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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높고 물 맑은 절경의 강원도 양구에서 사 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고 광활한 산야를 놀이터 삼아 뛰어 놀던 야망의 댕기 머리 소년이 어느새 청년이 장년이 되었다.

삼십팔년 동안 경찰직 공무원으로 지내며 결혼해서 지고지순한 아내와 아들 딸 낳고 아무 걱정 없이 지내던 젊은 날은 시나브로 막이 내리고 이제는 할 일 없는 노장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사모님이 병환중일 때도 삼년을 대소변을 받아낼 정도로 가정적인 분이시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고 전해 들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 부어도 사모님은 결국은 하늘나라로 돌아오지 못할 여행길을 떠나고 홀로 남은 선생님은 외로움을 삼키며 살아가고 계셨다. 구부정한 어깨선 넘어 외로움을 달래며 복지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팔십을 바라보는 연세인데도 열심히 가르치고 긍정적인 사고로 어디든지 찾아가서 외국어 자원 봉사까지 하시는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소문에 칠십 평 아파트에서 사신다기에 부잣집에서 호강하시는 어르신인줄 알았는데 보이는 호사 뒤에 아린생활을 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들들은 칠십 평 아파트에서 호의호식 하면서 어떻게 아버지를 두평 남짓한 고시원 5층 다락방에 말로만 듣던 현대판 고려장이라니 하늘이 무섭지 않은지 젊은 날엔 경찰 공무원으로 삼십 팔년 동안 근무하면서 빠듯한 살림인데도 자식들 대학공부 시켰다.

퇴직 후엔 퇴직금으로 사업을 해서 가정살림을 꾸리셨는데 나중에는 아버지 전 재산인 집까지 꿀꺽하고 장성한 자식들은 홀로계신 아버지 학대하다 못해 고시원 다락방이 웬 말인가? 높고 가파른 계단에서 구르기라도 한다면 아찔하다 팔십 노인이 식사를 마련해야 되고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서 죽으라는 것이겠지만 생명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 날의 당당했던 거장의 노후가 초라하다.

그 어렵던 세월 노후대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테고 그처럼 믿었던 자식들에게 무참히 버림받는 현실에서 요즈음 자식 많이 낳기를 장려하지만 많이 낳아서 어렵사리 키워놓으면 부모 고려장이나 시킬 자식 많이 낳아서 무엇 하랴? 구부정한 어깨선 넘어 외로움이 묻어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면 우수에 젖은 노안에서 쓸쓸함이 전해온다. 젊은 날의 경찰직 공무원의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리면 버려지는 대로 당해야만 하나!

아들네와 같이 살 때도 당신 빨래를 손수 빨아서 다려 입고 식사도 찾아서 드실 정도로 가족들이 무관심 했다니, 오죽하면 고시원 다락방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하실까 사람이란  세상에 태어나 살다 보면 늙고 병들어 아무런 경제력도 힘도 없어지면 자식들이 부모의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텐데 사업하는 맏아들과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했다니, 자식을 키우는 며느리의 입으로 어찌 그런 말을 할까!

둘째 아들은 대학 강사이고 며느리는 중학교 선생이라는데 시아버지를 모시라고하면 이혼하겠다고 했다니 그 선생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랴싶다. 그나마 둘째 아들이 고시원 다락방이나마 마련해 주었다고 큰 딸은 학원장이고 막내딸은 미국에 이민 가서 잘살고 있어도 아버지 한분 모실 자식은 어디에도 없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가정불화라도 날까봐 쉬쉬하는 모습이다.

이게 자식들이 내다 버린 어버이의 마음일진데 노인들의 수명은 원치 않아도 길어지고 앞으론 나라에서 어느 자식이든지 부모를 모시는 자식에게 주는 혜택이 크다면 부모를 학대하다 버리지는 않을 런지 씁쓸한 심정으로 이글을 쓴다. 

덧붙이는 글 | 내주변에서 일어난 사실에 입각한 글입니다 소수의 노인들일지라도 소외당하는 분들이 더러는 있습니다 허지만 내색하지 못하는 게 부모의 심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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