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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이 맞긴 맞나 보다. 5월 내내 어린이, 청소년, 노부모 문제에 대한 심층 보도가 줄을 잇더니 이번엔 '대책 없는 노후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유난히 핏줄에 대한 집착과 헌신이 대단한 우리나라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식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정년 보장이라는 철밥통이 급격하게 무너진 지금 직장인, 자영업자 불문하고 모두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사정이 대부분. 그러나 그 알량한 노후자금조차 뒷바라지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자식들 때문에 언제 없어졌는지 모른 채 날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자식들 공부 시키고, 결혼 시키고 집까지 마련해줘야 하는 요즘 부모들. 능력과 자산이 상당한 부모 빼고는 자신의 노후는 그야말로 황무지 위에 내던져진 꼴 되기 십상이다. 60이 내일 모레인데 모아 둔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는 우리 부부 처지엔 더더욱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며칠 전에 모처럼 우리 집을 찾아 와서 한바탕 하소연을 하고 간 친구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3년 넘게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친구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장기 입원을 하고 계시니 그 양반은 순전히 돈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계신 셈이다.

친구도 남편 월급으로만 사는 형편인데 제 자식 삼남매 뒷바라지 하고 나름대로의 품위 유지를 하고 살려면 여유가 없는 형편이었다. 더구나 남들처럼 재테크에 능한 성격도 아니니 있는 재산이라곤 40평도 안 되는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벌써 4년째 어머니 병원비로 들어가는 돈이 매달 수백만 원이니 뭔 수로 빚을 지지 않겠는가. 어머님을 조금 더 가격이 싼 노인 전문 요양원으로 모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그 곳에만 가시면 금방 악화가 되신다는 것이었다. 고생만 하고 사신 어머님이 불쌍해 최선을 다해 효도를 하는 친구 남편. 그 어머님도 가엾고 친구 남편도 가여워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졌다.

중병을 이기고 사지를 벗어났다고 느꼈을 때 온 천하를 얻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행복하고 살아 있음에 희열을 느꼈다. 가능하다면 가족들과 이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노후가 점점 현실이 되어 나를 압박하는 느낌이 든다.

속절없이 세월만 보낸 우리들. 자식 노릇, 부모 노릇 안 해본 것이 없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신 부모님께 제대로 자식 노릇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은 문득문득 죄인이 따로 없다는 자책감이 들게 한다.

그렇다고 지금 없는 돈이 앞으로 생길 리는 없고, 그저 우리 부모님 조금만 고생하시고 편안히 가시길 빌고 또 비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오래 살면 여기 아파, 저기 아파 골골대는 일밖에 할 게 없는데 죄 없는 우리 자식들 불쌍해서 어쩌나.

노후자금을 충분히 마련해 놓아 자식들 괴롭힐 일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 부부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가여운 우리 자식들 몫으로 돌아갈 판이다. 부모나 자식이나 마음먹은 대로 못 해주는 마음이야 오죽할까.

'효도'가 어떻고, '어르신 봉양'이 어떻고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는 휴머니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노인문제.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게 바로 노인 수발의 핵심 아닌가. 부모 부양을 거절하는 자식들 때문에 핑퐁게임처럼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시는 어른들을 여럿 뵈었다.

있는 재산을 맏아들에게 일찌감치 물려주신 성질 급한 내 친구 어머니는 "재산 물려준 형 집으로 가시지 우리 집으로 왜 오시느냐?"고 반발하는 작은 아들들 때문에 사위 눈치 보며 딸자식 집에 얹혀 사시고 있다.

부모님 생활비와 병원비를 십시일반으로 형제들이 공평하게 부담하는 집은 그나마 갈등이 적다. 그러나 형제가 아무리 많아도 이 핑계 저 핑계 들이대며 모른 척하고 결국 제일 마음 약한 한 자식이 부모님 생활비를 옴팡 떠안을 경우 결국 형제간에 의절을 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례도 몇 건 보았다.

앞으로 십여 년 안에 선진국처럼 사회보장이 될 리도 없으니 노인문제는 순전히 개인이 감당할 무거운 짐이고 우리가 벌써 그 범주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혼자 쪼그리고 앉아 마당의 풀을 매다 문득 내 노후를 생각해 보니 막막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갈수록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여지껏 부은 국민연금이 대충 오십만 원 가까이 나올 것 같으니 그것을 기본으로 하고 먹을거리는 내 몸뚱이 움직여 자급자족을 해야겠다. 바람이 있다면, 지루하게 오래 살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죽는 것뿐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정말 내 마지막 소원은 잘 죽는 것이다.

태그:#노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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