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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어
ⓒ 최성민

계절마다 나는 곡식과 열매가 다르듯이 철따라 잡아올리는 생선도 다르다. 해마다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갈 무렵이면 갯벌을 두른 해안 지방에서는 맛난 생선이 넘쳐난다.

생선들이 알을 가득 품고 연안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물론 산란기에는 어로를 제한할 필요가 있지만 예전부터 고기가 풍성한 곳에서는 이때 파시가 열리기도 하는 등 '고기세상'을 이루었다.

이맘 때 갯벌은 '고기세상'

▲ 송도부두 생선위판장
ⓒ 최성민
해마다 이 때쯤 나는 갯벌 음식을 들어보자. 우선 보리가 누릇누릇 고개를 숙일 무렵 뻐꾹새가 울기 시작하는데, 이 때 갯벌이 선사하는 것이 '송어'라는 생선이다.

중부 이북에서는 이 고기를 밴댕이라고 알고 있는데, 밴댕이와 송어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다른 고기이다. 또 남부지방에서도 송어와 웅어를 혼동한다. 송어는 웅어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웅어에 비해 꼬리가 짧다.

송어는 그물에 걸려 바작에 담겨 동네로 들어온다. 몸통에 해초를 간혹 감고 있는 것으로 봐서 갯벌밭에 해초를 뜯어 먹으로 오다가 잡히는 모양이다.

이 무렵 송어는 다른 바다 생선들처럼 알을 잔뜩 품고 있다. 이 송어를 화롯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왕소금을 뿌려 구우면 노란 기름을 지글지글 내뿜으며 구수하게 익는다.

송어가 나올 무렵 동반하여 올라오는 병어는 이맘때 풍어가를 부르게 하는 생선이다. 큰 병어는 '덕자'라고도 부른다. 어느 어부가 겁나게 큰 병어를 잡아 따로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동네 처녀이름을 붙였다고 하던가? 병어는 싹뚝싹뚝 썰어서 된장과 마늘을 함께 찍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물론 찜을 해 먹어도 살살 녹는다.

이런 생선들 틈에서 '나도 좀 알아달라'는 듯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딱돔'이다. 여수쪽에서는 이를 '금풍생이'라고 하여 매우 별난 음식으로 취급하며 주 메뉴로 내놓아 값도 비싸게 받는다.

그러나 다른 걸물 생선들이 넘쳐나는 신안 등 남서부 갯벌지역에서 딱돔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그러나 된장이나 고추장을 조금 넣고 조림을 하거나 왕소금을 대충 뿌려 구워 놓으면 딱돔의 구수하고 쌈박한 맛은 다른 생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회로 먹고, 구워먹고, 찜쪄먹고, 끓여먹고... 쥑이네

▲ 병어
ⓒ 최성민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치'자 붙는 생선(가시가 많지만 대개는 맛이 좋은 생선을 가리킨다) 가운데서도 준치는 으뜸이다. 준치도 이때 난다. 회나 조림을 해 먹으면 둘이 먹다가 세 명이 죽어도 모른다.

이때 나는 갯것 가운데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갑오징어이다. 갑오징어가 많이 날 때는 갯벌가에 막 밀려오기도 한다. '널'이라고도 하는 딱딱한 '갑'을 빼고 살짝 데쳐서 초장을 찍어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어도 죽인다.

이런 생선들이 한 마당 잔치를 벌이고 간 뒤 모내기가 끝나고 장마 뒤 초여름이 시작되는 7월 초 쯤엔 신안 갯벌 생선의 군자 '민어'가 드디어 세상에 올라온다. 중부 이북이나 서울 사람들은 이름조차도 잘 모르지만 민어는 신안쪽에서는 생선 중의 생선이다.

20여 가지 부위로 나누어 회로 먹고 뼈와 내장은 매운탕을 끓이면 개운하고 구수한 맛을 어느 음식에 비할 수 없다. 이런 생선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서울사람들에 비하면 남도 갯벌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 딱돔
ⓒ 최성민
남도 갯벌 영양식, 젓갈을 빼놓을 수 있나

이런 생선들만이 남도 갯벌 '영양식'의 전부는 아니다. 남도 여느 바닷가 식당에 가보면 이런 생선들로 조림, 구이, 찌개, 찜 말고도 빠짐없이 젓갈을 서너 가지 올린다. 그 젓갈 가운데 굴젓과 꽃게젓을 빼놓을 수 없다.

