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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공짜로 드려요."
 
어느 날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전화에는 관심도 없던 나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전화를 끊지 않았다. 오래된 내 휴대전화를 힐끗 쳐다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서 무턱대고 바꾸겠다고 해버렸다.
 
그날 밤,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벗겨지고 엉망인 내 오래된 휴대전화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직 아무렇지도 않은 전화기를 바꾼다고 했을까?’
'그래. 이제 사람들한테 제발 전화기 바꾸라는 소리 듣는 것도 지겹다. 이번에 맘 먹고 바꿔야지.'
'망가지면 바꾸면 되는데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잖아.'
'남들은 쉽게 쉽게 다들 잘 바꾸는데 뭐가 문제야?'
 
하지만 마음이 쓰라리고 편치 않았다.
 
2002년 5월 회사에 입사를 하고 나서 며칠 뒤 환영 회식에서 난 내 휴대전화를 더러운 화장실에 빠트리고 말았다. 그러고나서 새로 장만한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빨간 휴대전화다. 그러니까 5년이 넘는 동안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놈이다.

 

내 마음이 슬프면 슬픈 벨 소리로, 즐겁고 화창한 봄에는 그에 걸맞은 노래로 내 속마음을 반영해주었고, 엄마 아빠 그리고 애인과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고, 중요 업무 외에도 언제나 시간을 알려주고, 회사에 늦지 않도록 아침에 깨워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이 녀석은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세숫물을 받아놓고 전화 통화하다가 퐁당 빠트려 죽을 뻔했다가 드라이기로 한참 동안 말리는 수술을 통해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비가 펑펑 오는 날 급하게 차에서 내리다 물구덩이에 풍덩 빠진 적도 있었다.

 

집에만 오면 침대에 내동댕이 치는 주인의 습성 때문에 잦은 타박상에다, 그냥 손에 놓고 빙빙 돌리기를 하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 이렇게 낙상하면 휴대전화 케이스끼리 잡아주는 스큐류 보스가 나가버려 케이스를 갈아주는 대 수술을 세 번이나 해야 했다. 서비스센터에 가기까지는 스카치 테이프로 긴급 봉합수술을 해서 며칠을 버티며 지냈다.
 
스크류 보스가 나가기만 하면 다행이다. 한번은 낙상의 충격이 컸는지 화면이 아예 깨져서 보이는 증상도 보였다. 서비스센터에 가기 전 일주일 동안 나는 일체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 전화가 오는지도 알 수 없었고, 내가 알고 있는 단축키 번호 안에서만 전화할 수 있었다. 

 

그것뿐이랴. 갑자기 벨 소리가 들리지 않아 며칠 동안 전화를 재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간단한 수술로 회복될 줄 알았는데 다른 버려진 핸드폰으로부터 스피커를 이식 받아서 근근이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었다. 이런 나를 서비스센터 직원은 측은한 눈빛으로 보면서 매번 말했다.

 

“이제 바꾸실 때도 된 거 같네요.”

 

5년 반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세상이 참 많이 변해갔다. 튼튼한 나의 휴대전화는 낯에는 끊임없는 업무 전화로 울어댔고, 밤에는 친구들과의 수다, 애인과의 사랑 속삭임, 엄마와의 속풀이로 오랫동안 시달렸다. 좋은 소식들도 날라다 주고, 슬픈 소식 또한 날라다 주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빨간 페인트는 벗겨져 지저분해졌고 온통 주변은 칼라폰으로 뒤덮였다. 모두 알록달록한 화면을 보여주며 내 흑백 화면을 답답해 했다. 모두 현란한 벨소리로 울어댈 때, 심플한 16화음으로 울리는 그 소리를 사람들은 갑갑해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일 내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제 바꿀 때도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팔팔한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난 바꿀 마음이 없다고 되풀이했다. 이런 기능, 저런 기능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난 전화만 잘 되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던 내가 이렇게 한 순간에 새로운 것을 받겠다고 했으니! 그래도 이 녀석 끝까지 잘 버텨주었고 이겨내 주었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배신을 하고 만 것이다.

 

그 주 주말은 오래된 내 휴대전화와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주말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월요일, 드디어 난 새로운 하얀 휴대전화를 받았다. 모든 데이터를 새 것으로 옮기고 난 후 서랍 저 밑에 오래된 휴대전화를 넣어놓았다. 차마 버리지는 못했다.

 

‘혹시 아니? 나중에 네가 필요한 때가 있을지. 그 때까지 이곳에서 쉬고 있으렴.’


태그:#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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