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경춘선 강촌역 승강장 풍경
ⓒ 이승철

"아니, 공공장소에 써 갈긴 이따위 지저분한 낙서가 문화라고?"

등산복 차림의 나이든 사람이 벌컥 화를 낸다. 경춘선 강촌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등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강촌역 승강장에 들어서자 철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사각형의 콘크리트 기둥들이 하나같이 낙서로 가득했다.

"그럼은요, 이 낙서들 이거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그들만의 정서와 생각을 표현한 독특한 문화지요, 왜 이해가 안 되십니까?"

같은 일행인 듯한 약간 젊어 보이는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초로의 등산객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 등산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부 나이 든 사람들의 의식 속에 문화라는 단어는 상당히 고상하고 품위 있는 학문이나 예술 정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이렇게 공공장소인 철도역 승강장 기둥과 벽면에 크고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써놓은 글들이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고, 하나의 문화현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강촌역, 젊은이들의 해방구, 서울이라는 숨 막힐 것 같은 거대한 도시의 탈출구이자 젊은이들의 낭만이 살아 숨 쉬는 곳, 내 젊음이 한창이던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에 걸친 시기는 지금 낙서의 주인공들인 오늘의 젊은이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기였다.

▲ 기둥 옆에 붙어선 저 젊은 여성도 혹시 지금 낙서하는 중일까?
ⓒ 이승철
▲ 철길을 사이에 두고 벽면도 기둥도 모두 낙서판이 되었다.
ⓒ 이승철

그러나 그 시절의 내게도 이 강촌역은 여전히 내 젊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낭만이 있고 울분을 토해낼 수 있었던 가장 가깝고도 멋진 장소였었다. 시퍼런 강물 위에 걸쳐 있는 약간은 아슬아슬한 출렁출렁 출렁다리가 그랬고, 강변 모래톱에 염색한 군용 텐트를 치고 앉아 마시는 소주잔에도 넘실넘실 강물처럼 낭만이 넘실거렸었다.

당장 취업하여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번쩍번쩍하는 모자를 쓰고 철커덕거리는 정복 차림의 헌병들이 권총을 차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회 분위기에 숨 막혀 하던 시절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시원한 탈출구는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버너 코펠에 몇 푼의 소주 값을 주머니에 넣고 친구들과 어울려 완행열차를 타고 자주 찾았던 곳이 바로 이 강촌역이었다.

그런 젊은 시절을 보내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강촌역이 늘그막 등산길에서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추억처럼 눈앞에 다가선 것이다. 그러나 강촌역과 주변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들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모두 밝고 화사한 얼굴과 옷차림은 오늘의 풍요가 안겨준 행복한 모습이었다. 역 근처는 대부분 멋지게 단장한 음식점들과 술집, 카페, 그리고 자전거와 탈것들을 빌려주는 가게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야말로 여유로운 낭만의 거리였다. 옛날의 그 찌들고 가난했던 낭만과 오늘의 여유로운 낭만이라, 세월이 갈라놓은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낭만의 모습이었다.

그럼 역사 승강장의 벽과 기둥에 써놓은 낙서들은 어떤 내용일까? 대개 커다랗게 써놓은 글씨는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대학이름과 학과였고, 제일 많은 낙서는 낙서한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나이 든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낙서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죄의식 같은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 다녀감, 누구누구와 같이 몇 년 며칠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기록이 많았다.

▲ 성경아 보고싶다
ⓒ 이승철
▲ 낙서 중에는 이름이 제일 많다
ⓒ 이승철

글씨 외에 그림은 사랑의 표시인 하트 모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 오빠 사랑해 같은 글과 함께. 그리고 보고 싶다는 글도 많았다. 재미있는 글은 "현아, 여드름 터질라 그래, 짜지 마!" 역시 한창 여드름이 폭발하는 나이들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주 노골적인 사랑 표현으로 "○○와 잘 사귀고, 잘 지내고, 같은 잠자리에서 깨어났으면 좋겠고, 같은 침대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였다. 이 얼마나 노골적인 사랑의 표현인가?

역시 옛날의 민주화를 외치고 인권을 외치던 낙서와는 너무 다른 표현들이었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진 것이리라. 달라진 삶의 질, 그리고 정치와 사회 환경에 걸맞게 지금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화두는 사랑이고 행복인 것이었다.

낙서는 승강장의 기둥뿐만 아니라 철길 안쪽의 벽에도 커다란 글씨로 써 놓은 것들이 많았다.

"아무리 젊은이들의 문화라고 하지만 저건 좀 너무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사람이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역사 안내판의 글씨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긁어놓고 써 놓은 낙서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그나저나 이 강촌역도 2~3년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던데."

서울과 춘천 간의 복선 전철화 공사가 한창인데 공사가 끝나면 이 강촌역은 쓸모없게 되고 지금의 강촌역에서 구곡폭포 쪽으로 상당히 치우친 안쪽에 새로운 역이 생길 것이라는 말이었다.

▲ 현아 여드름 터질라 그래, 짜지마!
ⓒ 이승철

▲ 대학 MT다녀갔다는 커다란 글씨의 벽면낙서와 기둥에 빼곡한 낙서들
ⓒ 이승철
정말 그렇게 된다면 수십 년간 젊은이들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던 강촌역은 정말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너무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젊은 시절 내가 그랬고 20여년 전에는 지금 40대인 처남이,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막내아들이 MT를 다녀왔다던 이 강촌역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어서 지금처럼 젊은이들의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장소로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담아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촌역, #낙서, #경춘선, #대학생, #MT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