굴은 무침으로도 내놓지만 더운 계절엔 생굴을 먹을 수 없으므로 사시사철 굴을 먹을 수 있는 요령으로 만든 게 굴젓이다. 엄지 손가락만한 굴로 담가 한 3년 푹 곰삭은 굴젓은 깊고 구수한 맛으로 '밥도둑'이 되기에 충분하다.

꽃게젓도 남도의 원도 꽃게젓은 서울에서 맛보는 '게장'과 다르다. 서울 일반 식당의 게장은 공장에서 일반 꽃게에 조미료와 맛(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골국물이 아닐까?) 우린 국물을 일제히 부어 만든 것이기에 어디서나 맛이 통일돼 있다. 남도의 귀한 오리지날 꽃게젓은 갯벌 바위틈새에 숨어 사는 '뻘떡게'라는 것으로 담근다.

뻘떡게는 꽃게의 일종이나 꽃게보다 작고 억세고 색깔은 얼룩달룩 짙은 밤색이다. 이것을 적당히 잘라서 차곡차곡 오가리(작은 항아리)에 넣고 재래 간장만 부어 2주일 이상 두면 향기 갸륵한(?) '뻘떡기젓'이 되어 나온다. 입맛 잃었을 때 최고의 반찬이다.

남도 갯벌의 이런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곳으로 전남 신안군 지도면 송도 부두 생선공판장 주변 식당, 신안군 임자면 임자면사무소 앞 서울식당, 목포 옛 초원호텔 앞 초원식당, 그리고 목포 앞선창 부둣가 일대의 '준치회 보리밥 식당'들이 있다. 신안갯벌 오뉴월 생선 집산지인 신안군 지도면 송도부두 위판장에서는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신안 병어축제'가 열린다.

준치가 왜 준치인고 하니...

▲ 갑오징어
ⓒ 최성민
준치는 다른 이름인 '진어(眞魚)' 또는 '시어(時魚)'라 불리기도 한다. 진어는 생선 가운데 가장 맛있다 하여 '참다운 물고기'라는 뜻이고, 시어는 초여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음해 봄에 나타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에 충남에선 '준어', 평남지방에서는 '왕눈이'라 부른다.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은 원래 값어치가 있는 것은 낡거나 헐어도 어느 정도는 본래의 값어치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준치는 워낙 맛이 있는 생선이어서 다른 물고기와는 달리 썩어도 어느 정도 그 맛을 유지한다는 말이겠다.

준치가 다른 물고기와 다른 특징은 몸 전체에 뼈가 많다는 것이다. 준치가 뼈가 많은데 관한 전설이 있다. 즉, 원래 준치는 맛도 좋거니와 가시도 없어서 사람들이 준치만 먹으니 준치는 멸족의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이에 용왕이 모든 어류를 모아 놓고 준치 멸망지환(滅亡之患)의 대책을 토론한 결과 준치로 하여금 가시가 많도록 해 주자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용왕은 모든 물고기가 자기의 가시 한 개씩을 뽑아 준치 몸에 꽂도록 하니 너무나 많이 꽂아서 아픔을 견디다 못하여 마침내 달아나는데도 뒤쫓아가서 꽂으니 준치는 꽁지 부근에 까지 가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 준치
ⓒ 최성민
준치는 몸은 옆으로 편평하며 밴댕이와 비슷하나 몸집이 크다. 눈은 크고 두 눈 사이는 좁고 한 쌍의 골질 융기가 있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양 턱에는 가느다란 솜털 모양의 이빨이 한 줄로 줄지어 나 있다. 몸은 둥근비늘로 덮여 있으며, 옆줄은 없다.

난해성 어류로 연안이나 강 어귀 등의 얕은 곳에 서식하며 염분이 적은 물에서도 잘 견딘다. 우리나라에 회유해 오는 무리는 겨울철에 제주도 서남 해역에서 월동하다가 4~7월이 되면 북쪽으로 이동하여 강 하구나 기수역의 바닥이 모래나 진흙인 곳에서 산란하고, 그 후 서해안 및 남해안에 흩어져 서식하다가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이동하여 월동한다.

준치가 많이 잡히는 곳은 신안군 임자면 부남군도 일대이다. 이곳에서는 그물로 준치를 잡는다. 한편 서해 북부 연평도 해역에서는 4월~6월까지 준치 낚시가 성황을 이룬다.

준치는 향기롭고 맛이 좋지만 잔가시가 많고 억세므로 조심하여 먹어야 한다.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은 생선 중 하나이며 비타민B가 풍부하여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비슷한 내용으로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송어, #병어, #딱돔, #갑오징어, #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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