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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동네 할머니들의 도라지꽃밭
ⓒ 송유미
내 행복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다.
나의 태양 그것은 우리의 태양이다.
우리는 생명을 나누어 갖는다.

- 엘뤼아르의 '평화의 얼굴' 중에서


아름다운 전설의 꽃

동네 할머니들이 틈틈이 가꾼 보랏빛 도라지 꽃이 채마밭에 피었다. 보랏빛 소묘처럼 꽃이 무척 아름답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여름 땡볕에도 잎이 생생한 보랏빛의 도라지꽃은 왠지 처연한 아름다움에 잊고 있던 도라지꽃의 슬픈 전설을 생각케 한다.

내가 도라지꽃의 전설을 안 것은 김내성의 대중소설을 통해서이다. 김내성의 <청춘극장>인지 <애인>인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소설의 여주인공이 애인에게 전해주는 도라지 꽃 전설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라지 꽃 전설은 널리 퍼져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만, 옛날 어느 마을에 '도라지'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소녀의 오라버니가 중국에 공부를 하러 가서, 도라지는 절에 가서 기다리며 지냈다. 소녀의 오라버니는 많은 세월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아서, 소녀는 기다림에 지치고 그리움에 절여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

슬픔이 거름이 된.... 도라지 뿌리는 귀한 약재

▲ 공터의 축복
ⓒ 송유미
하루는 높은 산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지금이라도 오빠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도라지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소녀는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소녀가 숨진 자리에서 이듬해 작고 귀여운 보라색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도라지꽃'이다.

도라지꽃은 슬픈 전설이 어려 있지만 도라지 뿌리는 도라지나물뿐만 아니라 민간 약재로도 쓰인다. 거담, 해소, 기관지염, 호흡곤란, 편두선염, 복통, 지혈 등에 좋고, 가래가 끓을 때는 공복에 도라지를 날로 씹어 먹어도 좋다. 뿌리만을 달여서 복용해도 좋고, 도라지와 감초를 달여 알약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고, 잎이나 줄기는 차 대신 달여 먹거나, 연한 줄기는 나물로 무쳐 먹어도 좋다.

봄부터 열심히 가꾸신 할머니들의 도라지 채마밭 곁에는 옥수수 밭도 있다. 비료를 주지 않아서 옥수수대가 여리지만, 자연 무공해라서, 할머니들에게 미리부터 옥수수 수염을 달라고 부탁하는 아줌마들도 있다.

고마운 공터, 고마운 할머니들의 손길

동네 가운데 공터가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 축복을 잘 알고 계신 할머니들의 부지런한 성실성 때문에 이 오염된 도시의 공기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또 자연의 혜택과 또 자연의 한 부분인, 삶의 행복을 작은 채마밭에서 느낀다.

불교의 "네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는 법이니 너 없는 나 또한 없다"는 연기설처럼 우리 동네 할머니가 있어서, 올 여름의 땡볕은 뜨겁지가 않다. 뜨거운 땡볕도 아름다운 보라빛 소묘에 사그라든다. 이 아름다운 도라지꽃이 지고 나면 곧 가을이 올 것이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고 잠자리 떼들이 무수히 맴도는데 잠자리는 폰 카메라 렌즈에 잘 잡히지 않고 자꾸 빈 하늘만 나온다. 도라지꽃 밭 사이로 도라지 꽃 그 예쁜 소녀가 걸어나올 것만 같다. 여름은 태양의 계절, 그 태양 아래 알알이 할머니의 굵은 땀방울 같은 옥수수 알이 단단이 여물어가길 소녀처럼 기도해 본다.

▲ 쑥쑥 잘 자라 다오 옥수수야
ⓒ 송유미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제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열매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려야한다는것을
사람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 신경림의 '나무'

덧붙이는 글 | 우리동네 채마밭 도라지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태그:#도라지꽃, #채마밭, #할머니,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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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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