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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지난 19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문래동 당사에 마련된 선거개표상황실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지난 19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문래동 당사에 마련된 선거개표상황실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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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세밑은 한 해를 갈무리할 때다. 치기어린 비판은 거둘 일이다. 솔직히 명징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 생뚱맞다. 두루뭉수리로 넘길 수 없을 일이 곰비임비 불거진다.

보라.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무장 돌팔매질 당하고 있다. 선거에서 패배했기에 감수해야 할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한 차례도 민주노동당을 온새미로 소개하지 않던 신문과 방송이 앞 다퉈서 민주노동당의 내분을 즐긴다. 내분의 성격규정도 사뭇 고약하다.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갈등이란다. 졸지에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북을 추종하는 집단이 되었다.

졸지에 종북주의자로 몰린 민주노동당 지도부

정파 갈등은 이미 선거국면부터 당 밖으로 삐죽 나왔다. 마침내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진중권 중앙대 교수마저 시퍼렇게 날 선 비판에 가세했다.

“당권을 잡고 있는 주체파의 환골탈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토론이 가능해야 기대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는 광신자 집단이나 사교(邪敎) 집단의 그것에 가깝다.”

홍세화가 공식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원으로 당에 깊숙이 개입했으면서도 당 지도부를 겨눠 서슴지 않고 사교집단에 견준다. 이어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 의원을 거명하며 질타한다. 용기가 없단다. ‘종북적인 것’과 선을 긋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어 분당을 부추긴다. 홍세화의 용기가 부러운 까닭이다.

조금 더 격한 말은 진중권 중앙대 교수 몫이다.

“위를 가득 채운 기생충들에게 잠시 대장 쪽으로 내려가 있으라 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기생충의 수가 너무 많아 숙주의 생명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쪼개란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는 게 답이란다. 진중권의 넘치는 패기가 부럽다.

새삼 엄숙하게 누가 돌 던질 수 있는가를 묻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조금만 격정을 가라앉힐 일이다. 왜 지금 갑자기 ‘종북주의’인가.

지난 9월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 (자료사진)
 지난 9월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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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기간은 물론, 선거 뒤에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대표에도 출마했던 정치인의 행보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오래전부터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데 실사구시로 다가설 것을 제안해왔다. 고통 받는 민중 가운데 혹 민주노동당의 목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거나 소련-동구사회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오해를 씻는데 더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해왔다.   

실현가능한 새로운 사회의 그림을 제시하고 구체적 정책을 마련해 나누는 게 진보세력의 시대적 임무라고 지금도 확신한다.

바로 그 연장선에서 진보세력의 대동단결을 주장해왔다. 그것은 자주파나 평등파의 정치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진보적 지식을 글로 써서 살아가는 지식인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이 주도하고 남쪽의 수구-보수세력은 물론, 자유주의 개혁세력마저 추종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민중을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도 대북 강경책을 고집하고 있는 미국 네오콘의 군사제국주의로 흔들리고 있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서다. 

분당이 진보정당 살릴 길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 자주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격정도 지식인의 자유이자 특권일 터다. 하지만 스무 살 안팎부터 중년이 된 오늘까지 우유배달을 해가며 민중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도 애면글면 일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다.

용기도 패기도 좋다. 하지만 ‘사교집단’이라거나 ‘기생충’이라는 말은 적어도 글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할 말이 아니다. 예의가 아니다.   

정중히 묻고 싶다. 과연 분당을 부르대는 그 용기와 패기가 참으로 진보정당을 살릴 길인지,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을 살릴 수 있는 길인지, 얼마나 숙고했는가, 확신이 있는가. 


태그:#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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