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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이야기를 잘하는 노래꾼이 있었다

10년도 전, 나 20대 때 그 노래꾼은 1000회 콘서트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젊은 양반치고 그가 부른 노래를 따라부르며 애닯아 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가슴 아파서, 군대에 끌려 가게 되어서,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두고 목이 메여서….

그 노래꾼은 콘서트에 온 관객을 간결한 문장으로 조곤조곤 웃기고는 했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 이야기를 들으러, 인생이야기를 들으러 콘서트에 갔다. 그리고 ‘나 사는 모양이 이래요’하는 이야기에‘아 나도…’하며 ‘우리의 씁쓸한 꼬라지’를 보고 웃었다. 소극장, 노래는 잔잔해도 웃음은 솟구쳤으리라.

그 노래꾼은 ‘나의 노래는 나의 빛, 나의 힘’이라 노래 불렀고 우리에게도 그의 노래는 빛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의 노래>는 ‘우리’의 노래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 멀리 갔다. ‘나의 노래는 나의 삶’이라니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작사는 다른 이가 했지만.) 노래가 삶이 돼버리면 삶은 어떡하나? 삶을 노래 부를 수 있지만 노래를 살아선 안되지 않을까? 이렇게 바꿔 보자. 배우가 삶의 경험을 무대로 불러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의 연기는 나의 삶’했다고. 글쎄….

누가 지금 나의 30대를 노래로 불러주오

그 옛 노래꾼의 노래 이야기, 인생 이야기 앨범을 좋아한다는 어느 블로거의 탄식에 한밤 중에 무릎을 쳤다. 20대 땐 그 노래꾼이 나의 이야기를 불러주었다. 근데 30대가 된 지금 누가 내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줄 것인가! 훌쩍 세상을 등지고 간 그 노래꾼에 대한 그리움이 흠뻑 배여 있었다.

아! 노래란… 그런 것이었다! 오랜 옛날, 시는 시, 음악은 음악, 연극은 연극으로 갈라지지 않았던 때, 애타는 누군가의 입에서 간장의 움직임이 곡조라는 모양으로 흘러나오던 말이 곧 노래였겠다. 노래는 내 사는 꼬라지, 내 마음에서 곡조 띠고 흘러나온 말이었던 것이다.

주머니 속에 음악을 넣어 버튼을 눌러 검색하고 지우는 이 시대, 화장실에 앉아서도 잘 만든 황홀한 노래를 듣는 것이 더 이상 황송하지 않은 요즘, 달래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또 다른 팬이 올린 그 노래꾼의 동영상 콘서트를 보면서 나는 몸이 근질거렸다. 노래 부르고 또 듣고 싶었다. 음반을 내고 또 산다는 게 신기해져버린 2007년 여전히 그 노래꾼의 음반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것엔 이유가 있었다.

그 노래꾼을 보지 못한 나이 어린 이들도 그의 노래를 아끼는 덴 이유가 있었다. 추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와 같이 노래로 나의 삶을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것이다!

어느 비 퍼붓던 날, 홍대앞 클럽에서 우리

30대에 들어서니 매일이 걱정이다. 머리와 가슴은 복잡한데 되는 일은 별로 없다. 작년 어느 비 퍼붓던 날 홍대 앞 클럽에 갔다. 공연 제작비를 마련을 위한 쇼케이스 파티였다. 복잡한 머리와 가슴도 클럽으로 따라들어왔다. 비가 와서 오히려 모여든 사람들로 빽빽하다 보니 클럽 안은 스팀이 자욱했다. 밴드들의 콘서트가 이어지던 사이던가?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해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그만 자지러졌다. 한참 보지 못했던 낯익은 얼굴도, 처음 보는 얼굴도 어느새 '우리'가 되어 낄낄거리며 그의 노래와 이야기에 환호했다.

그래, 내 손안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음악을,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는 것이 이런 거였지! 뻑뻑한 주머니 사정,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나이는 먹어가는데 뭐하나 뾰족하지 않은 데 따른 불안을 풀어 놓고 놀 수 있다니!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우리가 사는 이 시절이 하 수상하구나… 웃으면서 안도하고, 욕하고… 따져보고… 또 힘내고! 한바탕 웃음으로 날릴 수 없는 삶의 완강한 걱정들이 이렇게 극장에 입장 가능하구나! 제아무리 막대한 제작비와 광대한 스케일로 몸을 불린 블록버스터 영화관에서도, 찢어지게 우스운 장기 흥행 코미디가 상연되는 극장에서도, 걱정은 입장 금지였던 것이다.

어느 펑크락커의 콘서트장, 우리의 놀이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죽을 수도 없는
서글픈 인생들은 모두 모두 모두 이곳으로 오세요

도대체 묘한 옷차림의 펑크락커, 2007년 여름 우리를 대학로로 초대한다. 이번에야말로 대학로에 노래이야기판을, 좀더 본격적으로 벌였다고 한다. 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큰일을 겪은 것이 틀림없는 요 젊은이, 한동안 입을 닫고, 노래 부르지 못했던 그가 다시 노래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빈털털일 때도 우리를 반기고 달래주는 놀이터를, 가슴이 터져라 답답한데도 세상에 나가기 위해 어쩔 수없이 옷장문을 여는 마음을 노래부른다. 신용도 없는 주제에 의리는 지키고 보는 거라고, 꿈만 먹고 살 순 없지만 그래도 달릴 수밖에 없겠다고 큰소리 친다!

열아홉 살에 처음 만든 노래처럼 단순하게, 비비꼬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그가 부르는 펑크락의 세 가지 코드는 바로 열정과 서정 그리고 진정! 어느 펑크락커, 2007년 그의 노래가 우리가 기다렸던 ‘나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락커, #조영환, #김광석, #나의 노래,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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