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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들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보이더니 기어이 비가 내립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과 내일만큼은 일기 예보가 맞지 않기를 바랐던 아이들 얼굴에는 실망감과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얼마 전 이름이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전문계 고등학교'로 바뀐 실업계 고등학교에는 1년 중 6월경에 한번,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능사 자격시험의 필기시험을 면제해 실기시험만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필기시험 면제가 검정'이 치러집니다. 이를 보통 '의무검정'이라고들 부릅니다.

전문계 고등학교에는 책과 연필을 가지고 하는 공부에는 쥐약(?)인 아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필기시험을 꺼리는 분위기가 보통입니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의무검정에는 아이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 기능사 시험이 진행될 시험장과 굴삭기들. 한 대는 고장이고 다른 한 대는 비 때문에 포장을 덮어쓰고 있다.
ⓒ 이완구
바로 내일(22일)은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굴삭기운전기능사' 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그동안 무더운 날씨에도 하루하루 열심히들 연습에 임했고, 오늘만큼은 평소 지각하던 친구들도 아침 일찍 등교해서 장비를 한번이라도 더 다뤄보려고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굴삭기운전기능사' 시험은 운전면허처럼 S자 그려진 도로 코스를 전진했다가 후진으로 다시 돌아오는 주행 과제와 흙을 파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굴착 과제,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학생들은 주행용과 굴착용 2대의 굴삭기가 따로 구분되어 있어 각각 다른 장비로 연습해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장마가 시작되었답니다. 오늘 오후 늦게부터 시작되어 내일 오전까지 내리고 오후에 그친다고 합니다.

주행은 비가 내려도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지만, 굴착은 흙이 빗물에 진흙처럼 반죽되어, 멋지게(?) 흙을 옮겨놓고 평평하게 하는 과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하늘을 원망해야 했습니다.

오후에 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를 기대하며, 오전에 빗속에서 주행하고 오후에 비가 그치거나 줄면 그때 나머지 과제인 굴착을 진행하기로 산업인력공단 관계자와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아이들도 약간 안도했지요.

▲ 뒷바퀴에 문제가 생겨 멈춰버린 굴삭기
ⓒ 이완구
그러나 나쁜 일은 겹친다고 했나요.

갑작스레 주행용 굴삭기 한 대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뒷바퀴 베어링이 파손되어 주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소 연습하던 굴삭기로 시험을 치를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굴삭기야 모든 굴삭기가 다 똑같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소 운전하던 자신의 자동차로 면허를 치르기로 했다가, 갑작스레 다른 자동차로 운전면허시험을 치르게 된 상황이라고 하면 맞을 것입니다. 불쌍한 아이들….

교사들마저도 망연자실 분위기였지요.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밤새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부랴부랴 대형 천막용 비닐로 굴착하는 장소는 물론 굴삭기까지 한꺼번에 덮어놓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주변을 무거운 돌 등으로 눌러 놓았습니다.

인근 중장비 수리업체에 연락하여 급하게 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니, 지역에서는 부품을 구할 수 없고, 서울에서 직접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부품을 가져와도 저녁은 되어야 수리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들 시험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로 급하게 서둘러 달라고 부탁해 놓았습니다.

비와 장비 고장, 두 가지 문제 모두 아직 해결이 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교사 모두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오늘 저녁과 내일의 일기예보가 오보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태그:#굴삭기, #기능사시험, #실업계, #전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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