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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성 첸동난묘족동족자치주는 중국의 오지 중 오지다. 자신들을 동이족의 한 갈래로 믿고 있는 묘족은 지금도 치우천황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며 '아시아의 집시'로 불리는 민족이다. 동족은 오지 산골에 거주하면서 지금도 고대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민족문화의 활화석으로 불리는 첸동난자치구에서 우리 한민족과 유사한 민속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소수민족 묘족과 동족의 생생한 문화와 풍습, 끈끈한 삶과 생활의 현장을 7차례에 걸쳐 현지 르포로 전한다. [편집자말]
한창 경작을 위해 논두렁을 다지는 잔리촌 주민. 잔리촌은 1000여년 동안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를 유지해왔다.
 한창 경작을 위해 논두렁을 다지는 잔리촌 주민. 잔리촌은 1000여년 동안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를 유지해왔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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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방목했던 소를 이끌고 귀가하는 한 할아버지. 어깨에 멘 것은 들짐승을 잡기 위한 사냥총이다.
 산에 방목했던 소를 이끌고 귀가하는 한 할아버지. 어깨에 멘 것은 들짐승을 잡기 위한 사냥총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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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의 탄생은 오묘하고 소중하다. 태아의 성별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시기에 이미 정해진다. 남자의 X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여자아이가 태어나고, Y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이렇게 만난 정자와 난자는 수정이 되어 자궁벽에 착상하고, 한 고귀한 생명은 남녀 성별도 정해져 열 달 후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중국 구이저우성 총장현 잔리촌에서는 과학적 증명과 상식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피임 약재로 임신을 막고 아이를 낳게 해주는 약초를 먹으면 태아를 잉태할 수 있다는 것.

잔리촌 주민들은 임산부면 누구나 '환화초'를 복용하면 아이를 낳을 때 남자와 여자를 가려서 낳게 해준다고 믿는다. 복용 시기도 중요한데, 임신한 지 1~2개월 내에 복용하고 3개월 이후 복용하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태아 생성과 성별 결정의 과학적·의학적 증명과 연구가 잔리촌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허무맹랑한 '환화초', 그러나 거짓이라기엔...

현대적인 인구조사가 이뤄진 지난 반세기 정도 동안 잔리촌 전체에서 1남1녀 두 자녀를 둔 가정은 98%에 달했다. 특정 마을 전체를 한 가정 두 자녀로 출산 통제를 할 수 있지만, 첨단의학으로도 가가호호의 태아 성별까지 1남1녀로 모두 조절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은 다양한 의학시술로 불법 태아감별과 낙태수술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비해 잔리촌에는 변변한 병원이나 의사가 하나도 없다.

지금도 잔리촌 여인들은 임신 중에도 남자들과 똑같은 농사일과 가정소사를 평소와 다름없이 처리한다. 걸어서 하루가 족히 걸리는 총장현청의 병원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질 못하고, 보통 집안 어른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아이를 낳는다.

임신 3개월 전 태아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환화초의 신비는 과학적으로 볼 때 허무맹랑한 일이다. 하지만 잔리촌에서 일어난 현상을 마냥 거짓이거나 과장됐다고 치부할 수 없다.

류화린(40) 총장현 인구·지화셩위국 주임은 "한 때 환화초의 비밀을 풀고 상업화하기 위해서 정부 내에서 심도 있는 사업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다"고 밝혔다. 류 주임은 "환화초를 비롯해 주민들이 복용하는 약재의 성분을 분석하려 했지만 잔리촌 전체의 저항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면서 "결국 정부도 잔리촌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사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잔리촌 가가호호에 줄이어 달려 있는 위성안테나. 오랫동안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살아온 잔리촌 주민들에게 도시문명을 이식하는 첨병이다.
 잔리촌 가가호호에 줄이어 달려 있는 위성안테나. 오랫동안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살아온 잔리촌 주민들에게 도시문명을 이식하는 첨병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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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파서 나르려는 여인. 남녀평등 사상과 생활방식이 뿌리 깊은 잔리촌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은 노동을 한다.
 흙을 파서 나르려는 여인. 남녀평등 사상과 생활방식이 뿌리 깊은 잔리촌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은 노동을 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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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 계획도 막은 주민들, 문명이기에 흔들린다

잔리를 상업화하려는 중국정부의 시도는 무산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뜻하지 않은 문명이기가 잔리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바로 TV를 통해 들어오는 도시문명과 외래문화다.

