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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판에는 붉은 토마토와 검은 가지, 녹색의 채소들 그리고 색색의 과일과 향신료들이 어울러져 스케치북에 그린 크레파스 그림을 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 조태용
아우랑가바드의 아침이 밝았다. 이틀간 묵었던 유스호스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짜이 한잔과 오믈렛과 버터 바른 식빵 4장으로 해결했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오르차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한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직접 가는 기차도 있지만 자주 있지 않아서 아우랑가바드에서 부사왈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전시로 가는 야간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표는 아우랑가바드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아우랑가바드에서 부사왈 가는 버스는 대부분 아잔타를 경유해서 간다.

▲ 아잔타석굴 사원 앞 주차장
ⓒ 조태용
뜨거운 태양이 가득한 데칸 고원을 가로질러 가는 공영버스는 무더웠다. 대지를 적시는 비는 구경한 지 오래되었고, 마를 때로 마른 대지엔 싱싱한 나무 한 그루 보기 어렵다. 오래전에는 밀림이었다는데 밀림은 보이지 않고 마른 풀섶들만 찡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버스에 달린 모든 창문을 열고 달려 보지만 밖에서 부는 바람조차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어 창문을 여나 닫으나 그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승객 모두 지친 모습으로 버스 타고 있다.

아우랑가바드를 떠난 지 30∼40분이 지나자 버스에 탄 승객들이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아잔타라면서 여기서 내릴 것이냐고 묻는다. 아잔타에 가지 않고 부사왈로 간다고 하니 의외라는 듯 바라본다.

이 버스를 타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아잔타에서 내린다고 한다. 아잔타에는 몇 대의 관광버스가 승객을 내려주고 있었다. 아잔타를 보지 못한 아쉬움 보다는 저 뜨거운 곳에서 버스를 내려 유적지로 향하는 이들이 체험할 더위를 생각하니 차라리 다행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 부사왈의 메인 바자르(시장)
ⓒ 조태용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는 왁자지껄한 시골장터에 우리를 내려준다. 여기가 부사왈 역이라고 한다. 염소 우는 소리와 발걸음을 옮기는 소,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역 앞에 부산했고, 말을 타고 멀리 들로 향하는 남자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우리는 지금 바오밥나무가 있는 오르차로 가고 있다. 오르차를 가기 위해서는 잔시까지는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 시간은 밤 10시 우리가 부사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부사왈 역 앞에는 꽤 큰 시장이 있었다. 부사왈의 메인 바자르다. 인도에서는 시장을 '바자르'라고 하는데 우리가 '바자회'라고 사용하는 용어의 어원이 바로 이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무엇을 할까?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은 함께한 동행들이 있어서 이럴 때 문제가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여섯 명이 의견을 내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일들이 하나는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부부만의 여행이다 보니 재미있는 일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선 바자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삶을 지탱하고 연결해주는 곳이 시장이다. 장터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에 여행자는 장터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장을 보러 다니는 인도사람들과 함께 장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헬로 포토~~ 사진 찍어 주세요.
ⓒ 조태용
"헬로 포토."

내 카메라를 보고는 한껏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어 달란다. 사진을 찍는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나에겐 시간이 많다. 그들의 기대만큼 나도 유명한 사진작가라도 되는 것처럼 폼을 내면 사진을 찍어본다. 그들도 재미있고, 나 역시 재미있다. 그것을 통해 돈이 생기지는 않지만 둘 다 기분 좋은 상생의 거래다.

▲ 사진기 앞에서 자연스러운 인도사람들
ⓒ 조태용
모두 표정이 자연스럽다. 사진이라는 도구 앞에서 결코 가식적인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다수의 한국인은 카메라 앞에 서면 부자연스러운 억지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런 것일까? 사진 찍혀 불이익이라도 당한 사람이 많은 것일까? 그들의 환한 표정과 우리의 어색한 표정이 주는 차이 앞에서 고개가 갸웃 해진다.

▲ 토마토와 고구마를 팔고 있다.
ⓒ 조태용
▲ 향신료와 쌀을 팔고 있다.
ⓒ 조태용
▲ 장터에서 흥정하는 모녀
ⓒ 조태용
부사왈 바자르는 30%는 장신구와 옷을 파는 곳이었고, 20% 음식점, 그리고 나머지는 농산물이나 생활도구들을 파는 곳이었다.

농산물 시장은 꽤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골목으로 길게는 1km에서 짧은 곳은 100미터 정도에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좌판에는 붉은 토마토와 검은 가지, 녹색의 채소들 그리고 색색의 과일과 향신료들이 어우러져 스케치북에 그린 크레파스 그림을 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인도의 농촌 역시 황폐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토마토 구입했다. 1kg이 단돈 4루피다. 우리 돈 100원 정도다. 이 마른 땅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어려움이 많을 테데 인도에서도 농산물 가격은 바닥을 치고 있다.

인도에서 지난 10년 동안 자살한 농민의 수가 15만 명이었다고 한다. 15만이라는 숫자는 내 고향 김제의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그 많은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인도의 농촌 역시 황폐화되어 있다. 소매상에서 4루피라면 도매상이 농민에게 주는 돈은 얼마나 되겠는가? 인도 농민들의 막막한 삶의 무게가 전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마치 인도 시장에 시장 조사를 나오고나 감시관이라는 된 곳처럼 시장 골목 골목을 탐색하듯 걸어다녔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주는 나른한 자유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젖어드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더위다.

▲ 어디선가 나타나 수줍게 사진을 찍어 달라던 16세 소녀
ⓒ 조태용
▲ "예쁘지 않아?"라고 물었더니, "예쁘네"라고 답변하는 아내. 하지만 웬지 가시가 느껴진다.
ⓒ 조태용
우리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2층 건물에 올라 계단에 앉아 잠시 태양을 피하고 있었다. 아내는 물을 사러 장터로 내려가고 혼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인도 소녀 하나가 나타나더니 사진을 찍어 달란다.

수줍은 미소를 가진 소녀는 이제 막 16살이 되었다고 한다. 웃는 모습이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웃고 또 찍어주면 사진을 보고 웃는다. 잠시 후 아내가 나타나자 소녀는 나타났던 곳으로 사라졌다.

덧붙이는 글 | 지난 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유기농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네팔여행, #부사왈, #바자르, #토마토,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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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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