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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가 좋을 대로 하라는 말을 하자 김억만이 우려했던 대로 사구조다는 김억만을 지목했다. 포수들은 김억만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거 호랑이 잡던 실력대로만 하라고.”

 

김억만은 화승총을 만지작거리며 소를 노려보았다가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김억만이 사냥을 하며 총부리를 겨누었던 짐승들은 최소한 도망칠 여지는 있었지만 지금 김억만의 눈앞에는 눈물이 그득한 눈망울을 한 채 말뚝에 묶인 소가 있을 따름이었다.

 

“난 못하겠소.”

 

김억만이 총을 내려놓으며 사구조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포수지 소 잡는 백정이 아니오.”

 

신유는 이미 자리를 피해서 없었고 군관 및 병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김억만과 사구조다를 번갈아 보았다. 사구조다는 피식 웃으며 소가 있는 곳으로 가 말뚝에 풀린 줄을 푼 뒤 외쳤다.

 

“이제 되었느냐?”

 

김억만이 쳐다보지도 않자 사구조다는 단도를 꺼내어 느닷없이 소의 엉덩이를 푹 찌른 후 몸을 피했다. 그 바람에 놀란 소는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날뛰더니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앙!

 

소가 내달림과 동시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소는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채 그 자리에서 푹 앞발을 꿇고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김억만이 총을 주워들고 총알과 화약을 넣고 화승에 불을 붙인 후 방아쇠를 당긴 과정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김억만의 총 솜씨에 사람들은 탄식조차 할 생각을 못하고 멍하니 이를 바라 볼 따름이었다. 김억만은 곧바로 꼬실대로 총구에 있는 화약 찌꺼기를 쑤셔 털어내고 화약과 총알을 다시 장전한 후 총을 사구조다에게로 겨누었다.

 

“이보게 이게 무슨 짓인가!”

 

배군관이 달려와 김억만을 막아서자 다른 포수들도 뒤늦게 달려와 김억만을 만류했다. 막상 사구조다는 놀라거나 화난 기색도 없이 손뼉을 짝짝 칠 따름이었다.

 

“역시 조선 포수들의 총 솜씨는 대단하오!”

 

사구조다는 껄껄 웃음을 남기며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자네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저 자가 군율로 자네를 벌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나?”

 

김억만은 얕은 한숨을 쉬며 총을 거두어 들였다. 그 스스로도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조선군은 청의 원군이 올 때까지 열흘 동안이나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 동안 소를 잡아 국을 끓여 모든 이들이 돌려 먹고 청의 요청에 의해 화승총을 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청나라의 포수들도 이 시범에 참가했지만 그들의 실력은 조선 포수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마침내 청의 원군이 도착하자 조선군은 배에 올라 나선과의 일전을 치르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자! 모두들 보라고!”

 

그간 불편했던 관계에서 포수들과 많이 친숙해진 배군관이 배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이제는 정말로 전투를 치르러 가는 것이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행여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면 가족들에게 증표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내 여기 이름을 써 놓은 천 조각을 한 장씩 나누어 줄 테니 증표가 될만한 것을 고이 싸서 내게 주게나.”

 

어떤 이들은 열손가락의 손톱을 모두 물어뜯어 천에 싸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머리카락 한줌을 잘라 천에 싸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 명, 김억만은 자신의 이름이 적인 천을 그냥 돌려주었다.

 

“저는 가족이 없습매다.”

 

김억만의 말에 배군관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꼭 살아서 돌아가게나. 아직 젊은 나이 아닌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천리타향에서 몽달귀신 될 일 있습니까. 장가는 가야디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며 배는 점점 북쪽으로,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화승총,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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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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