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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다 팔아부렸네."
"왜요? 서운하지 않으세요."
"서운혀도 어쩔 수 없지. 이젠 힘이 부쳐서…"

며칠 전, 불쑥 전화를 하더니 장모님은 소를 팔았다며 홀가분한 한숨인지 서운한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쉰다. 장인어른이 살아계실 때부터 키워왔던 소를 판 장모님의 마음이 어떠실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혼자 농사를 지으면서 소까지 키우기엔 힘이 부쳐 팔아야지 팔아야지 하면서도 미련과 서운함 때문에 팔지 않고 계속 키웠던 것을 이번에 모두 판 것 같았다.

ⓒ 김현
어릴 때 농촌에서 자랐던 사람들은 소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하나 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담을 듯한 투명한 눈망울을 하고 마당과 텃밭을 껑충거리며 돌아다니던 송아지. 겨울이면 소여물을 쑤기 위해 풀과 콩깍지, 지푸라기를 작두로 썰어 쌀겨 듬뿍 넣고 쌀 씻은 물로 커다란 가마솥에 푹푹 여물을 쑤었던 일들. 그렇게 맛있게 익은 여물을 여물통에 부어주면 어미소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가끔은 나도 한 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물을 다 먹으면 소의 빗으로 등과 배, 뿔 아래 이마 등 구석구석을 빗어주었다. 한참을 빗다 보면 빗에 소의 묵은 털이 수북이 빠져 달라붙었고, 그러면 손으로 하나하나 빼고 다시 빗어주었다. 그러면 소는 시원하다는 듯 얌전히 서 있었다.

소를 빗어주다 새끼가 배어 젖가슴이 통통하게 오른 젖을 사알짝 만져보면 참 부드러웠다. 아주 어릴 때 만지던 엄마젖 같은 생각이 들어 킥킥거리며 웃곤 했다.

그렇게 정성껏 돌본 소는 겨우내 통통 살이 올랐다. 그러다 봄이 되면 소는 들로 나갔다. 논갈이를 하고 밭갈이를 하기 위해서다. 멍에를 지고 쟁기를 끄는 소는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었다.

소는 장정 두목, 세목의 일을 했다. 쟁기질을 하고 써레질을 하고 돌아오는 소는 온 몸에 흙투성이였고 지쳐있었다. 그러면 난 그 소를 데리고 냇가에 가서 물을 뿌려주고 깨끗하게 씻어 주었다. 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여름이면 소는 할 일이 없다. 그러면 꼬마들은 소를 몰고 들로 나갔다. 자기네 소를 맛있는 풀이 있는 곳에 놓아두고 꼴을 베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가끔 꼴 치기(꼴 따먹기)를 했다. 꼴 치기는 각자 벤 꼴을 한 주먹씩 앞에 놓고 낫을 공중에 던져 낫 끝이 땅에 꽂히고 낫 자루가 땅에 닿으면 그 사람이 이겨 꼴을 가져가는 놀이다.

그렇게 놀다 보면 해가 지면서 어둑어둑해진다. 이때를 소들은 무척 싫어한다. 쇠파리들이 소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달려들기 때문이다. 이놈들은 어찌나 독한지 그 단단한 소의 가죽을 뚫고 피를 빨아먹는다. 특히 쇠파리들이 잘 달라붙는 곳이 소의 꼬리가 미치지 못하는 등줄기와 피부가 연한 젖가슴이다.

소가 울부짖어 달려가면 소의 몸엔 예의 그 쇠파리가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피를 빨아먹고 있는 데 정신이 팔린 쇠파리는 사람이 가도 모르고 피만 연신 빨아먹고 있다. 그 놈을 향해 온 힘을 주어 손바닥을 내리치면 그 놈은 잠시 기절을 하고 땅에 떨어진다. 땅에 떨어졌다고 방심을 하면 안 된다. 어찌나 독한 놈인지 잠시 후면 스멀스멀 깨어나 날아가 버린다. 그러기에 바닥에 떨어지면 이내 발바닥으로 짓이겨 죽여 버리곤 했다. 그래야 안심이 되었다.

