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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덮친 대지진, 조선인 학살로 번지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진재

 

간토대진재는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간토 지방을 엄습한 리히터 규모 7.9의 대지진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순간 전화는 불통됐고 교통시설이 파괴됐으며, 수도와 전기가 끊겼다. 도쿄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나 관청가와 가옥 밀집지대를 태우며 9월 3일 새벽까지 계속됐다. 이 대화재로 도쿄의 밤 기온이 46℃까지 오르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진재로 인한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계엄령과 비상징발령을 내렸다. 혼란을 틈타 집과 공장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극물을 집어넣고, 약탈과 부녀자 성폭행 등을 하는 불량한 사람들로부터 일본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불량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재일조선인이었다.

 

일본 정부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는 신문을 통해 유포됐다. 일본 경찰과 자경단들은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고, 그 시체를 길거리에 방치하다가 나중에 한데 모아 불에 태워 버렸다. 재일조선인들은 살인자와 약탈자로, 강도와 성폭행범으로 몰려 일본 경찰과 자경단들에 의해 6천여 명이나 학살됐다.

필자는 간토(關東)대진재 84주기 재일조선인학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촉구를 위한 행사의 주최 단체인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이하 아힘나운동본부)'의 대표다.

 

9월 3일 간토대진재 84주기 특별행사일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일꾼들의 마음이 바빠지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간토대진재 당시 재일조선인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호소문에 동참할 일본인 50명의 서명을 받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호소문에 동참할 일본인 50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게 한국에서는 쉬울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일본에서 서명 작업을 추동하고 있는 발기인 중의 한 사람인 다카하시 신코(일본 아시아하우스 대표)가 메일을 보내 왔다. 일본인들은 '간토대진재'는 알아도 '재일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호소문에 동참을 촉구하려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매우 기초적인 학습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해 온 것이다.

 

아힘나 운동본부가 이번 일을 기획하면서 세운 목표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1923년에 일어난 간토 대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안'이 제정되도록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는 것. 아울러 일본 의회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특별법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진보적인 의원들을 추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호소문에 찬동하는 사람을 모으고 있는 발기인 다카하시 신코 대표는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인 '도쿄네트'에 정식적으로 이 호소문에 동참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도쿄네트는 이 건을 이례적으로 다루어 사무국장회의에서 각 지역네트에 호소문을 보내 이 건을 공식 의제로 삼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카하시 신코는 단순히 이름을 올리는 서명이나 혹은 어떤 자리에서 그저 구호만 외치는 정치단체장 혹은 개인은 배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디까지나 한국, 일본 시민이 함께 '행동하는 활동으로 해나가고 싶어' 더디지만 진지한 찬동인을 모집하고 있으니 답답하겠지만 조금만 참아달라는 내용의 연락이 왔다.

 

다카하시 신코 대표가 보내온 메일에 첨부된 온 30명의 찬동인의 명단에는 이런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다. 
 

赤司暸雄(아카시 아키오, 시모노세키)
'과거를 보지 않는 자는 장래에도 과오를 범한다'. 이것은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말입니다만,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고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사람들의 역사를 배우고, 일본이 범한 과거의 역사도 배워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은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中野紘一(나카노 코우이치, 후쿠오카)
대학살에 대해서 알고는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모릅니다. 일본인의 대부분이 모르는 대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일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성공시킵시다.

 

鍬野保雄(쿠와노 야스오, 나가사키)
일본의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 일본과 조선의 평화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과거를 직시하여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寺尾光身(테라오 테루미, 아이치)
실질참가는 못합니다만 응원하고 있습니다.

 

石川晶子(이시카와 아키코 , 후쿠오카)
부(負)의 역사는 하나씩 청산되지 않으면 더불어 평화로운 미래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멈춰 서서 과거를 눈여겨봅시다.

 

水戸喜世子(미토 키요코, 도쿄)
억압자와 피억압자에 국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오스기 사카에(大杉栄) 등 일본인 희생자에 대해서도 이름공표, 명예회복, 사죄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鈴木法拳(묘법사 스님)
세계평화는 아시아의 연대부터!

 

緒方貴穂(오가타 타카오, 후쿠오카)
이 진상규명은 원래 일본인이 주체적으로 달라붙어야 할 과제입니다. 패널 전시회가 성공을 기원하며, 일본에서도 개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柴田一裕(시바타 가즈히로, 후쿠오카)
일본정부는 학살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진상규명을 하라!

 

西成健 (니시나리 켄, 교토)
'6,000 명'이라는 숫자를 내어 "근거는?"이라고 찍히거나 '대학살'이라고 써서 "기준은?"이라고 찍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취지에는 찬동합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1980년의 광주학살을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1923년에 일어났던 나라 잃은 백성이 당한 간토대진재의 재일조선인 대학살을 학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해내어 현실의 은폐된 상황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같은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과 피부색으로 존재하는 은폐된 차별의식을 공개적으로 반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관동대진재 재일동포학살에 관한 진상규명과 명회회복을 위한 심포지움


 

 

* 장소 : 대한민국 국회의원 회관 소회의실, 의원회관 전시실( 대회의실 앞 로비 )
* 일시 : 9월 3일(월) 오후 2시
* 주최 : 아힘나 운동본부, 日本 NPO APB, 日本 아시아하우스
* 후원 : 국회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
* 협력 : 日本 고려박물관

* 내용
가) 1부 : 一人劇 : 송부자 (고려박물관장)의 "在日三代史와 관동대진재"
나) 2부 : 관동대진재 재일동포학살에 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심포지움

* 발표자
한국측 :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상" - 강덕상 교수( 일본시가현립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측 : "일본의 국가적 책임과 일본 민중의 책임" - 야마다 쇼지 박사 (전 릿교대 교수)
在日측 :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활동과 한국정부의 책임" 이은자 박사 (간사이학원대학 객원강사)
증언자 : 야끼가야 타에코 (당시 10살 때 조선인학살 목격)

다) 상설마당 :
- 관동대진재 재일동포학살 그림 및 사진전 ( 국회의원회관 / 9월 3일부터 4일까지 )
관동대진재 재일동포 학살 관련 사진 및 그림, 당시 신문자료 30여점 전시
- 강제연행재일조선인을 위한 카미시바이
한·일합병이후 벌어진 일본제국의 폭압정치와 재일동포들의 꿋꿋한 삶을 그린 카미시바이

3. 시민·학생들을 위한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 그림 사진 전시회
* 장소 : 서울시청 앞 광장
* 일시 : 9월 10일(월) ~ 16일(토)
* 주최 : 제1회 역사NGO 세계대회
* 주관 : 아힘나운동본부
* 내용 : 상설마당
- 관동대진재 재일동포학살 그림 및 사진전
관동대진재 재일동포 학살 관련 사진 및 그림, 당시 신문자료 30여점 전시
- 강제연행재일조선인을 위한 카미시바이(그림이야기)
한·일합병이후 벌어진 일본제국의 폭압정치와 재일동포들의 꿋꿋한 삶을 그린 카미시바이(그림이야기)


태그:#간토대진재, #아힘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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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천안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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