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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여기저기에 물웅덩이가 생겼네요. 일부러 세차 안 해도 차가 저절로 다 씻겨지겠네요.
ⓒ 이승숙
종일 질금질금 비가 왔다. 비가와도 비설거지 할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집 안팎을 둘러봤다. 어디를 쏘다니다 왔는지 비를 쫄딱 다 맞은 우리 집 삽살개 '갑비'가 추레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개 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아유, 냄새. 너, 저리 안 가?"

우산을 휘두르며 겁을 주었더니 갑비는 저만치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는 않는다. 그 충성심이라니…. 내심 흐뭇해하면서도 개 냄새가 싫어서 다시 한번 노려봤다. 그랬더니 꼭 벌 받는 아이처럼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내 눈을 슬며시 피하는 거였다.

비 오자 여기저기에 물웅덩이가 생겼네

큰길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 군데군데 움푹하게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아이고 저기에 기어이 물이 고였네. 공사하는 사람들을 닦달할 걸 그랬나? 하지만 해 나서 마르면 금방 괜찮아질 테니까 그냥 놔두자.' 속으로 중얼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초봄에 우리 집 앞의 논을 어떤 사람이 샀다. 그 논은 좀 움푹한 논이었는데 땅을 산 사람이 토목공사를 해서 땅을 좀 메웠다. 그때 흙을 실은 큰 트럭이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차 무게에 눌려서 푹푹 꺼져버렸다.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길을 다시 손봐주긴 했지만 좀 지나자 움푹하게 파인 곳이 여기저기에 몇 군데 생겨 버렸다. 다시 손봐 달라고 해야 하지만 그냥 놔둬 버렸더니 비가 오자 물이 고여 물웅덩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 우리가 이사 들어올 무렵(2000년 3월 경)의 진입로 모습입니다.
ⓒ 이승숙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길은 비포장 흙길이다. 어지간한 길은 다 포장을 해주는 선진농촌에 살고 있는데도 이사 들어온 사람이 사는 집이라서 그런지 도통 길 포장을 안 해준다. 이사 온 지 벌써 8년째인데도 우리는 아직도 비포장 흙길로 다닌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동네 이장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이장은 우리 집과는 조금 떨어진 윗동네에 사는데 마침 부치는 논이 바로 우리 집 앞에 있었다. 그래서 일철이면 일하러 논에 오는데 그때 우리는 로비를 하는 것이다.

맥주 한 잔으로 길 포장 로비를 해보지만...

"이장님, 이리 와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세요. 목 좀 축이고 일하세요."

우리 집 앞 논에 일하러 온 이장을 발견하면 남편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그러면 이장은 다 알면서도 꼭 한번은 뺀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그러면서 덕담하기를 잊지 않는다.

"김 선생은 집 참 잘 구했시다. 시원하고 얼마나 보기 좋으꺄?"

이장님과 우리는 속에 든 이야기는 뒤로 돌린 채 이런저런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끝에 가면 본론이 나온다.

"김 선생, 올해는 이미 계획이 다 잡혀서 안 되지만 내년 예산에는 꼭 넣을 테니까 기다려 봐요."

맥주 한 잔으로 길 포장 부탁 로비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내년이 계속 내년으로 넘어가곤 하는 거였다.

▲ 해마다 "내년도 사업에 넣었으니까 포장 될 겁니다."라고 우리 동네 이장은 말하곤 했지만 아직도 비포장입니다.
ⓒ 이승숙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우리는 이런저런 궁리를 하게 되었다.

'저 양반이 뭘 바라고 저러는 걸까? 식사를 한 끼 대접하면 될까? 봉투를 바라는 걸까?'

그래서 옆집의 한씨 아저씨와 의논을 했다. 한씨 아저씨는 밥만 한 끼 사자고 했다. 그런데 차일피일하다가 보니 이장이 새로 바뀌게 되었고 새 이장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로비를 할 길도 없어지고 말았다.

다섯 집만 되면 길 포장을 해준다는데...

그러구러 세월이 갔고 우리는 어느새 흙길에 익숙해져 버렸다. 가을에 코스모스가 피어서 한들거리면 나름대로 위안을 하기도 했다.

'봐, 흙길이니까 코스모스도 피는 거야. 시멘트 포장을 했으면 꽃이 피겠어? 그리고 흙길도 운치 있고 좋은 길이야.'

우리 집은 동네에서 떨어져 있는 외딴 집이다. 집으로 드나드는 길도 따로 있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다. 우리 이웃으로는 있는 듯 없는 듯이 조용한 송씨 아저씨네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정년퇴직을 한 한씨 아저씨가 서울에서 이사를 왔다. 한씨 아저씨네가 이사를 오면서 우리 집 앞길을 이용하는 집은 세 집이 되었다.

길을 이용하는 집이 다섯 집만 되면 면사무소에서 자동으로 길 포장을 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앞으로 두 집만 더 들어오면 길은 포장될 것이다. 한씨 아저씨네 옆의 밭이 도시 사람한테 팔렸고 또 그 뒤에 있는 빈집도 누가 샀으니 기다리면 길은 자동으로 포장될 거 같다.

