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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고 깊었습니다. 곳곳의 눈 소식과 밤낮의 기온차가 커진 환절기를 보내며 이제 정말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따듯한 기운으로 발길이 먼저 찾아가게 되고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의 수줍은 몸짓에 눈길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계절입니다.

이 맘 때 즈음, 열매 맺는 계절을 기다리며 준비해 두었던 무지개빛 과수원의 늦가을의 서정 속으로 독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윈슬로우 호머(Winslow Homer, 미국, 1836-1910)의 수채화 6점을 소개하고 이 가을을 만끽하며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통속적인 일상을 주제로 한 풍경 그림

 윈슬로우 호머의 초상화
ⓒ h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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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약력과 설명은 < Winslow Homer, American Artist:His World and His Work >(Albert ten Eyck Gardner, 1961)와 < Winslow Homer >(Lloyd Goodrich, 1944) 그리고 브리태니커사전을 참고하여 번역·정리·편집한 것이므로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호머는, 사실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토마스 이킨즈(Thomas Eakins, 필라델피아, 1844-1916)와 함께 19세기 미국의 가장 훌륭한 화가로 불리웁니다. 이킨즈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통속적인 주제를 사실적이면서도 강렬하고 풍부한 표현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며 오늘 그의 작품에서도 그런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바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서정을 담아낸 통속적인 그림들을 많이 그린 풍속화가로 유명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사물의 고유한 색을 부정하고, 빛의 반사에 따른 자연의 밝은 색채를 표현하고자 애썼던 외광파 화가, 또는 반 아카데미적인 입장과 자유롭고 비관습적인 양식에서 뛰어났던 풍경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가이자 동판화가이며 삽화가로도 유명했던 호머는 1836년 2월 24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Boston, Massachusetts)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여섯살 되던 때에 가족이 시골 마을이던 케임브리지로 이사했으며 이곳에서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볍고 경쾌한 스케치와 수체화에 능했던 호머

그는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19세 때 석판화 견습생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 인기있던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 잡지에 독창적인 드로잉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1859년에는 자유기고 삽화가(illustrator)가 되어 남북전쟁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서 그림을 익혔으며 자연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으로써 그 첫 매체인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작품활동 중반기인 1875년 경입니다. 평생 남부와 동부 각지의 풍경화와 풍속화(genre work)를 주로 그렸는데, 아래는 그런 그의 색채 맑은 수채 작품만을 골라 올린 것이므로 산뜻하면서도 시리도록 눈부신 늦가을 햇살을 함께 감상하고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오늘 소개한 작품들에서 보시는 것처럼, 특히 가볍고 경쾌한 느낌의 스케치와 수채화에 능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그린 유화는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상쾌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대기의 느낌을 풍부하게 전달합니다. 그는 옥외에서의 사생과 현장의 느낌을 중시하고 밝은 색채와 광선을 존중하는 한편, 삽화의 경험을 살려 대상의 명확한 묘사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畵風)을 수립하였습니다.

호머는 또한 버뮤다(Bermuda), 플로리다(Florida), 페터스부르그(Petersburg), 버지니아(Virginia) 등 여행을 자주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또 통속적인 주제에 서정성을 곁들여 표현함으로써, 유럽풍(風) 위주의 미국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래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화가입니다. 대표작에 "멕시코 만류", "전선에서 온 포로들", "산들바람", "구명밧줄" 등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말년을 보내며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했던 호머

초기의 호머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중기까지는 실질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880년경 그는 점점 비사교적인 경향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를 의식적으로 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1881년 그는 갑작스럽게 영국으로 가서 북해에 있한 외딴 항구인 타인마우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2년 동안을 살며 작품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호머는 여기에서 그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맞는데, 그물을 수리하고 집을 지키면서 그들의 남편들이 바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타인마우스의 굳세고 용감한 여인들을 묘사한 그림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 해안지방의 대기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새롭고도 어려운 기법을 구사해야 했지만, 호머는 일련의 수채화에서 색채를 제한하는 대신 다양한 명암을 사용했으며 산광(散光)을 적절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머는 노년기에 들어 예전보다 훨씬 더 무뚝뚝하고 외로운 생활을 하였지만 1900년대 내내 활발하고 대담하게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후기 그림들은 순수한 바다 풍경을 더 강조했지만 주제에서는 초기 작품들과 비슷했으며, 참신한 구도와 화려한 색채를 통해 추상적·표현적인 미술의 가능성에 점점 관심을 보였습니다.

호머는 1910년 프라우츠넥(Prouts Neck, ME, 1883)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사망하였습니다. 1890년대까지 그는 주요 미국의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최고가로 팔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아주 간략하게 알려졌을 뿐이며 그의 미술 업적 또한 그가 죽은 뒤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For the Farmer's Boy (old English Song)), Watercolor on paper, 1887, The Brooklyn Museum
▲ 농장소년을 위한 노래 (For the Farmer's Boy (old English Song)), Watercolor on paper, 1887, The Brookly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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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color on paper, 1878, Private collection
▲ 마지막 밭갈기(The Last Furrow) Watercolor on paper, 1878,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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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Picking, Two Girls in sunbonnets or in the Orchard), Watercolor on paper, 1878, Terra Museum of American Art, Chicago, Illinois, USA
▲ 무지개빛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는 두 소녀 (Apple Picking, Two Girls in sunbonnets or in the Orchard), Watercolor on paper, 1878, Terra Museum of American Art, Chicago, Illinois,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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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그의 그림에 비하면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만큼, 호머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감상하는 것처럼 한번 보면 마술처럼 호머 그림의 투명한 빛과 밝은 색채의 매력에 빠질 만큼, 어느 유명 화가들에게 결코 빠지지 않음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가벼운 볕에서 묻어나는 깊은 가을 정취와 자연에 베어있는 여유와 풍요로움을 실감나게 담아냈습니다.

