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
ⓒ www.projetbabel.org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북동쪽, 독일과 국경을 가르는 라인강이 수직으로 흐르고 있고 거기서 서남쪽에 위치한 프랑스 중부 론알프 지역에 손(Saône)강과 론(Rhône)강이 위, 아래로 흐르며 라인강과 평행선을 이룬다. 이 둘 사이를 두(Doubs)강이 수평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미 19세기 초부터 이 지역에 운하가 건설돼 론강과 라인강을 연결하는 내륙수로가 만들어졌다. 1808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833년에 일부가 개통되고 1876년에 현대화 작업을 거친 이 운하의 총 길이는 324km. 바로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다.

이미 존재하는 이 운하를 대확장하자는 건설 계획이 프랑스에 대두된 것은 1961년. 대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대운하를 건설해 내륙수로 운송을 확장하자는 것이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라인강과 두강, 손강과 론강을 거쳐 지중해로까지 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북해(로테르담)와 지중해(마르세유)를 잇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 계획안은 사장됐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지난 1978년, 당시 총리이던 레이몽 바르가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를 대확장하자는 설을 다시 거론했다. 그 사이 손강과 론강을 잇는 운하가 건설됐다. 샬롱을 거치는 손강이 리옹에 다다라 론강으로 유입되는 약 120km 구간의 운하를 '론강 공공단체(CNR)'가 건설한 것. 그러나 샬롱 이후 북쪽 구간부터 두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약 30㎞에 해당하는 구간의 운하작업은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1992년 공사가 중단됐다.

1995년 2월, 당시 리옹시장이자 북해-지중해협회장이던 레이몽 바르의 압력에 의해 손강과 라인강을 잇는 대운하 건설 계획이 드디어 법안으로 만들어졌다(일명 파스쿠와법). 프랑스 전기공사(EDF)가 비용을 대고 2010년에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규정한 법이었다.

그 때까지 막대한 경비부담 문제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정부로서도 론강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EDF가 CNR로부터 구입하면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공사비를 부담하게 됐으니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1996년 1월, 손강과 라인강을 잇는 '대운하 건설 협회'(SORELIF)가 설립됐다.

운하 확장 계획, 1961년 등장... 1995년 법안 제정

위쪽부터 두강, 손강, 론강.
 위쪽부터 두강, 손강, 론강.
ⓒ www.rolfleurcenterblog.net

관련사진보기

1989년에 설립돼 하천 보호, 강 생태 문제 감시 등 활동을 펼치는 다국적 단체인 '유럽 강 네트워크'(European Rivers Network, www.rivernet.org)에 따르면, 당시 CNR이 계획한 '라인-론강 대운하' 공사 내용 및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손강과 두강에 60km에 달하는 신운하 건설과 169km에 걸친 기존 운하의 대규모 변경.
▲ 58km에 달하는 두강의 굽이 깎아내기.
▲ 높이가 160m나 되는 벨포(도시명)의 문턱을 넘기 위해 24개의 수문과 15개의 이동댐 설치. 그럴 경우 가장 중요한 수문의 높이가 8층 건물 높이에 해당돼야 함.
▲ 4700헥타르의 농경지 소실.
▲ 91~94개의 다리와 11개의 철도다리를 파괴하거나 신축.
▲ 5개 도와 강과 인접한 148개의 읍을 통과하는 대규모 공사.
▲ 엄청난 건설 비용. 1996년 재무부 소속 재정일반감독관이 작성한 공식보고서에 따르면 230억 프랑 예상(부가가치세와 차관 이자까지 합하면 493억 프랑 예상).

