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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시아, 마지막 남은 옴파로스” 책 표지
ⓒ 이지출판
지난 5월 초 나는 중앙아시아 키르키스공화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단체 행사에 수행 취재한 것이어서 그 나라를 제대로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그야말로 여행이랄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한 민족의 생활상을 보기 위해선 재래시장에 가봐야 하고, 현지인들의 집에서 숙식을 해보아야만 하는데 그건 꿈조차 꿀 수 없는 촉박한 일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중앙아시아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염원을 대신 이루어 줄 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중앙아시아 전문 여행가인 이한신씨가 10년 동안 중앙아시아를 꼼꼼히 답사한 책 <중앙아시아, 마지막 남은 옴파로스>를 이지출판(대표 서용순)을 통해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발칙하다. '마지막 남은 옴파로스' 이게 무슨 말이던가? 유명 상표에 민감하지 않은 내가 나중에 안 걸로는 유명 의류 상표(브랜드)라나? 하지만 정확한 어원은 '배꼽'이란다. 옴파로스(Omphalos)는 라틴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의미를 가진 낱말로 가운데 즉 중심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를 지구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km 떨어진 곳에 있는 델포이시를 그리스 사람들은 '지구의 배꼽'이라 생각했었다. 기원전 3~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델포이시의 아폴로 신전의 내실에는 아폴로 상이 놓여 있었으며, 지하실에는 '옴파로스'라는 돌이 보관되어 있었다. 현재 이 돌은 델포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중앙아시아를 지구의 배꼽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지은이는 지구의 배꼽을 찾으러 간 것일까? 실제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아아시아로 가는 길을 세계 배낭여행자들은 꿈의 무대로 생각한단다. 하지만, 중앙아시아는 여행하기가 절대 만만한 땅이 아니다.

▲ 파미르 고원
ⓒ 이지출판
▲ 키르키스공화국 이수쿨 호수
ⓒ 이지출판
그는 중국 땅이 된 신장 위구르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공화국, 호수의 나라 키르키스스탄공화국, 파미르 고원의 나라 타지키스탄공화국, 실크로드의 나라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사막의 나라 투르크메니스탄공화국을 섭렵한다.

책은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할 것인지, 비자는 어떻게 내야하는지, 어디는 어떤 호텔이 배낭 여행자에게 제격인지, 어떤 지역은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 꼼꼼하게 살펴준다. 그러면서 여행은 그저 로맨틱한 것이 아니라 죽을 고비도 넘겨야 진정한 의미가 살아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음식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화상 입은 얼굴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카자흐스탄 서부 사막과 스텝을 마음 놓고 돌아다닌 덕분에 고생을 하고 있다. (중략) 의사는 작은 수술용 칼로 내 얼굴을 바둑판처럼 갈라놓고, 각질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그건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군인으로 위장한 강도에게 총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맞아 병원으로 후송된 뒤 겨우 의식을 되찾은 사건이며, 호텔의 방이며 화장실을 온통 뒤덮은 작은 벌레들과의 전쟁으로 고생했던 일, 물이 없어 며칠을 세수도 못하고 지냈던 일하며, 창고에서 자는 것도 그는 감지덕지 받아들인다.

▲ 키르키스족의 주식인 난(빵)을 굽는 모습
ⓒ 이지출판
▲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누쿠스 바자르
ⓒ 이지출판
▲ 타지키스탄공화국 호르그에서 만난 남매(위), 험난한 산꼭대기에서 컨테이너 박스 카페를 운영하는 꼬마 사장님들
ⓒ 이지출판
▲ 카자흐스탄공화국 일리타우 국립공원에서 낚시를 하는 무슬림 여성들
ⓒ 이지출판
또 그는 3박4일에 걸쳐 기차를 타고 3000km를 가는 '기차여행'을 비롯해, 폭이 4.5m 밖에 안 되는 수십 km의 낭떠러지 비포장도로 위를 7시간 동안 달리는 위험천만한 여행도 마다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런 어려움을 또 다른 즐거움으로 환원할 줄 아는 슬기로움을 가졌다.

"전기가 없는 카라쿨에는 물도 귀해 세수는커녕 발도 못 씻고, 양치질도 못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푹신푹신한 솜이불을 아래위로 두 개나 깔아 주어 파미르 고원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의 끝자락 카라쿨 호수. 물도 소중하다 / 불도 소중하다 / 사람도 소중하다 / 세상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 나도 소중하게 생각된다 / 모든 것이 귀하고 귀한 곳에 내가 누워 있다 / 오늘이 참으로 소중하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나는 소중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서 이곳의 가을과 겨울은 더욱 깊다.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저절로 영혼이 깊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을과 겨울을 지내보면 안다. 누구라도 푸시킨이 되었다가 도스토예프스키도 되었다가 고리키도 되었다가 차이코프스키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 땅에서 가을과 겨울을 함께 하면 절로 그리될 것 같다."

