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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다운 애국자, 혁명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애국지사 고 권중희 선생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끝까지 추적 응징한 권중희 선생에 대해 날카롭고 과격할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권중희 선생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특히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두고 보지 않는 열혈 투사였다. 그래서 권중희 선생은 운명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끓는 피를 잉크삼아 한자 한자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글을 썼을 정도로 친일, 친미 사대매국세력들을 단호하게 규탄 응징하였다. 

 

그리고 권중희 선생은 간판과 기업이름을 영어로 짓는 행태 등 민족의 존엄에 해가 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여러 번 발표하였다. 민족의 존엄과 순결성을 목숨보다 더 아꼈던 것이다.


권중희 선생은 민족의 존엄에 대해서는 이렇듯 비타협적으로 싸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도 불처럼 따뜻하고 인정이 깊었다. 지금 권중희 선생의 운명을 추모하러 온 문상객 중에는 이역만리 미국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달려온 이선옥, 주태상 부부도 있다.

 

이 부부는 바로 몇 해 전 권중희 선생이 맺어준 신혼부부이다. 아내 이선옥씨는 권중희 선생에 대해 이렇게 추억하였다.

 

“몇 해 전 권중희 선생님께서 오마이뉴스의 도움으로 백범 암살범의 배후를 밝혀낼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왔을 때 문서를 찾는 작업을 제가 도와 드렸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권중희 선생의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보도를 접하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제가 선뜻 나섰습니다.


그 때 지금의 남편이 된 주태상씨도 오마이뉴스를 보고 선생님의 일을 도와 나섰습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온 1.5세인 남편은 당시에 선생님을 모시고 운전을 하는 등 비서역할을 해 주었고 저는 문서 찾는 작업을 도와드렸던 것이지요. 당시에 권중희 선생님께서 자꾸 저와 남편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시더니 조국으로 돌아가셔서 저와 남편에게 계속 메일을 보내 서로에 대한 칭찬을 해주시면서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권하셨습니다.


아예 권중희 선생의 민족정기구현회 홈페이지에 배너까지 달아놓고 우리들의 배우자를 찾는다는 광고를 할 정도로 애를 쓰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도움으로 저희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이렇게 예쁜 딸도 낳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기의 엄마가 된 이선옥씨는 이렇게 권중희 선생과의 인연을 회고하면서 “애국에 투철하시고 인정도 그렇게나 많았던 권중희 선생님께서 이렇듯 갑자기 돌아가시니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라며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영안실에 오자마자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이선옥씨의 눈은 이미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주태상씨도 권중희 선생의 운명에 대해 너무나 가슴 아파하였다.
 
“김구 암살 배후가 누구인지는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전 세계 모든 민족지도자의 암살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배후를 밝혀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흔치 않는데 그런 뜻 깊은 일을 한 권중희 선생님이 재정적으로나 여러모로 그처럼 힘들게 살아야했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혹자는 권중희 선생님이 너무 친북적다고 말하는데 이제는 친북이건, 뭐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권중희 선생님의 운명을 맞이하고 나니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주태상씨는 사실 권중희 선생이 미국에 갔을 때 운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용카드로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남을 위해 자신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신용을 걸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태상씨는 또한 반미운동을 하는 권중희 선생을 도와주는 일이 미국의 지배세력의 눈 밖에 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으려는 권중희 선생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도와주는 일이 그렇게 보람 있는 일이었다”라는 의지를 서슴없이 밝혔다.

 

이런 주태상씨이기에 권중희 선생은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그래서 권중희 선생은 주태상씨에게 좋은 처자를 소개해주기 위해 그렇게 많은 애를 썼던 것이다.

 

권중희 선생의 중매가 마음에 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선옥씨는 서슴없이 “네,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환하게 웃었으며 주태상씨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호수보다 깊고 맑은 눈빛으로 아내 이선옥씨를 바라보았다. 

 

이선옥씨는 지금도 틈이 나면 권중희 선생의 뜻을 이어 미국의 문서고를 파헤쳐 역사의 진실을 찾아내려 애를 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최근에는 미국에서 양민학살을 인정한 문서를 하나 발견하여 한국의 진실화해위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선옥씨와 주태상씨 모두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차올랐다. 한 나이든 애국지사를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한 우리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소행과 그런 젊은이들을 서로 사랑으로 맺어주려는 권중희 선생의 사람사랑, 청년사랑의 마음에 가슴이 아릿해진다.

 

권중희 선생과 주태상, 이선옥 부부처럼 그렇게 사람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기에 조국도 참답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며 민족의 존엄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이리라.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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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권중희 , #민족정기, #역사바로세우기, #사대주의, #자주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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