▲ 집 뒤에 있는 오솔길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교회 갈 때 애용하던 길입니다. 집 앞으로 시원하게 길이 뚫리자 이 오솔길은 자연스레 잊혀져 갔습니다. 지금은 잡초에 묻혀서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 삽살개 '갑비'가 순찰을 도는 모양입니다.
ⓒ 이승숙
우리가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그때는 길이 없었다. 아니 길은 있었지만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본래 지적도 상에는 넓은 길이 있었는데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꾸 파먹어 들어가서 지게 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만 있었다.

먼저 살던 집주인이 땅을 팔려고 보니 길이 없어서 거래가 잘 성사가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전주인은 땅을 팔기 위해서 길을 찾았다. 본래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 있었지만 아래 위 논이 다 파먹어 들어가서 길이 없어졌던 것을 다시 찾은 것이다.

길 아래 위의 논 주인들은 기분이 별로 안 좋았을 것이다. 내 땅처럼 여기며 농사짓던 땅을 길로 내놓아야 했으니 꼭 땅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웃사촌으로 한 동네에서 오래 같이 살았던 사람이 공사를 했으니 쉬웠지 우리처럼 들어온 사람이 길을 찾겠다고 나섰다면 아마 길 찾기가 엄청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길은 찾았다. 하지만 그 길은 길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길이었다. 대충 길 흉내만 낸 길이라서 아주 불편한 길이었다. 비가 오면 진창이 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고 더구나 큰길 밑으로 축대를 쌓지 않아서 얼마 안 가면 무너져 내릴 거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이사 들어오면서 축대도 쌓고 자갈도 부어서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백만 원에서 몇만 원 빠지는 돈이 공사비로 들어갔다. 옆집이 있어서 같이 공사했으면 돈이 덜 들었을 텐데 그때는 우리 집밖에 없어서 우리가 생돈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갈을 부어서 비가와도 질퍽이지 않도록 길을 다듬어 놓았지만 그래도 워낙 바탕이 흙길이라서 그런지 한 해 지나면 또 질퍽거리는 곳이 생겼다. 자갈이 흙 속으로 다 스며들어가 버리는지 매년 자갈을 부어 주어야 했다. 처음엔 그 일을 우리가 도맡아서 하다가 나중엔 한씨 아저씨네와 같이 하게 되었다. 송씨 아저씨네는 차도 없고 해서 길 작업 할 때 드는 돈을 거두지 않았다.

▲ 길을 찾아서 길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비포장입니다. 비 오면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생기는 흙길이지만 이 길도 나름대론 운치 있는 길입니다.
ⓒ 이승숙
작년에 자갈을 또 두 차 부었다. 군데군데 움푹 파인 곳을 메우기 위해 자갈을 부었는데 그때 한씨네 아줌마가 그러는 거였다.

"영준아, 이제부터는 길 공사할 때 송씨네한테도 돈 받자. 그 집은 차 없지만 그래도 길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줘야 해. 같이 이용하는 길인데 책임감을 가져야지."

말은 이리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돈을 받느냐 그러면서 그냥 넘어가 버렸다. 나중에 누가 또 이사 들어오면 그때는 그 집에도 돈 받자 그러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말없이 보여준다. 연령대도 다르고 살아온 이력도 다르고 삶에 대한 가치관도 다 다른 우리 세 집이지만 길 문제에서만은 항상 하나가 된다. 힘을 모아야만 포장을 할 수 있으니 저절로 뜻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간간이 세 집이 모이게 되면 이야기는 항상 길 문제로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별 대책이 없다. 다섯 집만 되면 길을 포장해 준다니 이웃이 더 늘어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길 만들었으니까 좋은 일 한 거지?

옆집 송씨네 아줌마는 예전에 길 없을 땐 겨울에 보일러 기름 넣을 때마다 고역이었는데 우리 덕분에 길이 생겨서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고 그랬다.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한번씩 다니러 올 때도 집 앞에까지 차로 들어올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그랬다.

그랬으면 되는 거다. 돈은 좀 들었지만 길 없는 곳에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들었으니 우리는 분명 복 받을 거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가끔 서로 자화자찬한다.

"길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 좋게 했으니 우리 분명 복 받을 거야. 동네 사람들이 교회 갈 때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됐으니까 우린 잘한 거야."

아침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더 있어야 하는 이른 새벽, 어둠을 몰아낼 듯 첫 닭이 운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 집 개들이 짖어댄다. 개 소리에 묻혀서 나직하게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교회에 다니는 동네 분들이 새벽 기도를 가는 소리다.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첫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이 열린다. 그리고 새벽 기도를 가는 발걸음 소리를 따라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 집 앞길은 낮에는 우리 길이지만 새벽에는 동네 사람들의 길이 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새벽 기도를 다니는 그분들로 해서 어쩌면 우리 집 앞길은 복된 길인지도 모르겠다.

태그:#비포장길, #시골길, #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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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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