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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홍의 <꽃에 홀려 임금을 섬기지 않았네>
 김상홍의 <꽃에 홀려 임금을 섬기지 않았네>
ⓒ 새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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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시들을 한데 모았다. 한시와 함께 그 시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오늘과 연결되는 부분들을 곁들여 풀어주고 있다.

왕건의 '신가랑(新嫁娘)'은 신부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시. 갓 시집온 새색시가 시어머니 식성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마침 시누이를 통하여 이를 짐작했다는 시 속의 이야기를 듣는다.

시집온 지 3일 만에 부엌에 들어가서
손 씻고 국과 탕을 끓였지요
시어머님 식성을 아직 알지 못해서
시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하였어요
- 왕건의 ‘신가랑’ 전문


이신의 '민농(憫農)' 2수는 농민들의 노고와 힘겨운 삶을 느끼게 하는 시다. 지은이는 이 시를 두고 "밥상 위에 오른 농산물이 모두가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란 사실과 그들의 고달픈 삶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호미로 김을 매는데 해는 중천에 있어
땀방울이 곡식 밑의 흙으로 떨어지네
뉘라서 알리오 소반 위의 밥이
알알이 모두가 농부의 피땀인 것을
- 이신의 '민농' 2수 중 둘째 수


송나라 장유의 '잠부(蠶婦)'라는 시도 핍진(乏盡, 재물이나 정력 따위가 모두 없어짐)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해설에서 "비단옷을 입는 도성 안의 귀한 사람들은 누에치는 사람들의 신고를 조금도 알지 못하기에 더욱 서럽게 눈물을 뿌린 것"이라 풀면서 "이 시는 비단을 생산하는 주체가 그 생산의 결과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고발한 것"이라 말한다.

어제 도시에 갔었는데
돌아올 적엔 수건에 눈물이 가득했네
온 몸에 비단 옷 입고 있는 사람은
누에치는 사람이 아니었네
- 장유의 '잠부' 전문


이상은의 '무제(無題)'는 '봄누에'와 '촛불'에 빗대어 님에 대한 깊은 사랑, 내가 죽어서야 그칠 수 있는 사랑을 노래한다. 이상은은 두목, 온정균과 더불어 만당(晩唐)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특히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연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한다.

만나기도 어렵지만 헤어지긴 더 어려워
봄바람이 기력 없자 온갖 꽃 시드네
봄누에는 죽어야 실 뽑기를 그치고
촛불은 타서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르네
- 이상은의 '무제' 중에서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아니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고 노래하는 송나라 시인 대익의 '탐춘(探春)'도 읽어보자. 정작 찾던 봄은 바로 자기 주변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들려준다.

온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을 보지 못했네
지팡이 짚고 구름 있는 곳까지 갔건만
집에 돌아와서 시험 삼아 매화 가지를 보니
봄은 벌써 와 있었네
- 대익의 '탐춘' 전문


같은 봄이라도 봄을 바라보는 시인들의 시선은 다채롭다. 춘신(春信) 매화를 소재로 한 장유한의 '춘여원(春女怨)'은 봄을 사유한 시다. 오고야 마는 봄 반드시 순리대로 제자리를 찾는 우리네 역사를 연상시킨다.

백옥당 앞에 한 그루 매화를
오늘 아침 문득 보니 꽃이 두세 송이 피어 있네
우리 집 문은 모두 꼭꼭 닫혀 있는데
봄은 어떻게 내 집에 들어왔느뇨
- 장유한의 '춘여원' 전문


무릉도원은 없다. 다만 난세를 피해 온 사람들의 거처일 뿐이라 노래하는 왕안석의 '도원행(桃源行)'은 유토피아를 부정하는 시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되고, 또한 난을 피해 산 속에서 숨어사는 세상이 아닌 태평성대, 즉 성군의 출현을 기원한 시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망이궁에서 사슴을 말이라 우기니
진나라 사람들 반이나 만리장성 아래서 죽어갔네
난을 피해 숨은 이들 상산의 네 노인뿐만 아니고
도원에서 복숭아 심었던 이들도 있었네
여기에 와 복숭아 심은 후 세월이 얼마나 지났던가
꽃을 따고 열매를 먹고 가지로 땔감을 하였네
자손들 태어났으나 세상과 격리되어
부자지간만 알고 임금과 신하가 있는 줄 몰랐네
- 왕안석의 ‘도원행’ 중에서


퇴기의 노래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은 만고의 절창으로 통한다. 평양의 기생들 중에서 백거이의 '비파행'과 '장한가' 그리고 조선의 석북 신광수의 '관산융마'를 암송하여 시창(詩唱)하지 못하면 기생 축에도 끼지 못했다 한다. 특히 '비파행' 중 "저는 본래 서울의 여자로" 시작되어 "꿈속에서 우니 눈물이 붉게 흘렀답니다"로 끝나는 퇴기의 술회를 그대로 옮겨놓고 있는 시행들이 인상 깊다.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꽃에 홀려 임금을 섬기지 않았네 - 중국명시산책

김상홍 지음, 새문사(2007)


태그:#한시, #김상홍, #중국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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