재무부 "493억 프랑 들여 지어도 매년 1억 프랑 적자"... 지형-운송시간도 문제

이렇게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거대한 운하를 건설했을 때 파급되는 경제효과는 무엇일까? 과연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수로 운송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경제가 부흥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 저었다. 유럽 강 네트워크에 따르면 유럽 각국에서 수로를 이용한 물자운송이 해마다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운하를 건설한다고 수로운송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연적인 토지의 기복을 잘 활용해 수로를 이용하는 북유럽 국가와 달리, 프랑스의 경우 운하가 산악지대를 통과하도록 돼 있었다. 산악지대에 수십 개의 수문을 설치하면서까지 운하를 설치한다면 오히려 수로 운송 속도를 저해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로테르담에서 마르세유까지 가기 위해 수로를 이용하려는 운송업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수로를 이용하고자 할 경우엔 바다를 이용하면 그만인데 굳이 대운하가 필요하겠는가 하는 지적이었다. 더욱이 바다를 이용할 경우 7일이 걸리는 여정이 대운하를 통할 경우 적어도 9일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즉 대운하가 시간상으로도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또한 1997년 운하 설치 주체인 CNR은 2020년이 되면 대운하 이용 선박이 연간 1000만~13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같은 해에 운송부에서는 이와 달리 400만~500만 톤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 손강과 라인강을 잇는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의 경우 250톤급 선박의 연간 이용량은 수송량 기준으로 8만 톤에 그치고 있다. 현 상태에서 수송량이 8만 톤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하를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이용량이 연간 1000만 톤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처럼 운하를 이용한 수로운송은 도로운송에 비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건설부 산하 기관인 '운송에 관한 경제-통계 전망소(OEST)'의 1997년 자료에 따르면 도로 운송의 2%에 해당하는 양만이 내륙수로운송으로 이용될 뿐이라고 한다.

또한 1996년 재정일반감독관 보고서에 따르면 운하가 건설된다고 해도 한 해에 1억 프랑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493억 프랑의 건설비를 들여 대운하를 건설하고 해마다 1억 프랑의 적자를 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정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

'운송에 관한 경제-통계 전망소(OEST)'의 1997년 도로운송 비율(해운, 항공 운송 제외). 철도를 이용한 육상운송(Transport ferroviaire) 17%, 철도를 제외한 육상운송(Transport routier) 74%, 운하를 이용한 내륙수로 운송(Transport fluvial) 2%, 송유관(Oleoducs) 7%이다.
 '운송에 관한 경제-통계 전망소(OEST)'의 1997년 도로운송 비율(해운, 항공 운송 제외). 철도를 이용한 육상운송(Transport ferroviaire) 17%, 철도를 제외한 육상운송(Transport routier) 74%, 운하를 이용한 내륙수로 운송(Transport fluvial) 2%, 송유관(Oleoducs) 7%이다.
ⓒ 운송에 관한 경제-통계 전망소(OEST)

관련사진보기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 지도.
 '론강에서 라인강까지' 운하 지도.
ⓒ www.fluvialnet.com

관련사진보기


"강바닥 파헤치고 산 허물 대운하, 자연 파괴 필연적"

이에 더해 대운하 건설로 인한 자연 파괴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997년 유럽 강 네트워크는 문제의 대운하가 건설될 경우 다음과 같은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주민 50만 명의 사용량에 해당하는 물 공급 부족.
▲ 생태 환경 악화.
▲ 산소 부족으로 인한 유기 공해 발생 우려.
▲ 물고기 감소와 희귀한 물고기 사멸.
▲ 루강과 두강의 범람 야기와 손강 하류의 홍수 심화.

길이 190m, 폭 12m 규모의 대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대운하 건설은 강바닥을 파헤치고 산을 허무는 자연파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따라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주민 80% 반대... 수백 개 사회단체 결성

1996년 여름 알랭 쥐페 당시 총리가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5명 중 4명꼴로 이 계획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CNR은 대운하 건설에 필요한 농지 구매에 착수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농부들에게 프리미엄을 주고 땅을 구매해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가만히 있을 프랑스인들이 아니었다.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수백 개의 시민협회를 자발적으로 결성, '살아있는 손강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은 스스로 토지 구매 캠페인을 벌이면서, CNR의 토지 매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1989년 6월에 결성된 이 연합은 알자스와 두강, 손강, 론강 연안 자연보호 운동가들과 어부, 소비자, 환경운동가, 과학자 등으로 이뤄진 200여개의 협회와 연합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목적은 론강과 라인강의 대운하 계획으로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손강, 두강 및 그 지류에서 환경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연합은 대운하 해당 지역 주민들이 1975년에 결성한 '운하 반대 결합위원회(CLAC)'와도 후원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운하 건설이 예정된 지역 사람들은 대운하 건설 계획이 진척될 때마다 반대 시위를 벌였다. 1995년 4월 브장송에서, 1996년 3월 돌에서, 1996년 6월 다시 브장송에서, 1997년 몽벨리아르에서 각각 5명에서 1만2천명에 이르는 인원이 참가해 시위를 벌였다. 

