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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두터운 감옥 장벽 안으로 인권의 햇살이 비춰들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반만 맞다. 비록 인권이란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부당하고 참혹한 처우와 규율에 맞서 몸을 내던졌던 수많은 이름 모를 재소자들이 있었고, 이들의 저항이 있었기에 “민주화”와 더불어 감옥은 서서히 인권의 사각지대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양심수,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차례로 출현하는 시대가 되었어도 한국의 감옥은 여전히 ‘인권의 무덤’속을 헤매고 있다.

 

 지금도 안동교도소에서는 “닭장보다, 개집보다도 못한” 교도소 환경을 개선하라며 심진보 씨(포항건설노조 파업으로 구속)와 정창윤씨(오산 수청동 철거민 투쟁으로 구속)가 보름 넘게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와 철거민,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서럽게 천대받아 온 일단의 사람들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최소한의 요구를 내걸고 정부와 힘센 자본에 맞서 저항했다. “민주화”된 대한민국 사회는 이들의 간절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범법자”로 몰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투쟁을 멈출 수는 없었다. 감옥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1980년에 지어졌다는 안동교도소는 그 연륜 만큼이나 시설 환경이 낙후되어 있다. 두 사람은 별도의 독거 사동에 수감되어 있다. 독거실의 크기는 화장실을 포함해서 0.8평밖에 안 된다. 키가 172cm인 심진보씨는, 너무 비좁아 똑바로 누울 수조차 없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용변을 보고나서 바가지로 물을 퍼부어야 내려가는 반 수세식인데다 낡고 깨진 변기 틈새로 쥐들이 들락날락거린다. 화장실엔 문짝도 없고 55cm 정도 되는 칸막이만 있으니 악취도 심하고, 밖에서 누군가 들여다 볼 때마다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더러운 변기 옆에서 매일 같이 식기를 닦고 빨래를 한다.

 

 세탁물 건조대를 자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빨래도 방안에서 말려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쇠창살 간격(4cm×3.2cm/40칸)이 너무 촘촘해서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고 창문 밖으로 빨래를 내걸 수도 없다.

 

 안동교도소에는 이렇게 생긴 독거실이 두 개의 건물(사동)에 몰려 있다. 정창윤씨의 말에 따르면 이곳엔 주로 정신분열증 환자나 ‘요주의 인물’들이 수용된다고 한다.

 

 머지않아 추운 겨울이 다가오지만 이곳에 설치된 난방이라고 해봤자, 복도에 있는 스팀이 고작이다. 더운 바람은 거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마루 바닥은 낡아 움직일 때마다 들썩거리고 벌어진 틈새로 묵은 먼지와 오물들이 스멀스멀 풍겨져 나온다. 벽지라도 있으면 냉기가 덜 할 텐데, 언제부턴가 “보안상의 이유”라며 벽지마저 뜯어버렸다.

 

 재소자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2003년도 이후 전국 교도소(구치소)에서 약간의 시설 환경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자동차로 치면 차체에 있는 근본 결함은 남겨둔 채 간단한 부품 몇 개 교체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구속남발로 인한 과밀 수용 문제, 2~3천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규모 구금시설, 외부 감시가 불가능한 폐쇄형 감옥 위주의 행정체계 등 재소자들의 인권을 억누르는 한국 감옥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동교도소는 이런 작은 변화마저 거치지 않은 채 고장난 차처럼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시설 뿐 만 아니라 재소자 관리를 총괄하는 소장을 비롯한 안동교도소 관료들의 의식 수준 또한 낙후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어느 날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취사장에서 밥이 설었다는 이유로 점심이 나오지 않았다. 밥이 없으면 건빵(대용식량)이라도 지급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항의하자, 교도관들은 규정에 없다며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

 

 정창윤씨는 안동교도소의 이런 사정을 구속노동자후원회를 비롯한 외부의 인권단체에 알리기 위해 긴급하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교도관들이 내용을 검열하고 나서는 ‘안 붙이면 안 되겠느냐?’며 회유를 하더니, 이를 거부하자, 등기우편을 이틀이나 늦게 발송하였다고 한다.

 

 심진보 씨가 부인에게 발송한 등기우편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반 우편으로 둔갑해서 20일 가량이나 늦게 도착된 적도 있다고 한다. 재소자로부터 접수된 편지는 신속하게 발송(늦어도 24시간 이내)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렇게 마음대로 늦게 발송해 놓고도 교도소 측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교도소장은 심진보 씨가 면담하는 자리에서 시설 개선과 재소자 처우개선을 강력히 요구하자, ‘그걸 바꾸려면 10억, 20억이 들어간다’며 볼멘소리를 하더니, 10분도 안돼 ‘누가 이런 면담을 주선했느냐?’며 부하직원을 호통 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고 한다.

 

 교도소장의 예산타령은 핑계라는 생각도 든다. 안동교도소는 지금 민원실 등 외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공간에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다. 건설 노동자인 심진보씨는 화장실 변기를 고치고 콘크리트 칸막이를 높이고 벽지를 바르는 데 그다지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전시 행정에 들이는 노력과 예산의 반에 반만이라도 들인다면 재소자들이 보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들의 요구가 교정당국이 들어줄 수 없을 만큼 무리한 것인가? 언젠가 나는 재소자들의 불만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모 교도소의 총무과장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교정학 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다며 내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는 대뜸 “한국의 재소자 인권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왜 자꾸 재소자 인권만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며 “무고한 여성들을 성추행하고 연쇄 살해한 범죄자들에게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냐? 그 피해자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전혀 관계없는 두 가지 사실을 연결시켜 주장하는 그의 억지 논리가 황당하게 들렸지만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답변은 똑같다.

 

 끔찍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형벌이 뒤따라야 되겠지만, 자의적인 가혹행위나 인간이 살 수 없는 열악한 곳에 구금해 놓고 부가적인 고통을 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게다가 전국 구금시설에 수감된 4만여 명의 재소자들 가운데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기본권을 억누르는 잘못된 법 때문에 억울하게 구속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외부의 통제가 불가능하고 인권이 숨 쉴 수 없는 감옥을 내버려 두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권력자들에게 “공포정치”의 수단을 남겨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들은 이 수단을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알량한 인권마저 통째로 앗아 갈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광열씨는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도소, #안동교도소, #인권, #재소자, #양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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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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