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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살부터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컸습니다.
▲ 고용 계약서 1살부터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컸습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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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 : 이름은 김수연입니다. 1995년 10월 25일 태어나 지금은 13살 소녀입니다. 1살부터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컸습니다. 이름을 한자로 하면 쇠김, 빼어날 수, 예쁠연이며 빼어나게 예쁘다는 뜻입니다. 영어 이름은 kim soo yeon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Rachel입니다.
▲성격 소개 : 성격은 활발합니다. 그래서 웃음이 많습니다.
▲지원 동기 : 부탁 할 사람이 김현자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희망 업무 및 포부 : 돈 10000원이 필요한데 돈이 없습니다. 아니면 8000원이라도 절 고용해 주십시오!
▲특기사항 : 청소, 설거지, 걸레질, 청소기 돌리기, 방 정돈 잘합니다. 경력 13년~
▲원하는 보수 : 청소(방청소, 걸레질) 500원, 청소기 300원, 설거지 800원, 방 정돈 300원, 커피타기 300원, 밥상 차리기 800원(내딸의 자기 소개서 정리).


지난 일요일(16일)의 일이다. 초등학교 졸업반인 둘째가 얼마 전에 산 필통이 기대와 달리 많이 불편하니 집에서 쓰고, 학교에 가지고 다니는 것은 좀 작은 걸로 다시 샀으면 좋겠다면서 내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보름 전 아이가 우기고 산 필통이었다.

"야, 그거 산 지 얼마나 됐다고… 좀 익숙해질 때까지 불편해도 참고 좀 더 써봐. 그럼 또 달라질지도 몰라. 것 봐. 좀 불편할 것 같다는 데도 네가 좋다고 우겨서 산 거잖아. 그런데 너 용돈은 다 썼니?"
"… 지갑만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필통 하나 사고도 한참 남는데…."

아이는 4번째 지갑을 한 달 전에 잃어버렸다. 3년 동안 4개를 얼마 쓰지도 못하고 번번이 잃어버린 것이다. 한 달 전쯤, 석 달째 쓰고 있는 지갑을 대견스러워하면서 "이번에는 좀 오래 쓸 수 있어서 좋다"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있고 며칠 후에 지갑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는 많이 속상해 하였다. 며칠 동안 울먹거리며 집안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고 구석으로 손을 넣어보고 해도 나타나지 않는 지갑을 틈만 나면 찾았다. 나도 짐작이 가는 곳을 틈틈이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지갑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할머니께서 주신 돈은 어쩌고? 벌써 다 썼어?"
"아니! … 그런데 그건 비상금으로 아껴 두어야지. 에이! 지갑에 8천원하고 동전도 좀 있는데…."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건지…. 아이는 지난해부터 비상금을 챙기고 아껴두는 눈치다.

쓰던 걸 조금 더 쓰고 새 필통을 사라는 내 말에 새것 사고 싶은 것을 끝내 참지 못하고 제 용돈으로 샀고, 써보니 기대와는 달라 불편해도 좀 참다가 내게 좀 사주었으면 하고 말을 꺼낸 모양이다. 그런데 엄마가 사 줄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잃어버린 지갑 속의 8천원이 새삼 더 아까워지는 모양이었다.

"엄마, 나… 있지. 음, 있잖아… 만원만… 좀 주면 안 되나?"
"엄마는 그렇게 함부로 쓰고 잃어버릴만한 돈같은 건 없다! 그리고 만원이 적은 돈이니?"

"그럼 천원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오? 마마님!"
"얘는… 며칠 후면 추석인데, 그때 돈 생기잖아? 그리고 말이지. 세상에 공짜가 어딨니?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해야지. 안 그래?"

"그럼 저를 고용해주세요. 전 설거지나 청소를 몇 년째 해오고 있어서 제법 야무지게 잘하고요. 커피도 잘 타거든요. 라면도 아주 쫄깃쫄깃하게 잘 끓인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시켜만 주시면 기타 등등 아주 잘 합니다. 저를 고용해 주시면 실망하시지 않게 아주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제발 저를 고용해 주십시오."

솔직히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옆에서 보는 것이 딱하여 내 동전 지갑을 빌려달라고 하였을 때 만원 정도는 선심 쓸까 속으로 망설이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내 스스로 냉정하게 거절했었다. 필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듣고 보니 집에서 쓰게 하고 작은 것 하나를 사주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 스스로도 우기고 산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력서 같은 걸 써서 가져 와 보세요. 그게 정석이지. 말로는 누가 뭘 못하냐고요. 이력서 제출하는 것 텔레비전에서 못 봤어?"

아이의 입에서 선뜻 나온 "고용해 달라"는 말에 웃음이 일고, 장난기도 슬며시 생겨난 나의 이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가 쓱쓱 무언가를 급히 적더니 내게 내민 '자기소개서'였다. 지난해 이력서 쓸 일이 있어서 쓰고 남은 것을 탐내기에 주었더니 이제껏 보관했던 모양이다. 자기소개서를 내밀고 커피까지 한 잔 타 와서 또 다시 애원한다.

"저 좀 제발 고용해 주십시오!"

욕심을 내는 아이
▲ 일만 보면... 욕심을 내는 아이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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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이는 집안일을 곧잘 한다. 밖에 비가 오면 시키지 않아도 빨래를 걷을 줄도 알고, 주방에서 내가 무엇을 할라치면 다가와 감자나 양파도 선뜻 까주곤 한다. 함께 김치 담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얼마 전 손을 다쳐 깁스를 한 오빠의 간식을 챙겨 먹이는가 하면 오빠의 밥 수저 위에 반찬까지 얹어 주는 기특한 동생이기도 하다.

"네, 고용하겠습니다. 그럼 믿고 일을 맡겨 보겠습니다."

순간 아이의 눈이 빛나고 볼에 발그레한 웃음이 피었다. 이렇게 나는 아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였다.

아이를 키우며 속으로 망설일 때가 많다. 지난 번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처럼 아이가 속상해 하는 것을 볼 때면 '그냥 그 돈을 주고 위로해줄까?'와 '아니, 그 돈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좀 더 지켜보자!'사이에서 고민하고 망설인다.

이틀 전에는 '그냥 필통 하나 사줄까?'와 '불편할 것 같다고 했는데도 제가 우기고 샀으니 좀 더 지켜볼까?' 사이에서 망설였다. 글쎄? 어떤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을까? 어떤 선택이 현명할까? 이렇게 늘 망설이고 고민하는 동안 아이는 제 말대로 잘 먹고 잘 컸다.

"엄마, 그런데 내 고용 계약서가 없어졌어!"
"고용 계약서? 아하 그것. 엄마가 네가 어제 청소기 돌린 것 표시하고 엄마 책상에 두었어. 그런데 이력서가 이젠 고용 계약서야?"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틀 동안의 실적이 표시된 제 고용 계약서를 눈을 반짝이며 보고서야 가방을 내려놓았다. 밥상 차리기에 한 번, 커피타기에 두 번, 청소기 돌리기에 한 번이 표시되었다. 몇 번을 보아도 기분 좋은 고용 계약서이다.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노력이 보이면 약속대로 선불 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참에 아이들이 예쁘다고 어른들이 쉽게 주는 만원이 결코 쉽게 번 돈이 아니라는 것도, 얼마나 큰돈인지도 알려 주면서 말이다.


태그:#용돈, #자녀교육, #만원의 가치, #심부름,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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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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