▲ 키르키스스탄공화국의 차른 계곡
ⓒ 이지출판
▲ 수십 킬로미터 낭떠러지에 걸린 폭 4.5미터 비포장도로를 아슬아슬하게 가야하는 타지키스탄공화국 팬 마운틴 산길
ⓒ 이지출판
그의 여행을 따라가면 단순히 여행안내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한편의 수필도 만나게 된다. 또 철학 한편도 같이 나누고 있다.

이 책은 정작 글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도 올려 있고, 사진의 질감이 조금 떨어지며, 설명이 생략된 채 약간은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드는 옥에 티도 존재하지만, 그것이 이 책을 칭찬하려는 나의 선택을 거두게 하지는 못한다.

이제 처서가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서 살사리꽃(코스모스)과 귀뚜라미의 아름다움이 새삼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 가을, 이 책을 곁에 두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같이 느껴보면 좋을 일이다.

"여행은 여유와 느림의 철학을 배우는 일"
[인터뷰] 지은이 이한신

▲ 이한신씨
ⓒ김영조
- 여행을 좋아하게 된 계기나 중앙아시아를 탐닉하게 된 사연은 무엇인가?
"사실은 중앙아시아에 발을 디디면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엔 비행기로 여행을 했지만, 그 뒤 여행했던 곳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비행기가 아닌 발로 가보아야 할 명분을 찾았다. 결국은 울퉁불퉁한 길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해야 한다. 중앙아시아는 젊었을 때 험난한 세계도 돌아봐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고, '문명의 세계로 나가지 마라'라는 계시를 준 듯하다.

중앙아시아 5개 나라 비자를 한 번 내는데 무려 1500달러가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반복되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일본이란 나라는 나를 화나게 했다. 그곳 사람들로부터 '한국 사람도 이 길을 지나가나? 일본인은 많지만 한국 사람은 처음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행도 국력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오기가 발동하여 묻기 전에 이마에 여권을 붙여 보여주곤 한다."

- 어리석은 질문을 하겠다. 얼굴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면서도, 강도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음의 문턱까지 가면서도 여행을 했다. 또 2달러짜리 창고에서도 자고, 며칠 째 세수도 못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목숨을 걸다시피 할 가치가 여행에 있는가?
"지금 인질극을 벌리고 있는 탈레반들에게 잡혀 곤혹을 치르기도 했었다. 이 지역은 특별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어려운 지역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믿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총을 들이대도 무섭지 않았다.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중앙아시아는 내게 포근하다. 또 한국인으로서 이 곳 여행의 첫 삽을 떴다는 것이 뿌듯하다. 나는 힘들여 갔지만 이후 한국인들이 이 길을 따라 쉽게 갈 수 있을 것이기에 할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지난 5월 키르키스스탄공화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여성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 곳곳에서는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아름다운 여성을 많이 만난다. 지은이는 여성을 모두 아름답게 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중앙아시아 여성들이 그렇게 아름다운가?
"단체여행을 하면 구속되기 때문에 진실을 볼 수가 없다. 나는 혼자서 자유스런 여행을 했기에 문명세계에 찌들지 않았던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나는 무공해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성상이 아니다. 누구든 중아아시아에 혼자 자유스럽게 하면 나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 책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현지인이 많이 등장한다. 실제 그곳 사람들이 그렇게 훈훈한 사람들인가? 아니면 지은이의 마음이 따뜻한 탓에 돌아오는 보상인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고, 한국과 그곳에서 만났을 때 주고받은 마음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을 보고 작은 힘이 돼주곤 했는데 아마 그것이 정으로 다져진 것이라 생각된다. 누구든 나중에 그 사람을 또 만나려거든 마음을 다한 행동을 해야 할 것이란 생각으로 대했던 것이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오는 것일 게다."

- 중앙아시아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중앙아시아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일본은 15년 동안 중앙아시아에 문화사업을 했고, 그 대가로 석유·천연가스 사업권을 따냈다. 하지만, 한국은 잘못된 접근 방법으로 이미 팽 당했다고 보아야 한다. 앞으로 남은 카프카스, 발틱 3국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또 한국의 언론들은 고려인의 진심이나 안타까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 오랜 여행 끝에 얻은 철학이 있다면.
"나는 군자금 별로 없이 여행을 했다. 나에게서 여행은 없는 자가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얻은 것은 '여유'와 '느림'의 철학이랄까? 내가 중앙아시아에서 이 '여유'와 '느림' 없이 여행을 했더라면 지금의 얻음과 행복은 없었을 것이다. 아직 많이 살아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인생도 이 여유와 느림을 가지고 살 때 만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올 겨울 카프카스와 발틱 3국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의 인생에서 여행은 시작이요 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여행을 해야 하고, 거기서 만족을 얻는 그는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사람일까? 그는 여행 얘기를 할 때엔 언제나 눈이 빛나고 있었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마지막 남은 옴파로스 - 유목민 이한신 9년 동안 12만Km를 기차로 떠돌다

이한신 글.사진, 이지출판(2007)


태그:#중앙아시아, #이한신, #이지출판, #여행,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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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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