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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없도록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걸까?

 

<길 위의 미술관 - 제미란의 여성미술 순례>의 저자는 이 물음에 언어로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채 자존을 지킨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전망은 ‘비관적’이다.

 

남성 중심으로 기술되어 온 ‘미술사’와 여기에 치여 상처받고 잊혀 온 여성 미술가들의 발자국 …. 이 사이의 심연은 비단 미술사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정신적으로 ‘별거’하며 살아온 실제 생활의 기나긴 역사와 함께 더욱 깊어져 왔다.

 

남녀를 떠나 ‘온전한’ 인간의 미술사를 쓸 수 있게 되려면 지금 이곳의 ‘너와 나’에서 시작, 전 인류 차원에서 남녀가 서로 자유롭게 말하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소통 양식의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20세기에 활약한 13명의 여성 미술가들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 책은 이러한 순례의 기록이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소외된 작가를 발굴하여 미술사의 공백을 메운다’는 학술적 태도나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 작가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평론가의 관점은 애초부터 그에게 없다. 이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여성 작가들과 직접 마주친 ‘소통’의 기록이자 몸부림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모색의 언어는 "피와 살과 내장에 뿌리를 둔 언어들"이며 "더는 어쩔 수 없어서 생살을 뚫고 기어이 삐져나온 말들"이다. 감정치유 에세이 <천만번 괜찮아>를 쓴 박미라의 지적이다.

 

“제미란이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읽어내는 방식은 이렇다. 손으로 느끼고, 발로 즈려밟고, 통째로 삼키고, 씹어서 음미하며, 마침내 몸을 섞어서 그것과 하나가 되고야 만다.”

 

<미술관 밖의 미술관>을 쓴 강홍구는 말한다.

 

“제미란의 글은 뜨겁다. 조심해야 한다. 그가 찾아다니는 여성 미술가들도 뜨겁다. 조심해야 한다. 이 불친절한 세계에서 여성 미술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남성인 나는 잘 모른다.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 또한 남성인지라 강홍구씨의 말에 일단 공감한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남성들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미래 이프의 출판위원장 유숙렬은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제미란의 글을 읽으며 ‘영혼의 눈’을 떠 갔다고 말한다.

 

“피를 철철 흘리며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광기로 번뜩이며 그림을 그려나간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 그림들을 통해 내 영혼을 보았고 그녀들의 영혼 또한 보았다.”

 


초현실주의자들, 여성 찬미하며 ‘뮤즈’로 대상화

 

“역사를 기술하는 이들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성의 인생은 ‘역사’가 되고 여성 작가들의 삶은 ‘가십’이 되어왔다.”

 

초현실주의 여성예술가들을 연구한 휘트니 채드윅의 말이다. 저자는 퐁피두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초현실주의 혁명>을 보면서 이러한 채드윅의 지적을 떠올린다. 

 

“파리 라퐁텐 가에 있었다는 앙드레 브르통의 아틀리에를 그대로 재현하고 그 안에 놓여 있던 수백 가지 오브제까지 가져다 놓은 전시의 열과 성에 비할 때 여성 작가의 작품을 십여 점만 걸어놓았다는 것은 참으로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배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60여 작가의 작품 600여 점을 망라한 초대형 회고전이었지만 그 중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10여 점에 불과했던 것. 당대에 서로 어울리며 버젓이 함께 전시했던 20여 명의 여성 작가들 중 대여섯 명의 작품 한두 점씩이 전부였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한다.

 

“초현실주의의 보스인 앙드레 브르통은 이성보다 감성의 지배, 지성보다 직관의 우위를 주장하며 여성적인 것을 통한 정신의 해방과 성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초현실주의의 핵심은 신비한 여인 숭배라 할 만큼 그들은 여성의 창조성을 전면적으로 찬미하고 옹호했다.”

 

그런데 좀 더 내막을 들여다보면 여성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성에 관한 철저한 토의를 위해 모인 회합에서도 그 주체인 여성들은 모두 배제되었다거나, 성에 관한 무한 자유권이 그들의 파트너에게는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여성관은 그 시대의 통념과 인습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여성을 ‘로맨틱한 대상’이나 ‘이론적인 피난처’로 간주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 여성 작가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습적 성역할에 반항했고 가족의 강한 반대를 뛰어넘어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의 용기와 대담함, 금기를 깨는 행동들은 초현실주의 그룹 안에서 고무되고 격려 받았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이상은 ‘어린아이-여자’, 그리고 에로틱한 뮤즈였다.” 당연히 동등한 창조정신을 믿고 있던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고립됐다.

 

“어린아이 같은 뮤즈가 될 것이냐 성숙한 예술가가 될 것이냐, 창조의 샘이 될 것이냐 스스로 창조의 주인이 될 것이냐 사이에서 그녀들은 갈등했다.”