오늘날 잔리촌 대다수 가정에는 낡고 저렴한 TV세트가 있다. 적지 않은 가정은 지방정부의 보조를 받아 위성안테나까지 달아 난시청 문제를 해결했다. TV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현란한 도시생활과 잔리촌 밖의 드넓은 세상은 잔리촌 동족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잔리촌에 언제부터 문명이기가 쏟아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외지촌락 출신으로 잔리초등학교에서 10년 가까이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류전위(41)는 "4~5년 전부터 잔리촌에 대한 지방정부의 관심이 늘고 총장현청으로 나가 생활용품을 사오는 가정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2001년 4월 잔리촌의 비밀을 중국 최초로 심층 보도한 <화샤 인문지리> 기사의 사진과 현재 잔리촌의 모습을 비교하면, 당시 단 하나도 없었던 위성안테나가 지금은 집집마다 달려져 있다. 지방정부가 투입하여 만든 개천가 축대는 마을을 한껏 반듯하게 만들었다. 일부 가정에서는 수세식 변기까지 놓았다.

잔리촌 동족은 조상 대대로 '예사모친'이라는 어머니 신을 공동 조상신으로 모셔왔다. 우리의 '성황당'과 유사한 '성조모당'이 마을 뒤 산자락에 있어 주민들은 자주 그 곳을 찾곤 했다. 하지만 '예사모친'을 모시지 않고 '성조모당'을 찾지 않는 잔리촌 젊은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잔리촌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 남녀 간 연애를 하고 혼인토록 마을규약으로 정해 실행해왔다. 환화초로 대표되는 두 자녀 1남1녀의 자녀 낳기도 고집스레 지켜왔다. 하지만 TV가 가져다 준 개방적인 성문화는 잔리촌 10대들의 불장난을 부추기고, 현란한 바깥세상의 유혹은 청소년들에게 도시문명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차오강(17)은 "어릴 때부터 가족 어른들로부터 예의규범·관습금기·역사전통 이야기 등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면서 "부모님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여자 아이의 손도 잡지 말라고 하지만 TV 드라마처럼 여자 친구도 사귀고 사랑도 나누고픈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옌화(15·여)는 "촌스러운 전통의상인 '민감'을 입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옌화는 아버지가 사다 준 휴대폰으로 총강현청에 일 나간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나누는 데 온 시간을 집중한다. 우는 "기회가 닿으면 연해 대도시로 나가 살고 싶다"며 "잔리촌을 벗어나고자 하는 같은 또래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잔리초등학교 114명 전교생은 아침자습 후, 정식수업 전 작은 운동장에 모여 조회와 체조를 한다.
 잔리초등학교 114명 전교생은 아침자습 후, 정식수업 전 작은 운동장에 모여 조회와 체조를 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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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락한 교실 안 낡은 걸상에 앉아 아침자습에 열중인 잔리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
 퇴락한 교실 안 낡은 걸상에 앉아 아침자습에 열중인 잔리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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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중학교 진학에 드는 한 해 1500위안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문제로 1남1녀 낳기에 대한 회의가 차츰 싹트고 있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오랫동안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갖춰왔던 잔리에서는 가구당 한 해 수입은 얼마라고 따지는 소득 개념이 없었다.

잔리촌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준 논밭에서 얻는 수확과 기르는 가축, 산 속에서 수렵한 들짐승과 따온 산나물로 배불리 먹고 근심걱정 없이 지내왔다.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안쥐러예'의 삶과 생활은 잔리촌 동족의 이상이었다.

잔리에서 경작되는 찹쌀은 기름지고 맛있는데, 총창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산된다. 따뜻한 기후조건은 1년 3모작까지 농사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금액으로 산출한 잔리촌 주민들의 평균 연소득은 1300위안(한화 약 15만6000원)도 되질 않는다. 이는 총장현 농민 평균소득 1600위안에도 미치지 못한다. 먹고 사는 데에는 별 탈 없지만 원하는 공산품을 사고 자녀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TV를 통해서 쉴 새 없이 소개되는 각종 첨단 전자제품의 경우, 없는 돈을 탓하며 구매하고픈 욕망을 억누를 수 있다. 이에 반해 자녀교육은 별개의 문제다.