16세기 경의 미술은 자신의 모습이나 평범한 인간의 활동을 그린 그림들은 장식의 한 형태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영에 있어서의 꽃병이나 항아리, 벽화, 조각 작품의 주제는 스포츠, 사랑, 사업, 즐거움 등 주변 현실과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삶의 장면을 그린 그림"들을 "풍속화, 또는 장르화(gonre picture)"라고 합니다. "종류, 부류"를 뜻하는 라틴어, "게누스(genus)"에서 유래한 '장르'라는 말은 오랫동안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으나, 오늘날에 이 말은 문학적, 회화적 양식이나 유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회화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실험으로 탄생한 풍속화

이렇게 회화에 있어서 풍속화나 장르화는 평범한 오락이나 동물, 풍경, 정물 등을 묘사한 그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에는 특히 친숙한 시골생활을 묘사한 그림으로, 더욱 정밀한 의미로 발전합니다. 이처럼 일상생활과 풍속적인 주제의 그림들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위 세 그림은, 영국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이전인 1870년대에 호머가 그린 '농장 그림'들로, 전형적인 농장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호머의 주된 관심사는 단순히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형식적은 관례를 새롭게 실험하는 데에 있다"라고 평가합니다.

위 그림들에서도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산 중턱의 밭, 황금빛 과수원과 나무들, 하늘 아래 구름을 배경으로 그 안에 묘사한 인물들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으며, 그 뒤로 보이는 나무와 집, 하늘, 구름 등을 통하여 그림에 공간적 깊이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자연과 그 속에 인간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눈부시도록 맑게 느껴지는 시골 마을의 일상과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전원 풍경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그런 느낌과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874,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ennsylvania, USA
▲ 한 낮 한 때(Noon Time,) 1874,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ennsylvani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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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color on paper, 1878, Private collection
▲ 언덕 중턱의 소년과 소녀(Boy and Girl on a Hillside) Watercolor on paper, 1878,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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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color on paper, 1878, Public collection
▲ 언덕에서(On the Hill) Watercolor on paper, 1878, Public collection
ⓒ h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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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왔으며, 여러 세기 동안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세기에 걸쳐 변화하고 발전해온 풍속화의 주제는 풍속화를 보는 대중의 변화하는 태도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그림들 속에서 당시 유럽과 미국의 사화적 풍토나 대중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풍속화의 기본적인 속성으로 볼 때, 동시대의 현실이 그림의 주제가 되며, 언제나 당대의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일상생활의 장면을 그린 이런 그림들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당시의 사회를 기록하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위 호머의 1870-80년대의 풍속화를 통하여 당시 미국과 유럽의 의복과 일상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면밀하게 관찰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화가의 눈을 통해 비춰진 현실의 재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풍속화를 통한 당시 생활에 대한 짐작은 신중해야 하는데, 당시의 실제 생활이 풍속화에 나타난 것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경계해야할 점입니다.

당시의 생활상과 의복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풍속화

이처럼 호머의 위 풍속화들에서도 화가나 관람자, 또는 오늘날의 관객, 우리 모두에게 친숙하고 평범한 체험과 관련한 인간의 행동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화가가 실험한 위 6점의 수채화 작업과 그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재질감과 재료, 표면 등을 탐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호머는 한층 자유로운 양식과 자신만의 붓질을 이용하여 우리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숙한 대상 위에 떨어지는 그림자의 효과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 풍속화를 통하여 세부사항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청각적인 감성과 감각적인 즐거움을 매우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호머의 위 세 수채화 작품들은 영국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던 호머의 특징들을 특히 잘 드러냅니다. 술마시고 춤 추는 농부들의 회화적인 모습이 아닌, 그들의 일상과 일터, 그 농촌 환경에서 느낄 수 있는 남녀의 애틋한 감정과 자연스러운 모습을 통하여, 호머는 당시의 관람자, 또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일상의 즐거움과 한가로운 한 때의 여유로움을 선물합니다.

특히 마치 수묵화에서 맛볼 수 있는 색채의 농담과 화폭 가득 배경으로 드리워진 곡선의 언덕과 나무 그림자를 통하여 그림에 깊이있는 공간감을 부여하였으며, 연인들의 낭만적인 감정과 분위기를 강조하였습니다. 맑고 투명한 대기의 느낌과 직접 들이 마시는 듯한 청결한 공기를 눈으로 직접 보여줍니다. 또한 화폭 안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 생생한 동작을 통하여 관람객과 독자들을 풍부한 서정성으로 불러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호머, #윈슬로우, #HOMER, #과수원,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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