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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6일 저녁 무렵 퇴근해 늦더위에 땀으로 지친 몸을 씻고 있었다. 우리집 현관문 초인종이 고장이었다. 탕, 탕, 탕, 수차례에 걸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샤워중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씻고 있었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애들은 학원에 가고, 애 엄마는 아직 퇴근 전이라 대응이 없으면 가겠지 하였다. 하지만 꽤나 집요하다. 퉁, 퉁, 퉁. 5분은 족히 되리라. 아마 현관문틈으로 불빛이 비치는걸 보고 안에 사람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잠깐 문 좀 열어주세요."


"왜 그러십니까? 지금 샤워하고 닦는 중인데요."
"그럼 기다리지요."


궁금하기도 하고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그럼 잠시 기다리라 하고 급하게 몸을 닦고 대충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같은 남자끼리데 어떠십니까? 조선일보에서 왔습니다."
"우린 다른 신문 보는 데요."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신문도 좀 봐 주십시오."


"아니오. 지금 보는 신문도 있고 저의 집 형편상 전국지 1곳만 보면 되지 더 이상 구독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보시는 신문을 안보시기 어려우시다면 저희 신문도 함께 보십시오. 지금 당장 대금은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내년 3월 말까지는 그냥 보시고 4월부터 신문대금을 청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상품권인데 쓰십시오." 


내가 고개를 약간 기웃하니 뭔가 부족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나 보다. 1만원짜리 상품권 2장을 더 내민다. 처음에 2장, 추가로 2장을 더 줬으니, 합하여 4장이다. 대충 꼽아보니 무료구독 7개월에 상품권 1만원권 4장. 이게 전부 얼마야? 얼른 계산이 되지 않는다. 

 

신문은 구독료와 광고가지고 운영하는 걸로 아는데 이렇게 해도 이윤이 남나? 7개월이나 공짜로 주고 그것도 부족해서 상품권까지 주고... 꺼림직 했지만 일단 받았다  

 

"고맙습니다. 신문은 내일부터 배달됩니다. 선생님 말고도 오늘 구독하신 분 많습니다. 지금 그냥 보시고 내년 4월 30일 첫 구독료 요청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음날 아침, 신문이 정확하게 배달되어 왔다. 현관문 앞에 놓인 <조선일보>를 본 우리 딸이 "엄마 조선일보 신청 했어요?" 한다. 등굣길의 딸아이 말에 부엌에 있던 애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생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어저께 말이야,,. 자초지종을 집사람에게 얘기 하니 혀를 끌끌 차며 "자~~알한다. 있는 신문도 다 못보고 밀린 신문대금 땜에 보는 신문 끊지도 못하는데"라고 말하며 원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지금 내 나이 49살. 세상을 우습게보며 살았지만 영 젬병은 아니다. 적어도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정도는 판단하고 분별하는 나이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말이다. 고백하지만 대충은 안다. 무가지, 그리고 사은품 판촉에 시달리고, 지친 일선의 신문지국을 책임진 지국장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언젠가 수도권지역의 상대방 지국과의 마찰로 인하여 살인까지 있었던 일들을.


그러나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선의의 노력으로 경쟁해야하고, 신문은 경품이나 무가지로 독자를 확보할 것이 아니라 그 신문의 지면을 통하여 독자와 대화하고 소통하여 독자 스스로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판매부수를 늘려 나가야된다. 물량공세나 공짜신문으로 독자확보에 나선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당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며칠 밤을 고민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50에 밑줄 친 나로선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 살면서 누구한테 원망이나 질책을 듣지 않고 살아야 된다는 것. 좋은 일, 아름다운 일만 해도 짧은 생인데. 내가하는 행위가 정당한가. 나는 옳다고 한 행동이 다른 누구한테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가?

 

며칠을 생각하며 그냥 보냈다. 그 사람도 생존을 위해 그 직분에 충실하고자 함 아닌가? 정녕 내가 옳다면 현장에서 '그건 아니오' 해야지 지금 와서 무가지니 경품이니 과연 옳고 정당한가? 그때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얘기해야지 비겁하지 않은가 말이다. 친구 둘에게 상의를 했다 이러 이러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한 친구는 그냥 넘어가라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또 한 친구는 그냥두지 말라고 한다. 옳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것은 가만있으면 안 된다고.

 

"내가하는 행위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픔을 준다면...!" 판촉 하러온 마음씨 좋은 그분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마음도 모르고 새벽에 신문을 배달해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열심히 사시는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며칠 고민한 끝에 마음을 정했다. 내 나이 몇이냐.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날보다 많았고, 이젠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기울어진 태양인 것을... 내 자신이 위안을 얻고자 한다. 한편으론 마음도 아프고 걱정도 되지만 내 나름의 애국심이라 자위해본다. '너와 우리 모두 공정하고 투명한 세상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역과 학연과 연고에  메몰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존중되어야 할 가치에 앞서는 것은 정당성, 투명성, 공정성 아니겠는가?
 
오늘 날짜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인터넷 신고를 하였다. 그리고 내 친구가 즐겨 쓰는 문구가 생각났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적의 편'이라고, 50줄의 나이에 맞지 않는 수준 낮은 표현인지 몰라도 말이다. 


태그:#무가지 경품,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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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뉴스의 오랜벗이 시민기자를 신청하게된 동기고요,하루한두번 검색을 통해서 오마이팬이 됐네요. 내가보는 세상의논높이를 표현하다는 생각이구요, 자신있는 쓰기는? 배우면서 도전하렵니다.. 기회가 있으면... 능숙한 글솜씨는 아니지만 ... 체험과 현실감있는 글을 만들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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