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말로 예정된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와 성과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구체적인 평화정착 방안을 담지 못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평화문제가 핵심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그러나 막상 평화문제와 관련해 남북한이 할 수 있는 수준은 제한적이다. 최대 관심사인 북핵 문제는 6자회담 및 북미협상이 중심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역시 미국이 실질 당사자로 참가하지 않으면 현실성도 실효성도 떨어진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한반도 평화선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평화선언을 통해 북핵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속화하고 남북한의 주도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평화선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뒷받침되고 실행되지 않으면, 선언에 의한 정치적 구속력은 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공수표'가 될 수 있는 것이 한반도 안보구조의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평화, 말은 좋은데 뭘 어떻게 협상하지?

▲ 연평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옹진반도.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은 연평도의 일부이며 그 건너편에 보이는 땅이 북한 옹진반도. 또한 그 사이에 떠 있는 두 개의 섬도 북한땅이다. 즉 그 두개의 섬과 연평도 사이의 그 좁은 바다에 NLL이 존재한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렇다면, 북핵 문제나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어려운 현실에서 남북한 정상이 논의할 수 있는 평화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북한에서는 북방한계선(NLL)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경계선의 설정, 한미합동군사 훈련 중지 등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고, 남한에서는 국방장관회담 등 군사회담 정례화 및 군사적 신뢰구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엇박자'가 난다. 북한은 해상경계선 설정, 한미합동군사 훈련 중지 등 이른바 '근본문제'가 논의되지 않는 군사회담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고, 남한은 이들 근본문제는 군사적 신뢰구축의 진전에 따라 논의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군사회담은 군사적 신뢰구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여론을 고려할 때, 북한이 다른 군사문제의 양보 없이 남북한이 NLL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설정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한미합동군사 훈련 역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크게 감소되었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큰 폭으로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반면, NLL이나 한미합동군사 훈련 문제를 마냥 미뤄두는 것 역시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큰 부담이 된다.

이러한 입장 차이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해소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북한 정상은 보다 과감하고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한반도 군사문제의 해결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과감하고 포괄적인 접근의 의미는 사안 하나하나를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큰 틀에서의 문제 해결 방식에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현안들의 일괄타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군사공동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고, 하위에 세부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분과위원회를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두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6자회담이 6자 전체회의와 5개의 워킹그룹으로 구성된 것과 흡사한 접근법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북한 지도자의 의지이다. 이번 정상회담 공동선언의 내용 가운데 하나로 "남북 양측은 군사문제의 해결과 군축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제반 문제를 논의·해결하기 위해 국방장관회담을 정례화하는 한편,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군사공동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내용을 포함시킨다면, 한반도 군사문제 해결에 큰 디딤돌을 놓게 될 것이다.

북방한계선의 한계, 남북의 엇박자

▲ 한국전쟁 기간동안 국군이 인민군이 화해하고 함께 싸운다는 이야기의 영화 <웰컴투동막골>. 그러나 현실에서는 신뢰구축도 군비축소도 쉬운 일이 아니다.
ⓒ 필름있수다
북한과의 군축협상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도그마처럼 굳어진 '선(先) 신뢰구축, 후(後) 군비축소'라는 접근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운용적 군비통제'로도 불리는 군사적 신뢰구축은 주로 정보와 군인사 교류 및 기습공격 능력의 제한을 통해 군사적 투명성을 증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구조적 군비통제'에 해당하는 군비축소는 군사력을 동결, 제한, 감축함으로써 낮은 수준의 군사적 균형을 달성해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제한을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남한의 군비통제정책은 '선 신뢰구축, 후 군비축소'의 기조에 따라, 교류·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 증진,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이미 합의한 사항의 우선적인 이행·핫라인 설치·군인사 교류·대규모 부대이동 및 군사연습의 통보 및 참관, 군사정보교환·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상호 기습공격 능력의 제한·제거 등 군사적 신뢰구축의 우선적인 추진을 기초로 삼아왔다.

이에 반해, 북한의 군비통제 접근법인 '선 군비축소, 후 신뢰구축'은 실현 가능성이 낮으며 "교류협력을 통한 신뢰구축보다는 정치·군사문제의 우선적 해결, 단계적인 타결보다는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등 군비통제 추진의 일반적인 원칙과 절차를 간과"하고 있다고 평가절하 해왔다.

