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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품없는 잡석이라고 우습게 보지말자. 인연이 닿으면 그때는 보석보다 더 값지게 태어나리라!
ⓒ 방상철
주문진에서 강릉 방향으로 달리던 차는 ‘대관령고개’보다 험하다고 소문난 ‘진고개’를 넘기 위해 6번 국도에 들어섰다.

월정사 쪽에서 강릉방향으로 넘어갈 때는 내리막이 험했고, 그 반대로 넘어갈 때는 오르막이 험한 고개, 가파르면서도 굴곡이 아주 심한 탓에 고개 정상에서는 반드시 쉬고 넘어야하는 고개,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정상에 서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고개가 바로 ‘진고개’이다.

오늘 우리는, 그 고개를 넘어 꼬불꼬불 이어진 국도를 타고, 쭉쭉 뚫린 고속도로와 함께 나란히 달릴 것이다. 그것은 마치 빠름만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지금 내 생활에 대해 제3자 입장을 취해보기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회사는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사원들을 변화시키려 한다. 그 변화의 정도도 개혁이나 혁신이 아닌 혁명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를 맞기도 했다. 경영진에서는 요즘 부쩍 위기의식을 느끼고 사원들에게 정신무장을 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려 지내온 몇 달은,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정신없는 질주’ 그대로였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나고자 몸부림치는 요즘의 내 삶이 고속도로라면, 멀리 떨어져서 그런 나를 바라보게 해주는 이런 여행은 조금은 여유로운 국도일 것이다.

그렇게 여유를 찾아가는 길에서 우연히 한 박물관을 만났다. 6번 국도에 들어선지 15분 정도가 지나서 만난 그곳은 바로, ‘광물수석 자연사 박물관’이다.

▲ 광물수석 자연사 박물관(돌이야기) 입구. 지금 보이는 입구가 2층이고, 강가로 연결된 1층에도 전시물들이 많이 전시돼있다.
ⓒ 방상철
▲ 박물관 내부. 화석, 종유석, 수석, 분경 등 무려 1만 여점이 전시 돼있다.
ⓒ 방상철
처음에는 그저 조그마한 개인 박물관이기에, 간단히 시간때우기 용으로 입장권을 끊었다. 하지만 실제 안에 들어가서 보니,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기묘한 볼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들이 들려주는 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광물수석 자연사박물관(관장 임성동) 자리는 원래 이곳이 아니었다. 강릉시 오죽헌 근처에서 전시장을 처음 시작했었는데, 장소가 협소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가 개관 1개월쯤이라고 했다. 작년인가? 오죽헌에 갔을 때 가볼까 말까 하던 그 박물관임을 깨닫고,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 박물관 초입에 만난 ‘청풍 청거북’, 거북이 모양의 수석들을 입구에 전시한 효과가 있는지 들어가면서부터 ‘뭔가 볼만 하겠구나’라는 예감을 갖게 하더니, 사진도 맘대로 찍어가란 말을 듣고 좋은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
ⓒ 방상철
바닥에 드려진 안내표지를 따라 조용조용 관람을 시작했다. 한 가지, 한 가지 자세히 보려니 워낙 그 수가 많은 터라 걸음은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이는 성큼성큼 휘둘러보고 저만치 앞서간다. 아내는 다시 아이를 불러 옆에 붙들어 두고 찬찬히 보라고 타이른다. 나는 그 뒤를 쫓으며 가만가만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어느 수석 앞에 섰는데, 그 앞에는 분무기가 준비되어 있었고 감상 방법이 적혀있었다. 동해문양 해석(海石)이라고 적힌 수석을 제대로 관찰하려면, 분무기로 물을 뿌려보라는 것이다. 나는 적힌 대로 분무기를 들고 돌 위에 직접 뿌려보았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무늬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돌에 물을 뿌리자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멋진 무늬가 도드라졌다. 여기서 해석(海石)이란 부석(浮石)이라고도 부르며, 물 위로 반쯤 드러나서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를 뜻한다.
ⓒ 방상철
▲ 아내의 시선을 끌었던 흑장미 화석.
ⓒ 방상철

아내는 흑장미 화석 앞에서 순간 놀란 모습을 보였다. 어릴 때 중동으로 일하러 갔다 오신 작은아버지가 가져왔던 돌이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뭔지도 모르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가 어느샌가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데, 그게 이런 흑장미 화석이었다니 놀랄 수밖에. 잘 모셔두었다면 돈 깨나 받을 수 있었을까?

▲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는 벌집화석
ⓒ 방상철
▲ 갖가지 모양을 나타내는 수석들, 사람 모양이 인상적이다.
ⓒ 방상철
▲ 십자가 모양의 가공석도 참 인상적이었고....
ⓒ 방상철
▲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돌은 정겹기까지 했다.
ⓒ 방상철

위층 전시물을 다 둘러보고 아래로 내려가니 유리 장식장 안에 가득 들어있는 수많은 수석들이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돌들을 모으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쳤을까? 순간 이곳 관장의 외골수 같은 삶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다 둘러보니 시간은 1시간도 더 지나버렸다. 그런데 이곳에는 관람자들에게 쉬었다 가라고 배려해 놓은 실내 테이블과 야외 정자까지 떡 버티고 있어, 사람을 쉽게 보내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도, 먼저 왔던 사람들이 시원한 정자에 앉아 아래로 흘러가는 냇물을 벗 삼아 유쾌한 웃음소리를 소금강 끝자락에 흘리고 있었다.

그들을 남겨두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돌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고 마음에 새기도 또 새기며 진고개를 넘기 시작했다.

태그:#광물수석 자연사박물관, #진고개,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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