1996년 6월 9일 브장송에서 열린 대운하 반대 시위.
 1996년 6월 9일 브장송에서 열린 대운하 반대 시위.
ⓒ www.cpepesc.org

관련사진보기


사회당-녹색당, 대운하 백지화... "그렇지 않았으면 치명적 환경 손실 생겼을 것"

이들의 시위 덕일까? 30여 년 동안 계속된 '라인강-론강 대운하' 건설 논란은 1997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단 막을 내렸다. 사회당과 녹색당의 합의에 따른 조치였다.

운하 계획 백지화는 경제성 부족, 환경 파괴 우려 등 기존에 지적된 문제들뿐 아니라 1997년 당시 정세와도 관련돼 있었다. 그해 5월 총선에서 사회당은 더 왼쪽에 있는 세력인 녹색당, 공산당 등과 연합하고자 했다. 녹색당은 핵심 조건으로 사고가 빈발하던 말빌의 오래된 원자력발전소 폐기를 내세웠고 사회당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대운하 건설안도 폐기 대상으로 함께 묶인 것.

득표율 6.81%를 기록한 녹색당의 선전에 힘입어 좌파연합이 40.28%의 지지율로 승리하자(당시 사회당 23.53%, 공산당 9.94%), 조스팽 총리는 취임 직후 약속대로 말빌 원자력발전소 및 대운하 계획안 폐기를 선언했다. '대운하 건설 협회'는 이미 800헥타르의 토지(전체 구매 예정 토지의 약 20%)를 구입해 놓은 상태였지만, 정부는 토지매입 및 대운하 건설을 위한 인력 고용 등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운하 건설안을 폐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녹색당 소속의 도미니크 브와네 환경부 장관은 2006년 4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나는 여러 해에 걸쳐 수십 개의 지역협회 및 수십만 명의 지역주민과 힘을 합쳐, 말도 안 되는 이 운하 계획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다행히 조스팽 정부가 들어서면서 계획이 철회됐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 환경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올 뻔했다."

당시 브와네 환경부 장관은 쥐라 지역의 의원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대운하가 관통할 예정이던 프랑슈-콩테에 속해 있다. 자기 지역의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한 브와네 장관 등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대운하 계획은 그대로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자연환경 보존 문제가 대운하 계획 폐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프랑스에서 대운하 건설을 반대했던 이들은 막대한 건설비용과 낮은 경제성, 자연파괴 우려까지 감안할 때 무리한 대운하 추진은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운하가 건설될 이곳은 추운 지방이다. 겨울에는 강이 얼어붙어 배가 다닐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수로운송을 장려하겠다고? 웃기는 소리다." '살아있는 손강 연합' 대변인 질 세네의 질타다.

라인-론강 대운하 설치도.
 라인-론강 대운하 설치도.
ⓒ www.rivernet.org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여전히 배회하는 대운하의 유령

운하 계획을 반대한 하천 생태 전문가들은 댐을 건설할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지 않은 평지와 물이 많은 북서유럽 같은 곳과 달리, 두(Doubs) 계곡처럼 기복이 심한 지역에서는 운하 건설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론강-라인강 대운하 건설이 감행될 경우, 파괴된 자연을 복구할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운하 건설 때문에 자연이 파괴된다면, 자연히 외국 관광객들을 잃게 돼 오히려 심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도 높았다.

기자가 보기에도 도로운송을 보충하는 계획으로 철도운송처럼 좋은 방법이 없으며, 리옹과 뮐루즈를 잇는 기존 철도망도 아직 충분히 이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운하 건설은 무의미할 뿐이다. 또한 알자스와 부르고뉴 지방에서 철도, 도로, 수로를 다양하게 잇는 방법으로 이미 론강과 라인강의 수로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운하 건설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게 해당 지역주민의 전반적인 여론이었다. 대운하 건설안은 이러한 다수 여론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운하 건설 계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06년 3월, 우파인 드 빌팽 정부 소속의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지 국토정비부 대표가 다시 대운하 건설안을 들고 나왔다. 현재 운하 확장안이 실행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가 결론을 지어놓은 사안이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불씨는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강 분포 상황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프랑스 전도.
 강 분포 상황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프랑스 전도.
ⓒ www.carte-france-map voyagevirtuel.com

관련사진보기



태그:#대운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