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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남자의 일이다."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에서

6·25 전쟁과 '사십 계단'의 유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현장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은 '손풍금' 악사
ⓒ 송유미
전쟁도 비참한 평화보다는 낫다는, '타키투스'의 말처럼, 6·25의 전쟁의 비참한 비극은 부산의 계단문화를 만들고 골목문화를 생성시켰다. '사십 계단'은 1908년 생겼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계단이 전국으로 알려진 것은 전쟁 이후가 된다.

마치 발끝으로 힘을 꾹 누르면 손풍금이 울릴 듯한 사십 계단에 올라서면 부산항이 환히 보이고 오륙도의 바다도 보였다는 기록처럼 옛날에는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해안이었다고 한다.

신의 아들, 야곱이 황야를 헤매다가 꿈속에서 만난 계단을 '천국의 계단'으로 칭하듯, '계단'은 이러한 성서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을 잇는 천국과 꿈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당시 전쟁 피난민들에게 사십 계단은 비참한 현실을 구원하는 '꿈의 계단'인 셈. 그것은 당시 피난민이 계단 주위에 집단 판자촌을 이루고 살면서, 사십 계단 주위에 난장을 만들고, 시중에 흘러나온 구호물자를 사고팔아 간신히 연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대의 장터를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다가, 더욱 큰 규모의 오늘날 '국제시장'으로 변천했다고 한다. 당시 사십 계단의 핍진한 생활문화는 부산 문화의 뿌리로 번창했다고 볼 수 있다.

푸근한 경상도 아가씨의 인심에 위로받는 피난민의 애환이 깃든 노래

▲ <경상도 아가씨> 노래 비
ⓒ 송유미
만약, 6·25전쟁의 피난처가 부산이 아닌 다른 지방이었다면 어땠을까. 부산은 바다가 있고 바다 같은 심성을 닮은 경상도의 흔한 인심을 노래하는 <경상도 아가씨> 노랫말처럼 풀풀 살아 뛰는 생선 비늘처럼 풋풋한 자갈치 뱃사람들의 후덕한 인정의 나눔이 있는 자연의 은혜 때문에, 고달프기 짝이 없는 피난민살이를 위로 받으며 견디지 않았을까.

그래서 수도의 피난민들이 그 불모지와 같은 전쟁의 폐허 위에 신예술문화를 꽃을 피운 것은 아닐까.

이제 그 당시 피난민들의 주 거주지인 대청동, 보수동, 동광동, 영주동 등 부둣길은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천국으로 이르는 계단처럼 낡은 계단이 유적처럼 6·25 상흔의 검은 기억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신(新) 마로니에의 문화, 인쇄소 집성촌

▲ 6. 25 당시 피난민의 모녀상을 재현한 조각상
ⓒ 송유미
현재의 '사십 계단'의 주위의 풍경은 마로니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바람에 나뭇잎을 날리는 듯, 파지를 날리는 잉크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인쇄골이 형성되어 있다.

또 이 자리의 사십 계단은 영도다리와 함께,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의 이산가족 장봉 장소로 알려지기도 했던 자리로, 사십 계단 비가 세워져 있다.

아무리 큰 비참한 전쟁도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신생의 역사의 현장이 되는가.

곳곳에 세워진 재현의 당시 피난민의 동상과 기찻길과 '뻥튀기기 장수'의 동상들이 6·25 동란 당시 삶을 고스란히 재현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십 계단의 6·25전쟁 당시 피난민의 생활상과 전쟁의 기록 자료 등을 '사십 계단 문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현장, '사십 계단'의 재 의미 부각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 현장으로 기념되면서, 다시 한번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사십 계단 주위는 이제 부산의 문화예술인의 몇 개의 협회의 사무실이 있어 많은 예술인들의 모임 등이 형성되고, 부산 시민들과 외지의 여행객에게 사랑을 받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일부 부산문화계의 몇몇 인사들은 기념비가 세워진 지금의 '사십 계단'이 진짜가 아니라는 이견이 있지만, 이를 증거할 자료가 없다. 다만 '사십 계단' 옆 아주 좁다란 '사십 개'의 계단이 있는데, 이를 진짜 '사십 계단'이라고 내세우지만, 당시 부산역의 화재로 인해 새롭게 정비된 도로와 신축된 건물로 인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증인도 없다.

사십 계단의 '진짜 가짜' 시비는 꼭 문화재처럼 가려져야 할까. 진짜가 가짜를 능가하고 가짜가 진짜를 축출하는 세태지만, 저 천국의 계단처럼 층층대에 앉아 손풍금을 울리는 유랑악사의 노래가, 당시 피난민의 아련한 향수의 그리움을 일게 한다.

피난민 중에 가장 힘든 사람은 군인이었겠지만, 총을 멘 군인보다는 아기를 업고, 걸리면서 피난 내려온 아기 엄마들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층층대에 걸터앉아 젖을 먹이는 시간에는 잠시 전쟁의 총성도 정지된 듯, 그 피비린내나는 끔찍한 전쟁의 공포도 잊고, 아기는 엄마의 품에 안겨 행복에 겨운 미소를 방긋방긋 지었으리라.

▲ 사십계단비
ⓒ 송유미
밟으면 손풍금 울리는
사십 계단 층층대 앉아,
검은 선글라스 낀 여자,
점아, 점아 새점아, 삼백원 줄게 나온 나,
떡 해 줄게 나온 나,
조롱에 갇힌 새에게
점아 점아, 새점아
6. 25 전쟁 때 피난 내려오다
잃어버린 오라버니 찾아줄게 나온 나,
눈깔사탕처럼 퇴화된 눈 먼 새에게
점아, 점아 나온 나 밥해 줄게 나온나.
밟으면 아이들 노래 소리 울려나오는
40계단 층층대에 앉아,
부서지는 붉은 햇살
부리로 쪼아 먹으며,
점아, 점아, 나온나.
어둠이 셔터를 내릴 때 까지,

- 자작시 '새점 치는 여자'

태그:#사십 계단, #부산,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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