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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2일 인수위는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밝혔다. 그 방안 전체에 대한 평가와 문제점은 여러 시민 기자에 의해 지적되었기에, 여기서는  수능 과목 축소와 영어의 분리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2013년 이후의 3단계에서는 수능에서 영어가 분리되어 응시과목이 4과목으로 축소되고, 영어는 상시 볼 수 있는 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오직 영어만 분리해서 평가하는 방식은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텝스나 토익, 토플도 여러 번 치르게 되면 아무래도 성적이 높아진다. 따라서 영어를 1년에 4번 치르게 되면 학생들의 실력은 ‘상향 평준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향 평준화를 위해서 학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할 것이다. '말하기'까지 추가될 이 시험에서 공교육만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외 체류 경험을 통해 영어 능력을 쌓은 수험생이라면 미리 영어 점수를 받아두고 영어에 투자할 시간을 다른 취약 과목에 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지금까지는 외국어고를 가기 위해서 해외 어학연수를 했다면, 앞으로는 영어능력평가시험을 위해서 어학연수가 필수 코스로 자리잡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영어 점수를 등급제로 한다고 하니, 2008년 입시의 등급제 폐해가 재현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상향 평준화된 영어 점수를 등급제로 제공한다면, 변별력에 문제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 영어 능력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영어 제시문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예  영어 논술을 도입한다는 발표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수능에서 영어가 분리되어 영어만 따로 시험을 보면 영어로의 집중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영어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도입하겠다는 ‘영어 상시 평가’는 사교육 광풍을 몰고 올 것이 틀림없다. 벌써부터 회화학원을 따로 수강하겠다는 중학생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영어 한 과목에 대해서만 상시 평가체제로 가서는 안 된다. 영어를 포함한 다른 과목도 함께 응시기회를 늘려야 영어로의 집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를 포함해 다른 과목도 시험을 여러 번 치르게 되면 아무래도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수능 점수 이외에 다양한 봉사활동과 특기 등을 기준으로 해서 학생 선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물론 인수위가 도입하려는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정착되었을 때나 기대해 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다.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기능을 못한다면 지금 현재 자행되고 있는 ‘대학 편입학비리’ 보다 더 심한 입시 비리의 폭풍에 휘말릴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점수 위주의 획일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지원하고 선발하는 ‘대입자율화 방안’을 기대했지만, 인수위의 3단계 자율화 방안은 절름발이에, 획일주의적 입시경쟁을 더욱 가열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무책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2009년 입시에서부터 수능의 비중은 더욱 커졌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갈피를 못잡고 있다. 1981년 이후 한줄 세우기 입시경쟁의 폐해에 대한 합의 결과 논술과 구술 면접 등이 도입되었지만, 인수위는 20-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듯이 보인다. 정시 모집에서 논술 폐지 등으로 수능 점수의 비중만 더욱 커졌다.
  

게다가 인수위의 이주호 간사는 대입 자율화 방안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말 바꾸기를 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분기별로 1차례씩 1년에 4회 치르겠다는 상시 영어능력 평가를 ”2, 3회로 제한하거나 여러 번 치를 때는 감점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번복한 것이다.

 

입시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수시로 말을 조금씩 바꾸는 인수위 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수능 과목이 4과목으로 축소된다는 것과 영어를 1년에 4번 정도 학생들이 선택해서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은 얼핏 미국 SAT를 부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의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미국 SAT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 SAT를 벤치마킹한 교육정책이 절름발이로 태어났다. 미국 SAT의 가장 큰 특징인 응시횟수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에 따라서는 2-3번을 보기도 하고, 4번 이상 본 다음에 가장 좋은 점수를 선택해서 지원하려는 대학에 제출한다.
 

물론 미국 SAT처럼 응시 기회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준비 과정도 필요하고,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1년에 4차례씩 본다고 하면 비용 문제나 시행 주체에 대한 결정도 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1년에 한번 치러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시험을 치러서 자신이 점수를 정한다. 따라서 시험에 부담을 덜 가지게 된다. 우리는 해마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시험 결과를 비관해 자살한 고등학생들의 소식을 수없이 접했다. 더 이상 그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두 번째 장점은 한 번의 시험에 올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학교 생활에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고등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 못지않게 ‘SAT(수능), GPA(내신), 에세이(논술)’의 트라이앵글을 겪는다. 미국에서도 내신 따로, 수능 따로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SAT를 위해 따로 준비를 해주지 않는다. 대학에 갈 학생들은 스스로 내신 관리를 하면서 SAT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특별활동이나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런 과외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SAT를 여러 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이 SAT와 GPA만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에세이를 참고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과외활동은 필수이기도 하다.
 
  수능 응시 기회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 없이, 인수위의 자율화 방안은 수능 과목 축소로만 SAT를 흉내 냈다. 2013년 이후에는 수능 과목이 4과목으로 축소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영수 중심의 획일주의적 점수 경쟁이 가열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다.
 

미국 SAT1의 과목은 3과목이다. ‘언어, 수학 그리고 쓰기’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언어와 수학 그리고 논술만 보는 셈이다. 각 과목당 800점을 만점으로 해 2400점이 만점이다.
 

하지만 미국 학생들은 나머지 과목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SAT2때문이다. SAT2는 일종의 심화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이 SAT2에는 거의 모든 과목이 다 포함되어 있다. 미국 역사, 세계 역사, 수학의 심화 부분, 과학의 심화 부분. 그리고 제2외국어까지 해서 전부 22과목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SAT2는 1년에 1-2번 정도 치를 수 있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1년간 학교에서 배우고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5-6월경에 치른다. 1년간 열심히 공부한 다음에 그 결과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우리나라의 내신에 해당하는 GPA 점수를 높이면서) SAT2까지 준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웬만한 대학을 지원하려면 SAT2를 2과목이나 3과목 정도 보면 된다. 하지만 소위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IVY리그나 스탠퍼드 대학 같은 데를 지원하려면 학생에 따라서 최고 5-6과목씩 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수준별 능력별 수업이고 테스트인 셈이다.
 

언어, 수학 그리고 쓰기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도 충분히 공부를 하기 때문에, SAT에서는 3과목만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인수위의 발표 내용에는 국영수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학생들은 국영수 3과목만 공부하게 될 것이다. 다양성과 자율성, 창의성을 추구해야 하는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아예 불가능해졌다.

 

국영수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 대한 고려 없이 수능 과목만 축소된다면 고등학교 교과과정은 파행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인수위의 과목축소 방안은 획일적인 한줄세우기 입시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말 것이다. 


태그:#수능, #영어, #인수위 , #입학사정관제, #대학자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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