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2일(토) 이른 새벽에 잠이 덜 깨어 투덜거리는 아들 녀석을 재촉해 1호선 지하철을 탔다. 6시 30분 정확한 시간에 겨우 경운궁 앞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 이미 경운궁 앞에는 얼른 눈으로 셀 수 없는 수많은 버스가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며칠 전까지도 들어보지 못했던 단체, '생태지평'이란 이름을 단 버스를 찾아 올라탈 수 있었다. 녹색연합에서 보내온 메일을 보고 태안반도에 자원봉사를 신청하려고 했다. 사춘기 아들 녀석을 꼬드겨 같이 데려가려다 마감 시간을 놓쳐 다른 사이트를 뒤지다가 '생태지평' 홈피에서 신청하게 된 것이다.

 

비교적 앞쪽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앞쪽 분들은 서로 부르는 호칭이 '박사님', '연구원님' 어쩌구 해서 괜히 주눅들 듯했다. '환경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라고 홈피에 소개되어 있더니만, 환경연구단체임에는 틀림없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새로 알게 된 환경단체명도 적지 않다.

 

YMCA 등 몇 개 단체가 모집해서 가기로 한 인원이 1500명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당일 전체 인원만 5만이라는 말들도 하던데, 오늘 뉴스를 보니 자원 봉사자 3만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자원봉사자들이나 차량의 수도 어마어마했지만 해안가 풍경이야말로 정말 심란하고 답답했다.

 

소모되는 일회용품들도 난감했지만, 그런 것들을 걱정하기에 앞서 막상 해안가에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 언제나 원상회복이 될 수 있을까 싶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주어진 일은, 밀물이 들기 전에 해안가 기름 묻은 돌덩이들을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 나르는 작업이었다. 이미 한 번씩 닦아낸 돌들이라고는 하지만, 까맣게 기름이 스민 돌들을 바다 쪽으로 밀어낸다는 것이 께름하게 맘에 걸렸다.

 

바닷가 쪽으로 옮겨진 돌들은 밀물 때 바닷물에 닦여 기름기가 떠오르면 그 기름기가 다시 해안으로 밀려오고 그 밀려오는 기름기를 흡착포로 빨아들여 거둬들이는 작업들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쨌거나 일단, 윗돌을 치우고 그다음 돌들을 닦아야 한다는 지침을 따라야 했다.

 

돌을 한참 나르고 철퍼덕 주저앉아 옮겨낸 돌들의 바로 밑층 돌들을 닦아내는데, 약간만 들어 올리면 타르 같은 끈적한 기름 덩어리들이 돌 사이에 엉겨있어서 끔찍했다. 감상적인 마음일지는 몰라도, 숨 못쉬는 돌이 답답하겠다 싶어 그것도 미안해지는데 어쩌다가 기름 투성이가 되어 겨우 발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게를 보고는 마치 내가 직접 죄를 지은 것 같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심정이 되고 말았다.

 

내 눈으로 본 작은 해안가 한 부분도 그 모양인데, 굽이굽이 가려진 틈새 모두 얼마나 심란스러울까! 사람 몇 살지 않는 섬들은 도와줄 손길도 없이 더 심하다고 한다.

 

철없이 투덜거리던 고등학생 아들 녀석 데리고 갔다 왔더니, 그래도 다녀와서는 서해안 뉴스만 나오면 더 눈이 가고 마음이 쓰인단다. 환경이나 주변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실감하며 살아보라고 데리고 다녀왔더니 약간은 효과가 있는 듯도 하다.

 

울분과 설움에 겨우 말문을 이어가던 칠순 어르신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보이는 서해안 풍경이라고들 하는데, 어느 누군가의 '설마 별일 있으랴…' 했을 한순간의 안일함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시름에 잠기게 하고, 무력한 생명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사는 한 사람으로 덩달아 부끄럽기만 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수작업, 방제 작업들에 손을 모아, 운치 있는 서해의 노을을 하루라도 빨리 편안히 바라볼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태안 구름포, #서해안, #부당노동행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유할 수 있는 생각 나누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