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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일간의 억류 끝에 낭보가 들어왔다. 납치됐던 남은 19명이 이제 가족 품에 돌아 올 수 있게 됐다. 41일간 숨을 죽이며 기다려왔던 유족들은 마음 놓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차가운 사막 한가운데서 유명을 달리한 2명의 희생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 배형규씨와 심성민씨.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소신을 지키고자 희생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기에 바라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마음이 더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두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서로 다른 행보를 보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배형규 목사의 살해 후, 유가족들은 끝까지 기독교인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을 선택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배형규씨의 시신은 아직도 남은 19명의 귀국을 기다린 채 쓸쓸히 영안실에 누어있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남은 팀원들의 돌아와야 장례를 치르겠단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다른 가족들에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 입장인데도 도리어 위로를 받는 처지를 미안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기도로 버티어 냈다.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 팀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던 필자도 배형규 목사 가족의 의로운 처신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고 피랍된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 후로 몇 주 뒤에 또 다른 비보를 듣게 되었다. 심성민 씨의 피살 소식을 접한 필자는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을 베풀더니, 부디 그곳에서 생시 마음먹은 대로 더 크고 더 넓은 뜻을 가져라'며 울음을 애써 참던 심성민씨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아들의 선행을 이해해 주고 넓게 바라보는 부정을 다시 한번 생각게 했다.

두 명의 여성이 풀려났다. 그리고 남은 19명을 석방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아직 모두 귀국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뻤다. 19명의 아까운 목숨은 지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보고 난 뒤 씁쓸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밝힌 고 심성민씨의 아버지 심진표씨의 입장은 너무 성급했다. 샘물교회와 정부에 소송을 걸겠다는 이야기는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재를 뿌리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돌아오게 될 19명의 피랍자들에 진심 어린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소송을 걸겠다니, 몇몇 네티즌들은 19명의 피랍자들이 돌아오게 된 것이 그렇게 배 아프냐며 의견을 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헌신을 다한 정부에 소송을 내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안전수칙을 어겨 이번 피랍 사태를 유발한 교회 지도부에 대해 소송을 묻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심성민씨를 억지로 끌고가 피살됐다는 얘기는 말이 되지가 않는다. 20살이 훌쩍 넘은 성인이 남의 강요로 사지에 뛰어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던가?

평소 많은 선행을 베풀며 살았던 아름다운 청년 심성민씨에 대한 보도가 여러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심진표 씨의 무책임한 발언은 아들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형규 목사의 가족들과는 상반된 행보를 보노라면 심진표씨의 인터뷰 내용이 더욱더 안타까워진다. 심성민씨의 영결식에서 심진표씨가 되뇌던 "부디 그곳에서 생시 마음먹은 대로 더 크고 더 넓은 뜻을 가지라"는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울린다.

태그:#아프가니스탄, #피랍자, #심성민, #심진표, #배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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