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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거제도에서 일터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준 멸치로 회를 무쳤습니다. 지리산 아래인 산청군 단성면에서 당귀·부추·참나물·취나물·상추 등과 버무렸습니다. 어머니께 한 접시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드리지 못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 배만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두 해가 되어 갑니다. 살아서 잘 해 드리지 못한 것을 돌아가신 뒤에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찾아가는 어머니의 묘지에는 아들에게 잘 보이려는 듯 잔디가 무성합니다. 그 잔디의 풀잎 하나가 모두 살아서 생긴 고통의 흔적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뜻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지요. 이 세상에 오기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일테지요. 시골의 어른들은 '세상을 버렸다' 혹은 '세상을 떠났다'라고 합니다.

돌아간 것이나 떠난 것이나 모두 현세의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간 것이지요. 하지만 단절을 뜻하는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를테지요. 아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어머니가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하여 만나지도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편해집니다. 그런데 저도 어머니가 계시는 그 세상으로 가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회는 만들지 못하고 국으로 젓갈로 먹었던 멸치

▲ 온갖 봄나물과 어우러진 멸치회가 어우러진 저녁밥상입니다.
ⓒ 배만호
지난 4일 밤, 태어나 처음으로 멸치회를 먹었습니다. 조그만 멸치를 손질하여 온갖 나물로 무쳐먹었습니다. 일터 사람들과 나누어 먹은 멸치회를 먹으며 자꾸만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는 봄이 오면 멸치를 샀습니다. 트럭에 싣고 시골을 도는 상인에게 좋은 멸치가 있을리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좋은 멸치를 고를 줄 알았지만, 마음에 드는 멸치가 걸리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그나마 맘에 드는 멸치를 사게 되면 회는 만들지 못하고 국을 끓였습니다. 멸치만 가득 넣고 끓인 국을 먹으며 봄날에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그리고 멸치젓을 만드셨습니다. 어린 아들은 구경을 하다 계곡에서 조그만 피라미를 잡아다 말립니다. 그게 마르면 멸치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멸치젓으로 여름날 풋고추를 찍어 먹으면 밥 한 그릇이 그냥 없어집니다.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는 산골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집은 된장과 멸치젓을 함께 찍어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광양만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으로 시집을 오셨지요. 바다 냄새가 그리울 때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조금 맛 보는 것으로 참았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자랑을 하십니다.

"오널 장에 해삼이 참 좋든디, 가올 수가 있어야제."

완행 버스를 타고 하동의 오일장에서 집까지 오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평소에는 40분 가량 걸리는데 장날은 손님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멸치회 먹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곳입니다. 2월의 모습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를 못하고 있네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 배만호
저는 해산물을 잘 못 먹습니다. 산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그걸 아시면서도 좋은 것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어 하십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어보고 싶은데,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멸치회 한 접시를 보며 어머니가 간절히 그리운 것은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멸치국과 멸치젓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온갖 생선회 가운데 가장 싸다고 하지만 쉽게 먹을 수 없는 멸치회를 먹으며, 저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

나즈막하게 한번 불러 봅니다. 중학교 다닐 때 한 번 달아드렸던 카네이션을 부끄럽다며 다시 떼어내시고는 그게 자랑스러워 일년 내내 벽에 걸어 두셨던 어머니. 어린 마음에 정말 그런 줄 알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어버이날에만은 일을 하지 말고 쉬시라며 열심히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이젠 그 흔한 카네이션 한 송이 가슴에 달아드리지 못하네요. 하지만 제 마음은 어머니께 언제나 있다는 것을 어머니도 느끼고 계실테지요.

태그:#어버이날, #멸치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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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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