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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항에서 죽서루로 가다보면 왼쪽 바닷가 방향으로 야트막한 육향산을 만난다. 이 산위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8호인 척주동해비와 평수토찬비가 있다.

남인의 영수로 삼척 부사를 지낸 미수 허목이 비문을 지은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현종 2년(1661)에 건립되었다. 척주동해비는 '퇴조비(退潮碑)'라 불리듯이 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라진의 만리도에 건립되었다가 비가 풍랑으로 파손되자 1710년에 모사하여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산정에 세웠다.

▲ 척주동해비
ⓒ 변종만
삼척의 옛 지명인 척주는 폭풍과 해일피해가 잦아 고기잡이배가 부서지고 파도 때문에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었다. 당시 해일이 일면 30리 떨어진 관아 앞까지 물이 들어와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어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까지 직면하였다.

이때 신임 부사로 부임한 허목이 비석에 동해송(東海頌)이라는 문장을 새겨 바닷가에 세우자 물이 들어오지 않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농민들이 논밭에 농사를 짓고 어민들이 고기잡이를 하게 되면서 척주동해비는 영험한 비석으로 알려졌다.

평수토찬비(平水土讚碑) 역시 허목이 임금의 은총과 수령인 자신의 치적을 글로 짓고 쓴 것이다. 목판에 새긴 48자를 읍사(邑司)에 보관해 오다가 240여년 후인 1904년 왕명에 의해 석각하여 육향산에 건립하였다.

척주동해비 바로 전에 조선시대 외침을 막기 위해 영동 9개 군의 수군(水軍)을 관장하던 진영인 삼척포진성지(三陟浦鎭城址)의 표석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유서 깊은 성곽이 1916년 삼척항 축조공사로 인해 헐어 없어졌다는 게 아쉽다.

척주동해비에서 환선굴·대금굴 방향으로 직진해 가다보면 왼쪽에 삼척이 자랑하는 죽서루(보물 제213호)가 있다. 죽서루(竹西樓)는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강가에 자리 잡은 누각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누각의 동쪽에 있던 대나무 숲 속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죽장사의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나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는 서편의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 죽서루 풍경 1
ⓒ 변종만
▲ 영화 ‘외출’ 출연배우들의 기념물
ⓒ 변종만
▲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
ⓒ 변종만
죽서루에 들어서면 높이가 20여m나 되는 수령 350년의 회화나무 두 그루가 맞이한다. 나무 옆에 이곳이 영화 '외출'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주연배우 배용준과 손예진의 손바닥 도장 기념물이 있다. 누각 오른쪽에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옆에 강원도 관찰사였던 송강 정철이 죽서루 아래로 흐르는 오십천을 보고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관동별곡에 묘사한 것을 기념하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이 서있다.

▲ 죽서루 풍경 2
ⓒ 변종만
▲ 죽서루 풍경 3
ⓒ 변종만
죽서루는 암반 위에 지은 건물이라 하층 기둥 17개의 길이가 모두 다르고, 2층은 기둥이 20개나 되고 팔작지붕이다.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김극기가 쓴 죽서루 시가 남아있는 것으로 봐 12세기 후반에는 건축되어 있었고, 현재의 누각은 조선 태종3년(1403)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 터에다 새로 지은 이후 10여 차례 중수를 거친 것으로 보고 있다.

누각의 전면에 게시된 '竹西樓(죽서루)'와 '關東第一樓(관동제1루)'라는 현판은 이성조의 글씨이고, 누각 내에 게시된 '第一溪亭(제1계정)' 현판은 허목의 글씨이며, '海仙遊戱之所(해선유희지소)'는 이규헌의 글씨이다.

▲ 죽서루에서 보이는 동굴박람회장 풍경
ⓒ 변종만
죽서루는 동헌의 부속 건물로 접대와 휴식이 주목적인 향연을 위한 누각이라 관동 제1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주변경관이 아름답다. 그래서 화가의 그림이나 시인의 글속에 많이 남아있다. 죽서루는 자연과 잘 어울리는 구조이고 바닥은 우물마루(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워놓은 마루)로 되어있다. 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과 2002년 삼척에서 열렸던 동굴박람회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 죽서루의 용문바위
ⓒ 변종만
누각 왼편으로 암석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중 구멍이 크게 나있는 바위가 용문바위다. 사후에 호국용이 되어 동해 바다를 지키던 신라 문무왕이 어느 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었는데 용문바위의 구멍은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바위를 뚫고 지나가며 생긴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구멍을 드나들며 장수와 다복을 빈다.

▲ 용문바위 위에 있는 선사암각화
ⓒ 변종만
용문 바위 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10개 뚫어놓은 성혈암각이 있는데 선사 시대의 암각화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생산, 풍요, 다산을 상징하는 한국적인 원시신앙이다.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있었단다.

죽서루는 누각의 규모나 아름다운 주변 환경이 관동제1루로 손색이 없고, 용문암과 선사암각화·오십천·송강 정철 가사의 터·보호수 회화나무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죽서루, #외출, #송강 정철, #용문바위, #척주동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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