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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싶은데, '동안 열풍'과 '예쁜 남자 신드롬' 여기에 노무족, 샹그릴라 신드롬이 다 뭐다 해서 남성들의 수염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없어서 못 파는 수염도 있다. 사람의 수염이 아니라 옥수수수염이다. 이뇨작용으로 부기를 빼주어 얼굴을 작게 한다는 옥수수 수염차는 폭발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판매 기간 1년 2개월만인 지난 11월 누적 판매량이 1억5000만병을 넘어섰다. 옥수수수염차의 선풍적 인기는 물론 17차와 까만콩차등의 경쟁에 힘입어 차 음료시장은 지난해 약 2400억원에서 올해 3370억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도 있다. 여하간 옥수수수염이 이렇게 없어서 못 팔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다. 하찮게 여겨졌던 옥수수수염이 돈을 벌어다 줄 줄이야 싶기도 하다.

사람의 수염이 없애야할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옥수수수염만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성취하게도 한다. 잘 만하면 사람의 수염도 옥수수수염처럼 정말 큰 힘을 발휘한다. 수염은 "매력? 마력?" 두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염이 상징하는 것은?

고양이와 같은 동물에게는 수염이 기능성 차원에서 중요하겠지만, 사람-남성에게 수염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현실적 인간을 상징한다. 타잔은 수염이 없는 매끈한 얼굴이다. 왜 수염이 없을까? 야생의 세계에서 성장해왔다면 수염이 덥수룩해야 하지 않을까.

혹자들은 타잔이 관념적인 유토피아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가짜 어른이기 때문에 수염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른이 아닌가. 적어도 수염은 남성에게는 어른과 아이의 구분을 의미한다.

수염은 힘과 권위?

어른은 뭔가 강한 힘을 가진 존재다. 용수철(龍鬚鐵)은 용의 수염이다. 용의 수염이 탄력성이 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염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검고 짧은 수염은 아직 젊음을 지닌 존재이며, 하얀 수염은 그만큼 세월의 무게와 함께 축적한 권위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의 남자들은 수염을 깎았다. 이, 벼룩 등이 기생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라오는 권위의 상징으로 인조 수염을 달았다. 아랍은 아직도 남성 권위의 상징을 수염에 둔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미군에 잡혀 수염이 깎이자,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가 이는 가장 모욕적인 행동이며 수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이집트인 작가 사이드 나사르는 “아랍인에 대한 수치가 아니라 전인류에 대한 수치”라고 말했다. 2005년 이라크 무장단체는 바그다드에서 수염 깎는 이발사 12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수염을 제거하기도 했다. 로마군은 적군과 구별하기 위해 수염을 깎았다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백병전을 할 때 병사들의 긴 수염이 적군에게 잡히면 죽는다고
판단해서 병사들에게 수염을 자르게 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일반 남자들은 수염이 없었고, 이는 서구의 전통이 되었다. 게르만족은 청색 혹은 녹색으로 수염을 물들였지만, 로마 통치시대 후 사라졌다.

수염은 난처하게도 한다?

수염은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게도 한다. 작년 미국 텍사스 주에서는 밧줄을 타고 광고판을 내려오던 산타클로스가 수염이 밧줄에 걸리는 바람에 10미터 높이에 매달려 오도 가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에 처한 일이 있었다.

수염 길이 때문에 난처한 아니 자신의 운명을 달리했다는 말이 관우의 죽음에 관한 이설(異說)에도 담겨있다. 관우의 상징은 긴 수염이다. 그의 삼각 수염이 곧 관우의 위엄이었다.

오나라의 여몽은 관우를 이길 방도가 없자, 심리전을 이용한다. 여몽은 본격적인 전투를 하기 전에 사신을 통해 관우의 수염을 칭찬한다.

"정말 눈이 부시는 수염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그런데 밤에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밖으로 내놓는지 아니면 안으로 들여 놓는지 궁금합니다."

관우가 여몽의 말을 듣기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잠을 이루었지만, 그 뒤 관우는 여몽의 말에 신경이 쓰였다. 안으로 수염을 들여도 밖으로 내놓아도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 마침내 평정심을 잃게 되어 관우는 전장에서 패배했고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우는 자기 수염에 묶인 셈이다.

근대성과 수염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직자들에게 수염을 금지시켜 수염없는 모습을 순결의 상징으로 삼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수염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부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단발령 이후 수염을 자르기 시작했으며, 개화기 인사들을 중심으로 면도는 근대 문화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적어도 영상 속에서 개화기와 일제시대는 콧수염의 시대다. 영화 '놈놈놈'에서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등 주연배우들이 모두 콧수염을 길러 일제시기 만주라는 배경에 충실했다.

