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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의 첫 인사가 선을 보였다. 인수위원장으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이 선정된 것이다. 당선자 주변에서는 반대가 드셌지만 이 당선자가 밀어붙인 인사라고 전해진다. 이 당선자는 며칠 전부터 정치인 중에서는 발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로 보아 이 당선자는 일찍부터 이경숙 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번 인선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정부라는 명칭과 일면 부합하는 듯도 하다. 실용이란 실제적 결과를 중시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경숙 씨는 총장을 네 차례나 연임하면서 숙명여대의 외연을 크게 확장시킨 CEO 형 여성 리더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경숙 총장의 인선은 참신하면서도 무난하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번 인선은 이명박 당선자가 기왕에 안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임을 알게 해 준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려하고 있던 것들이 초장부터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총장이 권력의 대기발령석인가?

 

세계화 시대에 대학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교육에는 높은 비용이 지불되어야 실효를 거둔다. 그렇기에 대학 총장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한 훈장 수준으로 머물러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나 대학 총장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교수라고 본다. 다시 말해 ‘선생’이라는 것이다. 나쁜 것은 모두 미국을 닮아 가는 시세 탓인지 어느덧 한국의 대학들도 총장이 돈이나 많이 모으고 교사 토목공사나 크게 벌여야 유능한 것으로 비치는 풍조가 굳어지고 말았다.

 

이런 정황에 이제는 대학 총장 자리가 마치 더 높은 권력으로 향하는 교두보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점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출마설도 전혀 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경숙 씨는 총장 임기를 반 년 이상이나 남겨 놓고 있다. 임기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학생과 동문들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에 속한다. 권력이 부른다고 해서 전화를 받은 자리에서 고소원(固所願) 수락하는 이씨의 모습은 이미 교육자의 모습을 저버린 것처럼 보인다. 아울러 그 순발력이 보는 이를 민망케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임기가 남아 있다고 해도 인수위 업무는 내년 2월까지 마무리되니 방학 기간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이는 합리적인 변명이 되지 못한다. 먼저 대학의 방학이란 학생의 방학이지 총장의 방학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인수위원장의 업무가 내년 2월로 끝난다는 주장에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지난 김대중 정부의 인수위원장은 이종찬 씨였는데, 그는 당시 핵심 요직인 국정원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원장은 임채정 씨로서, 그는 집권당 정책연구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국회의장으로 있다.

 

이경숙 씨는 국보위 입법위원과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일찍부터 권력 지향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과연 이경숙 씨가 내년 2월이 지나면 순순히 다 털고 물러나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국보위나 민정당에서 한 자리 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는 시각이 엄존한다. 이것은 군부독재의 청산이 미진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숙대생도 양보 못한다?

 

숙대 출신 이경숙 씨의 인선은 이대 출신이 실제 역량보다 과점하고 있는 한국 여성계의 불균형을 깨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공적인 배려로 이경숙 씨를 인선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당선자의 출신교 고려대생들이 부르는 유치하고 천박한 유행가 가사 중에, ‘이대생은 우리것 숙대생도 양보 못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마침 이명박 당선자의 부인은 이대출신이고 인수위원장은 숙대 출신이어서 조금 공교롭긴 하다. 하지만 이런 얼토당토않은 착상으로 이경숙 씨를 인선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다만 이경숙 씨는 이명박 당선자와 같은 소망교회를 다닌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한 교회에 다니는 장로와 권사가 만난 것이다. 게다가 이 당선자의 부인 역시 권사다. 이를 기독교 편중이라고 보는 시각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토론방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인수위원장, #장로,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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