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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가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칠 때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도 더 좋아질 겁니다."
▲ 고향 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신덕식당 주인 "선운사가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칠 때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도 더 좋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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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장어 전문점을 경영하는 정영기(44)씨. 그는 대한민국 장어하면 손꼽히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의 토박이이자 이 지역에서 장어 전문점으로 2대째 가업(家業)을 성공으로 이끈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삶의 터전을 잡은 아산면에는 선운사가 있고 동백꽃이 있고 풍천장어가 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선운사에 들러 천년고찰이 주는 고즈넉함과 경외감을 맛보고 선운사 입구께에 다붓하게 모여 앉은 장어 식당에 들러 풍천장어의 별미를 즐기고 간다.

선운사 부근에 성업중인 장어 전문점은 모두 43개 업소. 그 중 관록(원조)으로 보나 손님 규모로 보나 사업장 크기로 보나 정씨의 '신덕식당'이 단연 돋보인다. 신문 방송 등 국내 언론 매체에 줄줄이 소개된 집이다. 

선운사와 풍천장어 그리고 장어에 곁들여 마시는 복분자 술은 이 고장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고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풍천'을 이곳의 지명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풍천은 조석(달과 태양의 중력에 의한 밀물 썰물 현상)과 조차(밀물 썰물 때의 수위 변화)가 큰 서해안 인접 하천의 기후적 특성에 맞춰 '바람 풍(風)'자와 '내 천(泉)'자를 합쳐서 지어낸 말이다. 물의 흐름이 변화무쌍하고 이런 환경에서 서식하는 장어가 바닷물을 타면서 바람을 몰고 온다고 해서 풍천장어라 이름 붙여졌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가장 큰 사업 밑천은 근면과 성실 

대학에서 전산학을 공부한 정영기씨의 본래 꿈은 아버지처럼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멋들어지게 컴퓨터학원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80년대 초만 해도 '전산학과'는 최고의 유망학과로 떠올랐던 분야가 아닌가. 내로라하는 첨단 학도로 촉망 받던 그가 부친의 가업인 '신덕식당'을 물려받기까지에는 우연찮은 사연이 배어있다. 군대를 마치자마자 찾아온 '허리 디스크' 때문이었다.

"원래는 작은 형이 아버님의 식당을 맡아서 운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허리가 아파 잠시 쉬는 동안에 제가 '딱' 걸려버린 겁니다. 아버님의 가르침 대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계속하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그게 행운이었는데, 전공을 살리지 못한 데 대한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휴일도 없이 봉사하다 보면 삶의 질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가장 값진 것 아니겠습니까."

당시에 그는 허리가 아파 불편한 몸이었는데도 다부지게 일손을 도왔다. 부친이 워낙 완고하고 깐깐해서 무엇이든 대충 하는 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청소는 정씨 몫이었고 식재료 운반이나 잔심부름 그리고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했다.

자식이라고 특별히 봐주는 법이 없었다. 종업원들보다도 더 힘들게 일했음에도 허리는 오히려 좋아졌다. 생각해보니 18년 전 부친이 가르쳐준 부지런함은 돈보다도 더 소중한 사업 밑천이 되었다.

그의 부친은 그에게 '제대로 돈 버는 요령'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서 공짜로 얻으려 하는 습성을 싹이 돋기도 전에 밑둥치부터 잘라버린 게 아니었을까.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강원도 처녀가 쌀밥 세 그릇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힘겨운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의 복분자 술과 풍천장어는 호사스러울 지경이다.
▲ 풍천장어와 복분자 술 '강원도 처녀가 쌀밥 세 그릇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힘겨운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의 복분자 술과 풍천장어는 호사스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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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기반을 닦아주신 덕분에 사업은 술술 풀렸습니다. 전산학과를 나온 제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손 빠르게 활용한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 노력해야 하겠지만 이젠 무턱대고 돈을 벌기보다는 '제대로 잘 쓰는' 요령을 배워야겠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돈 번 자의 여유만만함'이 아니라 소탈한 이웃집 식당 주인으로서의 '후덕하고 진솔한 마음가짐'이 배어있었다. 그의 '신덕식당'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넉넉하고도 따스한 마음이 곳곳에 스며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덕식당을 찾아왔던 고객들은 장어 맛도 좋았지만 주인의 세심한 인정과 사람 됨됨이에 더 큰 감동을 먹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사업장을 홍보하거나 '맛있는 집'이라며 소문 내는 일 따위엔 흥미를 끊은 지 오래다. 자리 예약이 마감되어 단골조차도 되돌려 보내야 하는 일이 잦은 그가 애써 홍보에 요란을 떨 이유가 없다.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진풍경. 이 광경을 지켜보는 기자의 마음 속에 어찌 부러운 마음이 섞이지 않겠는가.

"풍천장어 맛은 어느 집이나 똑같이 맛있습니다. 복분자 술도 마찬가지죠. 중요한 것은 업소의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좋으면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많이 찾아주시는 것 아닐까요?"     

얼핏 들어보면 알듯 말듯 모호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소문을 듣고 풍천장어 아이템으로 음식 장사를 해볼 테니 체인점을 내달라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정씨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한다. 장어 맛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어도 40년 가까이 2대째 전해 내려온 독특한 분위기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신덕식당으로 체인 사업을 벌여서 돈을 더 벌 생각도, 사업장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오로지 자신을 키워준 고향 품을 더 훌륭한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치기로 했다.

그는 이미 자비를 들여 45인승 대형버스 한 대를 대절해 놓았다. 서울시립 동대문 청소년수련관에서 사진 강좌를 수강하는 어르신들을 모두 초대하여 선운사 관광을 체험케 하고 풍천장어의 별미까지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선운사 주지스님과도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진지한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고, 지역 인사들이나 행정 지도자들과도 자주 만나서 주민이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궁리하고 있습니다."

'눈물처럼 뚝뚝 지는 동백꽃' 흐드러지게 다시 피워낼 것'

전국에서 식도락가들이 줄을 잇는 신덕식당은 이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신덕식당의 아침 전경 전국에서 식도락가들이 줄을 잇는 신덕식당은 이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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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를 최고의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한 그의 열정이 과연 언제쯤 빛을 보게 될까. '제대로 돈을 번 사람이 제대로 돈 쓸 줄도 안다'는 것을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지역사회 발전을 앞당긴 숨은 공로자로서 주민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는 근래에 업소 위생수준 향상과 음식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이 뛰어나 고창군수와 전북도지사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좋은 식단 실천사업에 앞장선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제 곧 선운사 경내에 가을이 찾아와 주변 풍광을 더 아름답게 물들일 것이다. 눈 내리는 한겨울이 되면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동백꽃의 자태가 세인들의 찬탄을 더욱 자아내게 할 것이다.

정씨는 오늘도 고향 발전을 위한 생각으로 밤잠을 설친 채 싸알해진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선운사 비탈길을 오를지도 모른다. 오래되어 쇠락해진 선운사 동백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기 위한 뜨거운 열정도 그와 동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힘겹게 취재 섭외한 끝에 인터뷰가 이루어졌습니다. 고창 풍천장어의 본가답게 전국 곳곳에서 사시사철 식도락가들이 찾는 곳이지만 정작 식당 주인은 선운사 지역경제 발전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창과 선운사 발전을 위해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는 분은 직접 연락 하시기 바랍니다.



태그:#선운사, #풍천장어, #신덕식당, #복분자,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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