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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오랜만에 계룡시청 기자실을 찾았다.

그동안 가끔 한번 들러서 차 한 잔 마시곤 했던 곳인데도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특히, 4평 남짓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날따라 굉장히 넓어 보였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던 지방 일간지 계룡시청 출입기자들이 아무도 안 보이기 때문일까? 또한 출입문과 창문을 통해 기자실 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초여름 더위를 식혀 주기에 충분했고 어느 기업 사장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편안한 의자들은 앉아서 일을 하기 보다는 휴식하기 적당한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지역신문 기자가 설 곳은 어디일까

일단 기자실 안에 들어가서 아무 책상에나 앉아 시청에 들어오는 지방 일간지를 읽기 시작했다. 한참을 신문을 읽고 있는데 출입기자 한 명이 들어왔다. 분위기를 보더니 안보이던 기자들이 보이니까 어색했는지, 아니면 평소의 분위기와 달라서인지 이내 밖으로 나갔다.

지역신문 기자들이 기자실을 방문한 게 이상했나 보다. 기자가 기자실을 방문했는데 뭐가 그리 이상했을까? 한참을 있는데 다시 조금 전 그 기자가 들어오더니 갑자기 말을 꺼냈다.

"시위하러 왔나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아뇨, 취재하러 왔죠. 기자실이 취재지원 받는 곳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아 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 자리가 ○기자님 자리입니까?"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앉는 데가 자리죠."

이렇게 말을 했지만 계룡시청 기자실에 있는 4개의 책상은 분명히 주인이 있었다.

▲ 계룡시청 기자실에는 기자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책상이 아닌 지방일간지 기자 개인이 쓰는 책상만 놓여 있었다. 오른쪽은 열쇠로 굳게 잠겨져 있는 일간지 기자의 책상.
ⓒ 김동이

계룡시청 기자실 안에는 4개의 책상이 놓여져 있다. 전화기도 책상 수에 맞게 4대가 설치되어 있다.

계룡시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기자실 안에 놓여져 있는 4개의 책상은 기자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해 놓은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에 그 책상들은 지방 일간지 출입기자들의 몫이었다.

책상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고, 책상 위에는 개인 물품들이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 책상에나 앉아 일을 보고 있는데 어떤 기자가 들어와 마치 '여긴 내 자리인데 안 비켜주나'라고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허나 그러한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보고 있으려니 기자가 기자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 터라 뭐라 얘기는 할 수 없고 결국에는 참을 수가 없었는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즉, 계룡시청 기자실은 지역신문 기자들의 자리도 없고 비지고 들어갈 공간도 없이 지방 일간지 출입기자들만의 공간이었다.

계룡시에 있는 한 지역신문이 계룡시청에 출입하는 기자들의 기사를 분석한 결과 95% 이상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기사라는 보도를 했다.

이 말은 곧 지방 일간지 기자들이 계룡시청의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하자면 계룡시에 유리하도록 여론 조장을 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여 이 날 기자실을 같이 방문했던 지역신문 기자는 종이에 '앵무새방'이라고 써서 계룡시청 기자실 출입문 앞에 붙이기도 했다.

'앵무새방'이라고 하는 편이...

▲ 기자실을 방문한 지역신문 기자들이 기자실 출입문에 '앵무새방', '언론개혁'이라고 써붙이고, '계룡시청 기자실 폐쇄해야'라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탁자 유리밑에 넣었다.
ⓒ 김동이

"기자실에서 생산되는 기사가 비판기사는 없고 어떻게 거의 대부분이 시정 홍보기사여? 그럼, 기자실이라고 하지말고 차라리 앵무새방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뜩 '기자실이 운영되는데 한 달에 들어가는 시민의 혈세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같이 기자실을 찾은 다른 지역신문 기자가 담당부서에 전화를 걸어 기자실에서 사용한 전화비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정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부서에서는 기자실로 찾아와 정중하게 이렇게 말했다.

"정보공개 신청서를 제출해 주시면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기자실에서 취재하는데 참고자료로 쓰려고 정보요구를 하는데 신청서를 작성하라니요? 그건 일반 시민들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일반 시민과 똑같이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자료를 요구할 거면 굳이 기자실이 있어야 합니까"
"저희도 근거를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네요."


기자실 밖으로 나와서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자료를 내어 준다는 말이다.

시청에서 보도자료를 받아 제목만 다르게 그대로 전송하고 일반시민과 같이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야만 자료를 내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기자실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운영될 기자실이라면 더 이상 시민의 혈세가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당장 폐쇄해야 하며, 기자실 안에 있는 기자들은 기자실 밖으로 나와 뛰어다니면서 자료도 수집하고 전문가도 만나보고 해서 수준 높은 기사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계룡시청이 기자실을 폐쇄하지 못하고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목적이 본래의 목적인 취재 지원 차원이 아니라 계룡시의 치부가 들어 날까봐 또는 여론 조장을 위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기자실 공간을 시청 공무원들의 편의를 위한 휴게실로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 않을까?

한편, 이 날 계룡시청 기자실을 찾은 계룡시 지역신문 기자들은 계룡시청의 기자실 유지 방침에 맞서 계룡시민의 혈세가 계룡시청 기자실로 인해 헛되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자실이 폐쇄될 때까지 계속해서 방문해 묵언의 시위를 펼칠 뜻을 내비쳤다.

태그:#기자실 폐쇄, #계룡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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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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