잔리촌 가운데 자리잡은 초등학교는 한 학기 35위안(약 4200원)의 책값만 내면 자녀를 입학시킬 수 있다. 중국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다, 2005년부터는 농촌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부과됐던 각종 잡비도 철폐하여 교육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현재 잔리초등학교에서는 남학생 60명, 여학생 54명 등 114명의 전교생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초등학교 졸업 후 발생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다.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총장현청으로 나가야 하는데, 학비·잡비·기숙사비 등 한 해 최소 1500위안(약 18만원)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

우야완(·43) 잔리촌장은 "정확히 추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 중 다섯에 하나둘 정도만 상급학교에 진학한다"고 밝혔다.

우 촌장은 "정부 정책도 있고 부모들도 자녀를 최소한 중학교까지 마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면서도 "적지 않은 교육비 부담에 자녀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가정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량줘홍 교장이 주관하는 어문 수업에 열중인 6학년 학생들. 내년 7월 졸업할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
 량줘홍 교장이 주관하는 어문 수업에 열중인 6학년 학생들. 내년 7월 졸업할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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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포환으로 이뤄지는 체육수업. 잔리촌에서는 장소가 없어 축구는 꿈도 못 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구나 배드민턴은 공이 없어서 못한다. 탁구의 경우 나무로 만든 대는 있지만 채가 3개 뿐이라 번갈아 돌아가면서 치느라 거의 다 헤져버렸다.
 투포환으로 이뤄지는 체육수업. 잔리촌에서는 장소가 없어 축구는 꿈도 못 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구나 배드민턴은 공이 없어서 못한다. 탁구의 경우 나무로 만든 대는 있지만 채가 3개 뿐이라 번갈아 돌아가면서 치느라 거의 다 헤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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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업조건도 안 갖춰져... 꿈이 없는 아이들

량줘홍(36) 잔리초등학교 교장은 "교사 평균월급이 1000위안(약 12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 교사들도 아이들의 진학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량 교장은 "현재 모두 다른 마을 출신인 교사 8명이 자원하여 잔리촌에 와 숙식을 해결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교사 모두 가족이 주변 마을에 살고 있어서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난 후에 구입한 오토바이를 나눠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교사 탕야환(26)은 "적지 않은 아이들이 당장 사용할 문구조차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자원해서 잔리촌에서 재직하는 탕 교사는 "학교 내에는 마을에 유일한, 기증받은 컴퓨터가 있지만 프린터가 없어 큰 도움이 못 된다"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에서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싶지만 교육여건이 전혀 갖추어지질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올해 6학년인 우란화는 "지금까지 마을 전체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라며 "TV에서 봤던 바깥세상의 여러 일들을 하고 싶은데 영원히 꿈으로만 남을 것 같다"고 우울해했다.

5학년인 우샤오신은 "미래에 무엇을 할지 꿈이 없다"면서 "오직 베이징에 계신 아버지가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우샤오신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을 위해 2년 전 민공으로 일하러 나가 한 번도 귀향하질 못했다.

량 교장은 "긴 세월 동안 외부와 고립된 채 살아오던 잔리촌 주민들 중에 지금은 자녀 진학문제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도시로 나가 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0대 청소년들조차 도시에 나가 일하려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퇴폐한 도시생활에만 물들까 봐 어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키워갈 자녀도 소중하다"면서 "한 가정에 두 자녀 1남1녀 낳기를 고집하기보다는 한 자녀라도 제대로 키우고 싶어 하는 촌민이 늘고 있다"면서 잔리촌의 고민을 토로했다.

11월 28일 주최될 총장현 정부 주관의 동족대가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밤 11시가 가깝도록 노래 연습에 열심인 잔리촌 청소년들.
 11월 28일 주최될 총장현 정부 주관의 동족대가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밤 11시가 가깝도록 노래 연습에 열심인 잔리촌 청소년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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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수업 중 선생님을 따라 책 읽는 1학년 어린이들. 잔리촌 아이들의 진학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어문 수업 중 선생님을 따라 책 읽는 1학년 어린이들. 잔리촌 아이들의 진학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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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족, #환화초, #잔리촌,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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