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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사라졌던 중학생들의 연합학력고사가 부활된다. 지난 6일 "전국 16개 시·도교육감들이 경남 창원에서 간담회를 열고 중학교에서 연합학력평가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연합학력고사의 부정적 효과 때문에 학부모단체나 전교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년부터 "중학교 1·2·3학년을 대상으로 학기 초 진단평가와 학기말 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연합학력고사를 치르면 학교간, 지역간 비교를 통해 학력이 향상된다는데 시민단체들은 왜 연합학력고사를 반대할까? 연합학력고사를 실시하겠다는 발표가 있고 난 뒤 "월말고사와 0교시가 부활하고 방과 후 학교, 재량활동시간 등이 교과 중심으로 변질돼 운영되고 있다"는 광주전남지역 교육연대의 반대성명에서 볼 수 있듯이 연합학력고사가 실시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육감들의 주장처럼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연합학력고사가 실시되면 개인간 학교간 지역간 학교가 비교, 서열화되는 것은 틀림없다. 시작도 하기 전에 '월말고사, 0교시가 부활하고 방과 후 학교, 재량활동시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연합학력고사의 부활은 평준화의 포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간 지역간 경쟁이 되면 인성교육이 아니라 점수 몇 점 더 받기 위한 성적지상주의, 무한경쟁이 판을 치게 된다. 이는 연합고사가 실시됐던 1977년 이전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경쟁만이 살 길이며 한 줄로 서열을 매기겠다는 시장논리는 교육 분야뿐만 아니다.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시키려는 교육도 그렇지만 얼짱, 몸짱과 같이 외모로 사람을 서열화시키고, 얼마나 비싼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가, 얼마나 큰 고급 아파트에 사는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가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1퍼센트의 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라는 아파트 청약 광고에서 보듯 온 국민이 막가파식 힘의 논리, 저질 상업주의에 집단 마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 어디 사니?"

 

한 편으로는 임대아파트가, 또 한쪽으로는 '일반' 아파트와 '주택' 단지가 몰려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일반 아파트나 주택에 사는 지, 임대아파트에 사는 지, 묻는 인사라니 기가 막힌다. 임대아파트에 기초생활수급권자와 한 부모, 조손가정, 탈북부모의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이 학교에는 아파트의 수준에 따라 신분(?)이 매겨지고 신분에 따라 친구가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의 의욕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경쟁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쟁은 규칙이 있는 공정한 경쟁이라기보다는 막가파식 진흙탕 싸움이다. 아이들의 섬뜩한 대화에 어이없어 할 일만이 아니다.

 

명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단순히 여유로움 때문 만일까? 고급승용차를 타야하고 SKY 대학을 나왔다고 딱지를 붙이고 다녀야 대접받는 사회. 이러한 사회 풍토가 아이들의 친구까지 유유상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를 해서 얼짱이나 몸짱이 되어야 대접받는 풍토에서는 가짜학위 파문과 같은 일은 충분히 예고 되었던 결과다.

일등만이 살아남고 꼴찌는 살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는 사회에서 삶의 질을 말 할 수 있는가? 대학이 서열화 되다 못해 고교도 실업고, 일반고,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로 서열화됐다. 말이 좋아 평준화지, 평준화는 이미 물 건너 간지 오래다.

 

왜 연합학력고사를 강행하려고 할까? 진정 교육자라면 중학생들에게 무한경쟁을 시켜 닥쳐 올 후 폭풍을 한뻔 쯤 생각해 봤을까?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공부 못하는 인간은 살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각 시·도의 교육 수장들이 일등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으로 아이들을 몰아 갈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더 소중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성적'이라는 게 뭔가? 설마 학교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점수를 올려주는 학원으로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세계화시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암기한 시식의 양'이 아니라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매하신 교육감님께서 모를 리 없다.

 

지금이라도 후세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님들은 '무한경쟁이 살길'이라는 고집을 버리고 최소한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으로 바꾸는 길이 무엇인지 대안부터 찾는 게 순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유 포트와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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