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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명박 후보 일행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9월 4일이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에 소장이 접수된 것은 그로부터 3일 후인 9월 7일이다. 그런데 검찰은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신속히 사건을 처리하는 듯했다. 검찰은 접수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한 것이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이 중요한 사건의 추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일의 시일이 흐르는 동안 검찰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러더니 지난 9월 28일에야 고소인 측인 청와대 행정관 한모 씨를 불러 최초로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 신종대 2차장검사는 "통상적인 고소 사건처럼 사건의 취지나 고소의 전체적 의미에 대해 물어 봤다"며, "피고소인이 말한 내용과 표현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따져 봐야 하는 만큼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 차장은 이 후보 등의 직접 출석 여부에 대해서도 "결정 되면 그때 말하겠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사실 '사건의 취지나 고소의 전체적 의미' 같은 것은 소장에 이미 담아져 있을 터이다. 확인을 위해 물어본 것이라고 해도, 단지 그것을 묻기 위해 20일 간이나 장고해야 했던 이유가 있는 건지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피고소인이 말한 내용과 표현 하나하나를 따져 봐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검찰은 이런 기초적인 일도 하지 않고 달리 한 일은 또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게다가 '단순한 사건은 아니다'는 전제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는 마치 장기 수사를 예고하는 것 같이도 들린다. 아무튼 지난 20일 동안 검찰이 최소한도 대외적으로 한 일은 청와대 행정관 한 명을 불러 조사한 것밖에는 없어 보인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죄의 관계

이명박 캠프에서는 경선 초반부터 자기들에게 불리한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허위사실 유포라는지 또는 정치공작이라고 몰아붙인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예로 당시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이 후보의 위장전입설을 제기하자 허위사실유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응하여 김혁규 의원이 이 후보 측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적이 있다. 이후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은 사실로 판명났고 이 후보가 이를 시인, 사과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 후보 측에서는 자기들에게 불리한 발표가 나올 때마다, 국세청과 국정원 그리고 검찰에까지 정치공작이라고 규탄하고는 했다. 심지어는 같은 당 경쟁 후보인 박근혜와 청와대의 결탁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정치공작이란 과거 군부독재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그 시절에는 국가기관이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야당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국가기관이 야당에게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주장을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치 공작 운운 이전에 국가기관에 그럴 힘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공작설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은 내부단합용이 아닐까 한다. 또는 아직도 독재정치의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지지층을 의식했기 때문일 터이다.

전가의 보도, 이명박 측의 정치공작설

이명박 후보 측은 으레 정치공작설과 세트 형식으로 해당 기관을 항의 방문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국세청과 국정원과 검찰청 등의 청사에 우르르 몰려간 일이 있다. 이런 일은 후보에게 충성심을 보일 절호의 기회가 되거나 아니면 불참 시 눈밖에 나는 성격을 띠는 것이기에 구성원들의 자발적 또는 필사적 참여로 활성화된다. 이재오 의원이 이런 이벤트 성 행사들의 총책인 것처럼 보인다.

재미를 보았다고 계산되었는지 그들의 정치공작설 제기는 급기야 청와대로까지 확산되었다.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청와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유사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이 후보 측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법적 대응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의 정치공작설은 계속되었다. 결국 이 후보 측의 진수희 대변인에 대한 고소가 이루어졌고, 진수희 대변인은 명예훼손으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정치공작설에 근거 없음이 사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정치공작설을 또 제기하며 "권력 중심 세력에서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권력 중심 세력이 누구인지는 다음에 벌어진 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후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제 청와대를 방문 조사하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청와대의 이 명박 고소는 이런 정황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처음 이 후보 측에서는 당혹해 한 것이 사실이다. 법적 고소로 인해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한 검증 공방이 재현될 걱정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후보 측은 "대선판을 흔들려는 정치 테러"라고 한편으로 규탄하면서도, 단지 '권력 중심 세력'이라고 했지 청와대를 지목한 것은 아니라고 약간 옹색하게 변명했다. 그들은 '정치 공세에 불과했던 것을 가지고 뭘 그렇게 씩이나? 하는 투의 말을 하며 표정을 바꿨다.

희극적인 반론들

이런 이 후보 측의 기세를 되살린 것은 단연 종이신문들이었다.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신문>까지도 사설을 통해 애매한 양비론을 펼치며 대통령의 고소 행위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희극적 관점에서 가장 돋보인 곳은 주간지 <한겨레 21>이었다. 이 주간지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말을 패러디 하여 "소송으로 흥한 자 소송으로 망한다."는 말로 노무현의 고소를 저주했다.

이에 고무되었는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설 제기는 고소 이후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신정아 사건에 대하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이자 고소 사건의 피고소인이기도 한 안상수 의원은 "큐레이터에 불과했던 신씨가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이었던 변 실장 정도 갖고는 임용되지 않는다."며 " 더 거대한 권력의 힘이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피고소인인 박재동 의원은, 다른 사안인 정 비서관 사건에 대해 "단순히 정 비서관의 뇌물 수수나 국세청장의 세무 로비 정도로 축소하거나 몸통은 내버려 두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하면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뉴라이트는 아예 고소한 대통령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실장과 박성주 법무실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소장에서, "정당의 정치 행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강경 대응함으로써 신공작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거대한 권력'이나 '몸통'이나 '신공작정치'등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또는 그 개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정치는 정치 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다. 일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논리는 정당하지 않다. 정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정하지도 않아 보인다. 과거 김대중의 대북송금까지도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문제 삼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공소할 따름이다.

대통령이 야당 후보를 고소하는 일은 헌정사상 '초유'라는 논리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무논리에 가깝다. 우리나라에 초유의 일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그런 식이라면 경부대운하도 '초유'이지 않은가? 오히려 초유이기에 해 봄 직하다는 주장이 더 정당하다.
과거 정치공작을 밥 먹듯이 벌였던 세력의 후예들이 남에게 정치 공작 운운하는 일 자체를 더 희극적이라고 보는 국민도 적지 않다.

정상을 참작하는 검찰

그러므로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지체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국가기관의 정치공작설에 일말의 근거라도 있는 것이라면 단연 발본색원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의 정치공작설이 음해를 위한 것이라면 최소 당사자들의 명예 정도는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정치공작설이란 수세에 몰리고 있는 약자가 강자에게나 하는 저항의 방식이다. 그런데 당선이 가장 유력시되는 대통령 후보와 측근들이 이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강자가 부리는 횡포로서 몹시 야비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일은 정치를 음습하게 만들며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한다. 무엇보다도 당사자가 축적한 사회적 명성과 인격을 일거에 균열시킨다.

법관에게는 정상(情狀) 참작의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政狀, 정치적 상황) 참작의 자유와 권리 따위는 없다. 그러니 검찰은 더 이상 정상을 참작하지 말고 수사를 진척시키어 결과를 내 놓아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태그:#고소, #검찰, #정치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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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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