는 치밀하였다. 우선 그동안 함께 평화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모아 실행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사건에 대하여 잘 모르거나, 왜 지금 이 문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일본과 한국,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지금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나갔다.

 

역사적 진실을 몰랐던 일본 시민들의 눈 뜨게 만들어

 

다음은 패널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이들은 찬성자를 모집하는 것 자체가 이 문제를 알려가는 일이고 역사적 진실을 모르는 일본인들의 눈을 뜨게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 아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발로 모아 나갔다.

 

각 시의 교육위원회와 각 언론사에 대한 행사후원(여기서 후원이라 함은 행사의 취지에 공식적으로 찬동한다는 것을 의미함) 요청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기타큐슈에서는 기타큐슈시교육위원회, NHK기타큐슈방송국, 마이니치신문사, 요미우리신문  서부본사, 니시니혼신문사의 후원을 받았고 타가와에서는 타가와시교육위원회의 후원을 받았다. 시모노세키에서는 아사히신문사, 야마구치신문사, 마이니치신문 시모노세키지국, 요미우리신문 시모노세키지국, TYS테레비 야마구치, KRY 야마구치방송의 후원을 받았다.

 

그런 속에서 시모노세키시교육위원회는 후원을 거절하였다. '간토대진재~숨겨진 진실 패널전' 후원 거절 이유에 대한 문서회신을 요구하자, 교육위원장의 이름으로 '표기의 건에 대하여 본시 교육위원회가 정하는 요강 중 후원을 승낙할 수 없는 경우로 규정하는 "특정한 주의·주장의 선전·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회답이 왔다.

 

시모노세키 실행위원들은 "어떤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면 특정한 주장이란 말인가? 일본은 식민지조선에 저지른 대죄를 특정한 주의·주장이니까 모른다는 식으로 외면하고, 이웃나라를 여전히 경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또다시 위험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민중들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또다시 과오를 저지르게 될 것"이라면서 전시회 성공을 위해 더더욱 분발하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에서는 실행위원들의 노력의 결과 전시회 시작을 앞둔 1월 중순에는 시모노세키 지역에서 찬동인 111명, 찬동단체 6단체를 모았다. 찬바람이 불고 눈도 내리는 추운 속에서 거리에 나가 홍보지 배포도 하였다. 한 장 당 2.8엔을 주고 신문에 간지로서 홍보지를 5000장 뿌리기도 하였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내기도 하였다.

 

"간토대진재 당시 조선인 학살을 생각하라" 일본 언론 통해 일갈

 

1월 23일부터 27일까지의 시모노세키 전시회에는 200명이 넘는 시민들의 꾸준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타가와 전시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모노세키 전시장을 매일 찾아주신 재일동포 1세 안 할아버지. 안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간토대진재를 겪으셔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믿은 자경단의 총칼을 피하기 위해 거름구덩이 속에 숨어서 학살을 면하셨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재일의 시민들이 어깨 걸고 함께 평화를 위해 나서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타가와 전시장에 오신 1세 최 할아버지. 최 할아버지는 지쿠호오 지역에서 탄광 일에 종사하셨고,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연행 되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이야기를 증언해주셨다. 그리고 박물관의 뒷동산에 세워진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 건립을 맡은 한 사람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

 

"조선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참극을 낳게 하였다"고 참회하듯이 당시를 회상하는 분이나, 당시 어렸지만 부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 타가와 전시장에서 조선인학살의 경위나 신문보도와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린 젊은 여자 분, 간토대진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조선인학살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조선인학살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이번 전시회의 효과를 짐작하게 한다.   

 

관람하신 분들은 "역사의 사실을 똑바로 보고,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똑바로 알려야 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쿠와노씨는 일본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을 사랑하고 일본을 우려하고, 일본을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열정을 쏟아 붓는 분이시다. 그러나 쿠와노씨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평화의 두 글자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전시회를 함께 만든 이들은, 각자가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으로서, 재일조선인으로서, 확고한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확실한 목표와 신념을 안고 전진하는 사람들이다. 민족과 국가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들에게 더 이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전시회를 위해 함께 모인 사람들은, 쿠와노씨의 표현처럼 앞으로도 더불어 나아갈 동지들이다.

 

교류 (交流)에서 공담 (共擔)으로

 

이제 한·일·재일의 시민들은 '교류'(交流)를 넘어서 '공담'(共擔)의 단계에 들어섰다.

 

서로 만나서 사귀고 통하는 것이 '교류'라면, 함께 책임지고 짊어져 나가는 것이 '공담'이다. 지난해의 스톤워크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평화행동은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공담하는 한일평화시민들이 이루어낸 큰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미래의 평화로운 역사를 써나가리라는 신념을 지닌 한·일·재일 시민들의 힘찬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923년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바라는 판넬전시회의 협력을 위해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아힘나 운동본부의 김령순 사무국장의 현지 취재기사입니다. 


태그:#간토대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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