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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현충일이었다. 가까운 지인과 함께 근처 계곡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가게 되었다. 대충 짐을 꾸린 후에 지인과 만나기로 한 안적사(부산시 기장읍) 계곡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간 안적사 계곡은 여전히 깊고 고운 속살을 가지고 있었다. 푸르청청한 나뭇잎들에는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 잎들에서 번져오는 숲의 향기는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난 내동 저수지는 한적한 모습이었고, 산새들의 청아한 음성이 계곡 사이로 불어와서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장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맛있는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난 얕은 계곡물에 피리를 유혹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장치라고 해봐야 작은 투망에 떡밥을 넣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에 본격적인 물놀이를 위해 장소를 조금 옮겼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지를 걷어붙이고 송사리를 잡는답시고 물로 뛰어 들었다. 나는 그 광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대며 찍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렌즈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자기도 DSLR기종을 갖고 있다면서 내 카메라와 렌즈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 사람과 나는 카메라며 렌즈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그 사람의 아이들이 물속에서 놀고 있었다.

▲ 계곡의 물놀이
ⓒ 김대갑
그런데 순식간에 그 사람의 네 살 배기 아들이 얕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는 누나들이 있었지만 누나들은 이제 겨우 유치원생들인지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못하고 멀거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그 사람은 렌즈 후드를 냅다 집어던지고 화닥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내아이를 잡아 당겼다. 다행이 사내아이는 물만 조금 먹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나도 놀라 물가로 달려갔는데, 아이는 물에 흠뻑 젖은 몰골로 아빠에게 얌전히 안겨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놀란 가슴을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빙긋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었으니, 참으로 기이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딱 2년 전에 내 아들도 같은 장소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일이 있었다. 그때 내 아들도 네 살이었고, 물에 빠진 장소도 그렇게 깊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나는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누나와 논답시고 물속에 들어갔다가 이끼 낀 돌을 밟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서려고 하면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물에 흠뻑 젖고. 그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던 나는 사진기를 냅다 팽개치고 맨 발로 화급하게 뛰어갔다. 오로지 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뛰었던 것이다.

그때 나의 행동은 조건반사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부성애 하나로 뭉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물속에서 꺼내어 품에 안고 집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는데, 발바닥이 자꾸 욱신거렸다.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발바닥이 살짝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맨발로 뛰어가다가 날카로운 돌부리에 찔렸던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허허 웃으면서 참 재미있는 인연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의 큰 딸이 우리 아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 더군다나 같은 반이지 않은가! 그 참 재미있는 일이라고 서로가 신기하게 생각했다. 같은 장소에서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한 것도 비슷하고, 각자의 자녀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니 우연치곤 기이한 우연이었다.

▲ 물고기가 어디 있나
ⓒ 김대갑
얼마 후, 그 사람이 먼저 자녀들을 태우고 안적사 계곡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사람을 반갑게 배웅하면서 자식을 위해 몸을 내 던지지 않는 아버지들의 부성애를 새삼 생각하게 됐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까 점심을 먹을 때 지인과 내가 서로의 아이를 구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생각났다. 그때 지인도 자기 아이를 구하기 위해 급히 뛰어가다가 상처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어찌 이리 우연이 잘도 겹치는지!

요즘의 아빠들은 옛날의 아버지들과 달라서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지인도 그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왜 그럴까 하고 잠시 생각해봤다. 아마 우리가 자랄 때 유독 무뚝뚝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은 아닐까 한다. 옛날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참 무관심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지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일로 치부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버지와 거의 대화가 없었고, 아버지를 무척 어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부자지간의 정도 모자지간에 비해 그 깊이가 얕았던 것이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다르기도 하지만 가장 보기 좋은 것은 가족 간의 정겨운 모습인 것 같다. 예전의 그 엄격하고 무관심한 아버지가 아닌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가 보기에 훨씬 좋은 것이다. 문제는 그 도가 너무 지나쳐 모 재벌처럼 비정상적으로 표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되, 이성적으로 도덕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에 대해서는 때론 엄격함을 유지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성적인 태도를 갖추기까지 아버지의 엄격함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에서 만난 기이한 인연은 그 사람이나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들꽃들에서 가향이 아낌없이 흘러나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연, #안적사, #계곡,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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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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