 

레오노라 캐링턴과 막스 에른스트의 만남
         
제미란이 만난 초현실주의 작가 레오노라 캐링턴도 그들 중의 한 명이다.

 

“아름다운 들러리로 사라질 뻔한 여자가 있다. 그러나 운명을 거슬러서 마침내 치열한 내적 인식과 예술성에 도달해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인, 레오노라 캐링턴.”

 

천진함과 야생성을 동시에 지닌 그녀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열광했던 바로 그 뮤즈 상이었다. 앙드레 브르통은 관습에 매이지 않는 그녀가 중세에 태어났다면 마녀로 화형 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땐 젊고 독립적이며 아름답다는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죽어야 했다. 브르통의 말. “레오노라 캐링턴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 이런 묘사가 어울리겠는가!”

 

어린 시절 아일랜드계 유모가 들려준 전설과 동화는 레오노라의 작품세계에 평생 흔적을 남겼다. 자의식이 강한 소녀였던 레오노라는 수녀원 학교에서 쫓겨나고, 귀족 사교계의 모임을 조롱하는 등 반항적 행동을 일삼았다. 성실한 미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고리타분한 런던의 미술학교에 다녔으나 곧 염증을 느낀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녀 앞에 초현실주의자 막스 에른스트가 나타난다. 스무 살의 레오노라와 마흔여섯의 유부남 막스는 첫 만남에서 눈이 맞았고, 두 사람은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동등한’ 뮤즈처럼 보였다.

 

세계대전이 터지자 막스 에른스트는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끌려갔고, 혼자 남은 레오노라는 불안과 공황 속에서 미쳐갔다. 스무 살 갓 넘은 레오노라에게 마흔여섯 살 막스 에른스트의 존재는 너무나 컸고, 그가 없는 공백 또한 너무나 컸다. 슬픔과 병마에 시달리던 레오노라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려 멕시코 행을 결심한다. 극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몸부림친 것이다. 

 

그 직후,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 다시 만난다. 그러나 이미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다. 헤어져 있는 동안 레오노라는 막스의 부재에 상처받고 망가져 갔지만, 막스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미 다른 ‘뮤즈’를 만난 것이었다. 그에게 ‘뮤즈’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소모품 같은 것이었을까?

 

“전쟁과 이별은 그녀로 하여금 두 사람의 관계의 본질을 깨닫도록 했고, 그녀는 광기와 고통으로 대가를 치렀다. 뮤즈로서의 삶은 끝났고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갔다.”

 

애인을 떠난 뒤 비로소 자아와 예술을 찾다

 

저자에 따르면 캐링턴의 예술성은 에른스트와 결별하고 멕시코로 건너간 이후에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냈다. 친구 르메디오스 바로와의 만남, 연금술의 세례가 캐링턴의 멕시코 시절을 꽃피웠고, 이 시절의 대표작 <거대한 아이>, <반대편에 있는 집>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하나의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에른스트에게 캐링턴은 잠시 영감을 준 에로틱한 뮤즈이자 ‘어린아이-여자’에 지나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 혹시 에른스트 또한 캐링턴에게 ‘뮤즈’가 아니었을까? 두 사람이 벽 없이 소통하고 서로  ‘뮤즈’가 되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전쟁이 두 사람을 갈라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자는 지적한다. “그녀들은 이 집단을, 이 남자들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작업을 개화시켜 나갈 수 있었다.” 남자의 예술, 여자의 예술로 구분할 필요 없이 함께 공존하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서로 고양시키는 예술은 불가능할까? 일방적인 ‘뮤즈’가 아니라 서로 ‘뮤즈’가 되어 더 아름다운 소통을 함께 꿈꾸는 것은 시간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저자 제미란은 이 물음에 확답을 주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캐링턴은 ‘뮤즈나 초현실주의자자 애인 없이도’ 스스로 초현실주의적 예술을 창조해 냈고 창조의 주체이자 원천으로서 여성성을 회복해 냈다. 일상적 살림 안에서 초현실주의를 찾아내고, 개인의 경험을 우주의 통일과 연결시켰다.”

 

이어서 레오노라 캐링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나는 오래된 영혼입니다. 누구의 뮤즈가 될 시간이 없어요.”  

 

<길위의 미술관 - 제미란의 여성미술순례>에는 레오노라 캐링턴을 비롯, 키키 스미스, 낸시 스페로, 리지아 클락, 제니 홀처, 니키 드 생팔, 낸 골딘, 프리다 칼로, 에바 헤세, 아녜스 바르다, 쉬잔 발라동, 루이즈 부르주아, 아나 멘디에타 등 20세기 미술에 강한 족적을 남긴  여성 미술가 13명과의 만남의 기록이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채훈 기자는 (주)문화방송의 PD이자 (사)문화미래 이프 회원이다.


태그:#레오노라 캐링턴, #키키 스미스, #니키 드 생팔, #아나 멘디에타,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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