영화 '모던보이'의 이한도는 경성 멋쟁이로 콧수염을 길렀다. 이시기는 콧수염이 대표적인 아이콘 이었을 것이다. 일본순사의 콧수염은 찰리 채플린과는 달리 악역 캐릭터의 대명사다. 히틀러의 콧수염도 이와 같은 범주인데, '칫솔 수염(Toothbrush moustache)'이다. 그를 조롱할 때 쓰이는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 수염을 선호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그와 같이 복무했던 동료병사 출신에 따르면 독가스 대비 방독면을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염을 잘라야 한다는 명령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는 프로이센식의 긴 수염을 길렀다는 것이다. 기능적 효율성을 위해 수염을 잘랐다는 이야기다.

수염은 남성들에게 멋진 남성미를 풍기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을 망가뜨리는 아이콘이다. 제대로 다듬지 않으면 지저분한 인상을 주지만 제대로 다듬으면 ‘콧수염 없는 남자와 키스하는 것은 치즈 없는 식사와 같다’는 프랑스 속담을 충족시킨다. 수염을 가꾸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니 수염을 관리하지 않는 남성은 게을러 보이기도 한다. 근대성은 단위 시간적 근면을 의미하며, 수염도 그 안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극 캐릭터의 아이콘

수염은 사극 인물들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은 수염 하나 없는 젊은 시절을 보내 타잔과 같더니 갑자기 막판에 수염을 달고 나오기 시작했다.

내시 있는 수염은 있을 수 없다. <왕과 나>의 전광렬, 오만석, 안재모는 매번 수염을 달아야 하는 노고는 없지만, 면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대사를 하다보면 수염이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접착제를 단단히 붙여야 하므로 고통을 호소하는 배우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몽>에서 송일국은 청년기 주몽 역을 소화하기 위해 아예 영구 제모를 했다. 문신은 수염이 좀 적고, 무신은 수염이 될수록 거칠고 많으며 길다. <대왕세종>에서 경호실장 격인 정흥채와 비서실장 격인 지신사 김갑수가 대비된다.

수염과 비례 VS 반비례

수염의 길이와 나이는 비례한다. 지략과 수염 굵기는 반비례한다. 후덕한 인물은 수염이 풍성하지만, 간관은 수염이 가늘다. 가는 수염일수록 부정적인 지략을 함의하기도 한다.
괴도 루팽의 수염도 가늘다.

수염을 기를 때는 콧수염이 가장 까다로운데 ‘간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염은 인물의 전형적인 성격을 드러내주면서, 인물의 성장을 의미한다. 수염만 하나 달면 성숙과 권위의 존재로 변하게 된다. 사극뿐만 아니라 트렌드 드라마에서도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 수염을 기른다.

중요 인물의 수염 변화는 정보기관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작년 9월 마이클 맥도널 국가정보국장은 오사마 빈 라덴의 수염에 관한 미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2004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비디오에 등장한 오사마 빈 라덴은 수염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더구나 검게 염색한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이 변화된 수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던 것이다. 국장은 특별한 의미가 없고 진짜 수염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지만 네티즌들은 수염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빈 라덴이 가짜라고 지적했다.

수염 징크스?

수염 징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수염을 기르면 왠지 경기가 잘되고 수염을 깎으면 경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다. 축구선수로 '수염 클럽 5인방'은 이천수, 이을용, 조재진, 이호 김영광 등 5명을 들 수 있다. 농구 선수 서장훈도 수염을 깎지 않았더니 연승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자부하는 요미우리는 수염은 물론 장발도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가사와라를 영입하기 위해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남성다운 자신감을 통해 활력 있는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염과 성공학

인상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염이 기상이나 기혈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턱 선이 약해보이는 이들에게는 수염을 길러 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염이 없는 아인슈타인은 상상할 수 없으며, 소녀의 편지 덕에 수염을 기른 링컨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김흥국, 전인권, 노홍철, 박상민 등은 수염 없는 얼굴이 오히려 이상하다. 수염이 없었다면 대중적 인기를 끌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 수염이 살아남는 이유

수염은 힘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 섹시함을 포함하는 남성들의 개성 표현이다. 콧수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인 ‘콧사모’의 경우 회원이 1만 5000명이다.

수염 기르기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수염은 자유와 세련미의 코드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전문 직종에 있는 사람들과 예술인들이 수염을 많이 기르기 때문이다. 거대 조직의 부속품에 불과한 직장인은 수염을 제대로 기를 수 없다.

일종의 지존 사회에 대한 저항의 코드이기도 하다. 20세기 좌파 지식인들은 저항의 뜻을 담아 수염을 길렀다. 그러나 그 저항은 무식하고 고리타분한 저항이 아니라 세련된 저항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염은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상징한다.

절제와 나태의 칼 날 위에서 수염은 오늘도 다양한 문화현상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부가산업의 수익창출에도 한몫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수염을 없애는 방법을, 다른 한편에서는 수염을 패션스타일화 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생계를 유지한다.

다만, 수염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역사 속에서 부침을 거듭할 뿐이다. 어쨌든 지금은 수염을 없애건, 기르건 시간과 돈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태그:#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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