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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 절터(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는 높이 9.8m의 거대한 미륵입상이 있다. 고려 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일련의 커다란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여동생은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 충주시 미륵리 상모면 소재 절터
ⓒ 김용택기자

미륵리 석불은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 갓을 삼았다. 미륵리 절터의 주존불인 이 미륵불은 고려시대에 많이 조성된 거불 가운데 하나이며 보물 제96호로 지정되었다. 미륵리 석불입상의 특징은 절터 맨 안쪽에서 북쪽 송계 계곡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돌덩이 4개를 이어 올려 몸 전체를 이루고 갓과 좌대를 각각 다른 돌로 하여 모두 6매의 돌로 만들었다. 높이는 10.6m에 이른다. 거대한 원통형의 몸체에 조각수법이 소박하고 머리에 판석이 얹힌 점, 옷주름 표현 등 고려시대 석불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미륵리 석불입상
ⓒ 김용택기자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 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이 불상의 대담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보아 새로 일어난 국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해서 석불입상전체는 화재가 났을 때 불탄 흔적으로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데 유독 얼굴만 하얗다. 일부에서는 화재로 손상된 얼굴을 파불 처리하고 새로 조성된 불상이라고 하지만 석불 우측 300m 지점에 파불이 거꾸로 처박혀 있는데 이 또한 깨끗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신비롭다.

▲ 미륵불 입상
ⓒ 김용택기자

미륵불 건립에 대해서는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연선사가 살았던 그 전에 만든 것이 확실하여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서러워하여 이곳가지 와서 이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고 그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전설은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이 불상을 보호하는 웅장한 석굴이며 대담한 거구로 보아 새로 일어난 국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다만 당시의 거상을 다루던 기술이 급격히 쇠퇴하였기 때문에 이런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본다.

▲ 미륵불 입상
ⓒ 김용택기자

역사 기행을 다니면서 한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는데 ‘미륵’과 ‘메시아’의 어원이 ‘메티아’라고 한다. ‘미르=메시아’가 되는 셈인데 당시 미르의 어원은 미트라(태양신)이고 미륵불이 메시아가 되는지 궁금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인간을 몸으로 탄생한 기독교의 메시아와 56만7000년 후에 나타날 미륵의 어원이 같을 수가 있을까?’ 깊이 연구해 봐야할 주제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유 포트와 제 개인 홈페이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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