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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은 혜선옹주(惠善翁主) 홍씨에게 은덩어리를 뇌물로 상납하고 또 좋은 말(馬)을 영의정 하륜에게 바쳐서 이를 인연으로 성상에게 계청(啓請)하여 내섬시에 속하게 되었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내섬시는 호조의 하부기관으로 대궐의 생활용품과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내려주는 하사품 그리고 외국 사신들의 접대용품을 관장하는 부서다. 대상품목은 관요에서 제작한 명품 도자기를 비롯하여 술과 직조 등 당시의 최고급품만을 취급하는 관아였다. 노비출신 서철이 태종의 빈(嬪) 혜선옹주에게 뇌물을 바치고 내섬시에 들어가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민무회는 깜짝 놀랐다. 천기를 누설해야 될지 망설였다. 염치용이 한성부윤으로 있는 자신을 찾아와 왜 이렇게 큰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민무회는 충녕대군(세종대왕)을 알현하고 염치용의 말을 전했다. 충녕대군은 즉시 임금에게 아뢰었다.

염치용의 말을 전해들은 임금은 승전환관(承傳宦官) 최한(崔閑)을 시켜 승정원으로 하여금 호조판서 박신, 예조판서 황희, 지신사 유사눌, 좌부대언 조말생과 민무회 그리고 문제의 장본인 염치용을 불러들이라 명했다.

"내가 부끄러운 말을 들으니 도리어 경들을 보기가 민망하다. 염치용은 나더러 대신 하륜과 시첩(侍妾) 가이(加伊)의 말을 듣고 서철을 내섬시에 소속시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대신과 시첩의 말을 듣고 그 일을 부당하게 처리했다는 말인가? 마땅히 염치용은 대답하라."-<태종실록>

'용의 발톱은 공격용인데, 잘못 건드렸어'

염치용은 머리만 조아릴 뿐 아무 말도 못했다. 설혹 임금이 시첩과의 베게머리 송사에서 청탁을 받아 서철을 내섬시에 근무토록 했다 하더라도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용의 발톱이 꼼지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임금의 체통문제였다. 염치용이 용의발톱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태종은 염치용을 의금부에 하옥하라 명했다.

사간원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염씨(廉氏)는 전조(前朝)에 탐오(貪汚)로 인하여 패가하였는데 염치용은 도피하여 화(禍)를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성은을 입어 황주목사에 이르렀으나 탐관오리로 파면되어 그 죄가 자가(刺字)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성은을 입어 자자를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욱 마음을 고쳐 성은에 보답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난언(亂言)을 발설하여 그 말이 승여(乘輿)에까지 미쳤으니 그것은 불충임이 분명합니다.

한성부윤(府尹) 민무회는 중궁의 지친이니 진실로 휴척(休戚)을 함께 하여 일이 궁금(宮禁)에 관계되면 보고 듣는 대로 마땅히 곧 아뢰어야 할 것인데 염치용의 난언(亂言)을 듣고 여러 날을 머물러 두었다가 그 말을 올렸으니 죄가 또한 중합니다. 바라건대 유사(攸司)에 내려서 율문에 따라 죄를 결단하소서."


"염치용의 죄는 내가 벌써 적당히 요량하여 시행하였다. 그리고 민무회는 병들고 늙은 어미가 있어 정리(私情)로 갑자기 버릴 수가 없다."

민무회의 어머니 즉, 태종의 장모는 잘 나가던 민무구 민무질 두 아들을 사위에게 잃고 영감 민제 마저 세상을 떠나자 마음에 병이되어 폐인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그러한 노모를 민무회가 모시고 있으니 큰 죄를 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사간원에서 또 다시 상소가 올라오자 민무회의 직첩을 거두게 하고 염치용은 다시 거론하지 못하게 하였다. 민씨 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민무회 사건의 시작이다.

해빙기에 찾아든 불길한 예감

처남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죽음으로 처결한 태종은 마음이 무거웠다. 보상이라도 하듯 살아남은 형제를 챙겼다. 민무휼을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에 임명한 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로 승진시키고 민무회에게 한성윤(漢城尹) 직책을 주었다. 또한 임금의 인친이라는 체신을 살려주기 위하여 민무휼에게 여원군(驪原君), 민무회는 여산군(驪山君)이라는 봉작을 내렸다.

중전 민씨와도 관계가 회복되었다. 심신이 피폐해진 민씨가 병환에 시달리자 태종은 명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귀한 약재를 구해오는가 하면 어의를 중궁전에 상주케 하며 중전을 돌보게 했다. 또한 자주 문병하여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었다.