이처럼, '선 신뢰구축, 후 군비축소' 기조가 도그마처럼 굳어진 데에는 유럽 군비통제 모델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유럽이 오랜 기간 동안 먼저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군축을 이뤄냈던 것처럼, 남북한 군비통제도 이러한 모델에 기초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의 관계를 '인과관계'의 관점에서 보는 것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유럽에서의 군축은 군사적 신뢰구축의 결과라기보다는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신사고와 뒤이은 소련 및 동유럽에서의 급변 사태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헬싱키 프로세스로 상징되는 군사적 신뢰구축이 군축 분위기 조성에 도움에 준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유럽 냉전 구조의 해체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럽의 사례를 들어 한반도 군비통제를 '선 신뢰구축, 후 군비축소'로 모델화하는 것은 시간적인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지 못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장성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참관한다면

▲ 지난 2002년 3월 경북 포항에서 실시된 한미합동군사훈련 모습.
ⓒ 권우성
통상적인 의미의 군사적 신뢰구축이 한반도에서 적용되기 오려운 또 다른 이유는 '군사적 투명성'에 대한 남한(혹은 한미동맹)과 북한의 동기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군사적 신뢰구축의 핵심적인 목표는 군사적 비밀을 줄이고 개방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 오판과 오인에 의한 무력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데 있고, 군사적 투명성은 이를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군사력의 수준 및 운용, 그리고 훈련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경우, 우세한 쪽에서는 군사적 투명성이 '과시'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열세한 쪽에서는 '모호성'에 집착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군사력에 있어서 열세에 있는 북한으로서는 모호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군사적 억제력과 정치적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에서 통상적인 의미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이 어려울 것임을 예고한다.

가령 북한의 군인사가 남한의 요청에 따라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참관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편으로는 군사훈련의 투명성이 제고되어 남한 의도에 대한 북한의 불신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첨단 무기체계와 대규모의 훈련 규모에 놀란 북한 군부가 군비증강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처럼 군사적 신뢰구축은 기본적으로 모호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접근법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선 신뢰구축, 후 군비축소'라는 접근법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신뢰구축과 군축 동시 진행', 혹은 '선 군축, 후 신뢰 증진' 등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병력감축부터 시작하자

군축을 통한 한반도 군사문제 해결이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또 있다. 우발적인 충돌과 기습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거론되어온 것이 전방에 배치된 남북한의 군사력을 뒤로 물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위성에 비해 현실성은 떨어진다.

가령 남북한이 전방에 있는 1개 사단을 후방으로 배치하기로 합의한다면, 유일체제인 북한은 어렵지 않게 합의를 이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에는 후방 배치될 사단이 사용할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유일한 대안은 후방 배치가 아니라 병력을 감축하는 길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북한이 우선적인 군축 분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병력 감축이다.

▲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조용학
병력 감축 문제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면서도 가장 상징적인 군축 분야라는 점에서 시급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 주한미군 병력수 감축에 들어갔고, 북한이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남한 역시 군 현대화와 군 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병력 감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제안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군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이 병력감축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북한이 100만 대군을 유지하면서 경제회복에 나서기란 불가능하다는 점 역시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의 병력 유지는 막대한 자원 낭비와 경제재건에 필요한 노동력 부족을 함께 유발하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안보환경의 개선에 따라 병력감축에 나설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북한의 병력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상호군축과 함께 다양한 지원책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지원책에는 북한 내에 직업훈련센터를 건설해 감축된 북한 군인을 재교육시키는 것과 직업훈련을 마친 북한 군인을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사업에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것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붕괴된 농업 기반과 사회간접자본(SOC)을 본격적으로 복구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한 만큼, 감축된 북한 군인을 이와 같은 농업 및 건설 현장에 투입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병력 감축은 북한보다 남한 내부의 문제가 더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병력 감축시 육군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육군 수뇌부의 저항이 있을 수 있고, 병력 감축이 청년 실업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력 감축을 추진하면서 제대 군인의 취업 대책을 적절하게 강구하고,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입영 대상자의 일부를 사회복지 분야에 투입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병력 감축을 통해 실질적인 국방비의 절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비대한 장성급과 영관급 장교의 수를 줄이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태그:#정상회담, #군비축소, #병력감축, #신뢰구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