헌데 이놈의 쇠파리는 소만 무는 게 아니다. 사람도 문다. 일을 하고 있거나, 물속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으면 등이 징하게 따끔할 때가 있다. 쇠파리가 문 것이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다. 그리고 그 아픔이 며칠을 간다.

그렇게 한가한 여름을 보내면 또다시 바쁜 계절이 온다. 가을걷이다. 지금이야 기계로 나락을 베고 운반을 바로 하지만 예전엔 모두 사람 손으로 했다. 어른들은 낫으로 나락(벼)을 베고 논바닥에 어느 정도 말린 다음 묶었다. 가끔은 어린 우리들도 나락을 베고 묶는데 한몫을 담당했다. 일손이 부족한 그때에 초등학교 일이학년만 되면 모두 낫을 들고 논으로 가 부모님 일손을 거들었다.

나락을 묶어 낟가리를 세운 다음 타작을 하기 위해 나락들을 집 앞의 논으로 옮겨왔다. 오리 십리나 되는 논에서 나락을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소는 또 한 번의 힘을 발휘했다. 소는 쟁기 대신 '구루마'(당시 수레를 부르던 말)를 끌고 논으로 갔다. 우리는 논으로 갈 땐 빈 구루마를 탔다. 가벼운 우리 몇 명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소는 방울을 흔들거리며 이따금 목청껏 '음머~'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어미소를 졸래졸래 따라오며 천방지축 뛰놀던 송아지도 '음메~~' 하고 어미소를 따라 했다.

ⓒ 김현
질퍽한 논배미를 따라 가서 낟가리가 줄 서 있는 논에 도착하면 구루마에 나락들을 쌓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쌓고 아이들은 날랐다. 구루마에 나락을 쌓는 일은 숙련된 일꾼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락을 싣고 가다 중간에 기울거나 무너지면 그 나락을 싣고 가는 소는 진땀을 뺀다. 나락을 싣고 가다 너무 힘들면 가끔 소는 무릎을 꿇곤 한다. 입에선 허연 거품이 일기도 한다. 저러다 소의 무릎이 깨지고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일어 '소 죽으면 어떡해요?' 하고 물으면 아버진 '괜찮을끼다. 이참에 내려놓곤 좀 쉬어야겠다'하셨다. 잠시 후'이랴~ 자 조금만 더 힘내 거라' 하곤 코뚜레를 잡고 마지막 힘을 쓰면 소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내면 소는 기진맥진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장 맛있는 여물을 쑤어 소에게 주었다. 난 등을 긁어 주며'소야 오늘 힘들었지. 많이 먹어'하고 말을 걸면 소는 눈을 껌벅거렸다. 송아지는 어미젖을 찾아 힘차게 빨아 먹었다. 힘든 일을 마치고 밥을 먹으면서도 어미소는 양 뒷다리를 살짝 벌려주어 송아지가 젖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았다.

지금은 몇몇 산골 외지를 빼곤 소를 이용해 논을 갈거나 밭을 가는 곳이 없다. 그러나 예전엔 모든 일을 소가 했다. 소를 키우는 집도 집안 외양간에서 한두 마리를 키우는 게 아니라 큰 축사를 지어 소 여러 마리를 키운다. 그래서인지 소에 대한 사람의 마음도 바뀌었다. 한 식구처럼 애환을 함께 했던 소는 찾아보기 힘들고 경제적인 가치로서의 소만이 존재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소의 의미도 변한 것이다.

가끔 소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떤 소가 더 행복할까. 힘들게 일을 하지만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풀을 먹고, 쇠죽을 먹고, 등이 간지러울 때 등을 긁어주는 시절의 소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종일 우리 속에서 인공의 여물만 먹은 채 살아가는 요즘 소 중 어떤 소가 더 나았을까 생각해본다. 소만이 알 일이지만 말이다.

태그:#소, #쇠파리, #송아지, #써레질, #쟁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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