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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문학사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표어와 반공 포스터에 예외 없이 등장하던 빨간 뿔이 달린 도깨비에 익숙한 세대의 일원이었을 안재성이 <이현상 평전>을 펴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 혁명가의 삶을 통시적으로 조망할만한 증거나 자료, 증언은 너무나 미미한 상황이고, 평전의 저자 역시 그 시대를 전혀 맛보지 못한 전후 세대라는 약점이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평전이 좀 밋밋하고 이현상을 완벽한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미화했다는 느낌 또한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분단이라는 독특함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된 혁명가의 삶이 전체적으로 조명된다는 사실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이현상 평전>을 통해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만난 혁명가 김산을 비롯해 조금은 생소한 이들의 이름을 접하는 심정은 참 미묘했다. 오랫동안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빨갱이를 처단했다면 어떠한 살인과 파렴치한 행위도 용서되던 사회를 살아서만은 아니다. 마치 산짐승처럼 날랜 몸짓으로 지리산 자락을 누비고 다녔다는 빨치산이나, 드넓은 중국을 무대로 조국 해방을 꿈꾸며 청춘을 불살랐던 이들은 도깨비나 철인이 아닐지라도 조금은 거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 역시 조금 더 뜨거운 피를 지녔을 뿐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성정을 지닌 보통 사람이라는 충격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배고프면 음식이 그립고, 따뜻한 잠자리와 인간의 체온이 그리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전에 의하면 이현상은 과묵하지만 심지가 굳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
던 것 같다. 유격대에서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이들의 증언이 대부분 그 부분에서 일치하고, 남부군 지도자 숙청 시 이현상의 온정주의가 자아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이현상은 얼마든지 평범한 지도자로 일생의 안락을 누릴 수 있는 배경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착취를 보고 분노할 줄 알고, 가진 자에 의해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며 짐승 같은 삶을 견뎌야하는 수많은 민중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 할 줄 아는 실천력 있는 지식인이었다. 그가 비록 볼세비키즘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분명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에 서서 가진 자, 권력과 힘을 남용하는 자를 질타하는 역할을 마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실은 그가 1945년 11월 전국농민조합연맹 결성회장에서 조선공산당을 대표해 한 축사의 내용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아래 가장 잘 싸운 것은 노동자, 농민입니다. 온 세계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전진입니다. 오늘의 민족통일 문제는 몇 사람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는 애국자인 척 가면을 쓰고 통일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통일은 튼튼한 밑으로부터의 통일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 경제의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조국광복과 인민해방을 꿈꾸며 총 3회 12년간의 옥살이를 견디고 남부군 총 사령관으로 5년여의 유격대를 이끌어 오다 1953년 9월 17일 군인의 총에 맞아 죽으면서 남부군 유격대의 신화는 끝이 나고 만다.

일인 지배체재를 견고히 하느라 남쪽의 지도자들을 숙청한 김일성은 죽은 이현상에게 영웅 칭호를 내리고 남한 출신 혁명가들이 묻힌 애국열사릉에 제1호 묘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평전의 말미에서 남한 입장에서는 가장 악질 빨갱이, 반역자였고, 북한의 입장에서는 민족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 외세와의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애국자요, 영웅이라는 부분을 읽었다. 여기서 당대 역사적 기록과 증언, 열악한 상황이 얼마나 많은 아전인수 격의 왜곡된 해석을 낳게 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들었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이현상, 어쩌면 그는 현 양국의 체제가 움켜쥐고 가려는 모순이 없는 진정한 민중 해방의 세상을 꿈꾸던 이상주의자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이론가가 아닌, 꿈을 향해 무한 도전하는 실천가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임을 믿기에 그의 생애는 바로 해석되어야 한다.

어쨌거나 시대를 증언해 줄 증인조차 없는 상황, 이념을 핑계로 두 동강이 난 채 여전히 자신의 자리와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시대에 수많은 이들이 피 흘리며 죽어서도 풀지 못하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진정한 민중의 해방과 자유, 통일이라는 거대한 숙제는 과연 누가 풀어야 할 몫인가?

덧붙이는 글 | 이현상 평전/안재성 지음/실천문학사/15,000원


이현상 평전

안재성 지음, 실천문학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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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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