중전 민씨 역시 지아비에 대한 원망을 접었다. 태종이 후궁들을 이끌고 해주 온천을 다녀오면서 개성 행재소에 머무를 때 중궁전 사람을 보내어 잔치를 베풀어 주기도 했다. 이러한 해빙기에 민무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실로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했다.

사간원에서 또다시 상소가 올라왔다.

"염치용과 민무회의 죄를 육조와 의금부·승정원·사간원에서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라고 청하였는데 사헌부는 직책이 국가의 법을 관장하고서도 그 죄를 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그들이 아뢴 조목 안에는 ‘대소인원(人員)이 함부로 상서하여 어떤 자는 자기의 죄를 모면하기를 엿보고 어떤 자는 자기의 욕심을 이루려고 도모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누구를 모해 하려고 발설한 것입니다."

사간원의 표적은 사헌부였다.

“사헌부는 풍기를 맡은 관청으로 나라의 기강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가? 내 진실로 그들의 간사한 마음가짐을 더럽게 여겼으나 꾹 참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군신의 예절이 있는 나라라고 일컬어 오는 터에 헌사에서 감히 이럴 수가 있는가? 정승들은 지위가 높아 세미(細微)한 임무에 응할 수 없다고 하겠으나 어찌 기강을 바로잡는 권한을 가지고서도 이같이 하는가?”-<태종실록>

대노한 태종은 대사헌 이은과 집의(執義) 이유희, 장령(掌令) 강종덕과 정지당 그리고 지평(持平) 김익렴·금유를 의금부에 옥에 가두라 명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알력에 임금이 가세한 것이다. 양대 권력기관의 고래싸움에 민무회가 끼어 새우등이 터진 격이다.

대간과 형조에서 연이어 교장(交章)이 올라왔다.

"인신(人臣)으로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고 불충한 죄를 범했다면 천하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염치용은 장류(杖流)의 죄에만 처하고 민무회는 직첩을 거두는데 그치시어 집에 있게 하였으니 성조(盛朝)의 용형에 어긋납니다. 전하께서 대의로 결단하고 모조리 극형에 처하여 뒷사람을 경계하소서."

교장에 극형이라는 낱말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살벌한 칼바람이 분다. 하지만 태종은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무회에게 병든 노모가 있다는 이유였다. 헌데 작은 사건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민무휼 사건이다.

사간원과 형조에서 상소문이 올라왔다.

"중궁(中宮)이 편찮았을 때 민무휼·민무회가 세자와 한 말을 물었으나 잊어버렸다고 핑계하여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민무회를 별도로 불러 사실 여부를 물었는데도 말(款服)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민무회는 세자가 전하께 말한 것을 도리어 부실한 말이라 하니 이는 임금과 세자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뚜렷합니다.

민무휼은 그때에 민무회의 말을 자세히 듣고 세자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청하였는데 지금 삼성(三省)에서 핵문(劾問)하니 대의를 돌보지 않고 다만 형제의 사사로운 정리 때문에 서로 숨기며 대답을 솔직히 하지 아니하니 민무회와 함께 형벌을 가하여 국문(鞫問)하게 하소서.”


태종은 격노했다. 임금과 세자를 불신한다니 대역보다도 더한 능멸로 받아들였다.

“내가 여기에서 결단하면 후세에 반드시 ‘우리 부자(父子)가 없는 일을 꾸며 무고한 사람을 모해했다.’고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경들은 육조(六曹)·대간(臺諫)·세자(世子)와 함께 한곳에서 진실과 거짓을 대질(對辨)하여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곡직(曲直)을 밝게 하도록 하라.”-<태종실록>

임금과 세자가 연루된 사안이니만큼 대소신료들 앞에서 투명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조정에 비상이 떨어졌다. 대궐에 살벌한 긴장감에 감돌았다. 시종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중궁전은 불길한 예감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임금의 부름을 받은 대소신료들이 속속 집결했다. 이조판서 황희, 병조판서 박신, 호조판서 심온, 형조판서 윤향, 예조판서 정역, 의금부제조 이천우, 한평군 조연, 지신사 유사눌, 대언 한상덕·조말생·서선, 우사간 이맹균, 헌납 서진, 집의 안망지, 장령 정촌, 의정부사인 조서로, 형조좌랑 이반이 병조정청(兵曹政廳)으로 모여들었다.

태그:#이방원, #민무회, #민무휼, #사헌부,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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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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