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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PDF
'이명박·박근혜도 막판 단일화로 가자'

5월 7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의 제목이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예상이나 분석도 아니고, 동료나 같은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나 쓸 수 있는 '가자'고 하는 청유형의 문장이다.

참 헛갈리는 일이다. 김대중 고문이 <조선일보> 고문이 아니라 혹시 한나라당 고문이었나?

우파의 일장춘몽? "그럴 수는 없다"는 김대중

김 고문은 이 칼럼에서 "야당 지지나 비좌파 성향의 국민들은…후보를 단일화하는 페어플레이를 해줄 것을 고대해왔으나 독자의 길을 모색, 결국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그간의 우려가 결코 우려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좌파세력의 재집권을 봉쇄할 우파의 정치적 역량은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고 굳은 의지를 보인다.

따라서 "경선 시기를 대선에 임박해 늦추거나 아예 경선을 없애 두 사람이 원 없이 지지도를 올릴 만큼 올려보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볼 만큼 해보도록"하고 "그래서 5년 전 노무현과 민주당 그리고 정몽준 후보가 했듯이… 막판 후보단일화를 도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하도록 하자고 한다.

그야말로 한나라당 집권을 위한 '천기누설'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단결하고 이·박 두 사람이 양립하면 그 결과는 "두 사람의 정치적 사망이고 야당지지세력의 좌절이며 우파의 한계이자 대한민국의 숙명일 뿐이다"라는 결론으로써 심각한 경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부디 김대중 고문의 충정을 헛되이 말아야 할 것 같은 비장한 느낌이 든다.

특정 정파에 대한 호불호 못 쓸 이유는 없지만

일단 이 칼럼 내용 자체로서의 문제를 보자.

신문사 고문이라고 해서 특정 정파에 대한 호불호에 대한 내용의 글을 신문 지면에 올리지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이 언론과 권력집단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언론이 대선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법적으로 언론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는 보도를 금지하고 있음으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중립인 척 해왔다. 그러나 대선 때만 되면 언론이 지지 후보를 밝히는 문제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곤 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은 4일 오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당 화합과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근혜 의원이 간담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언론이 지지 후보를 밝히는 것도 언론이 대선 후보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지지하고 비판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나가는 차원일 것인데, 이번 칼럼의 내용과 같이 대선과 관련한 특정 정당의 정치공학적 절차에 대한 훈수에 나서는 것까지 허용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칼럼의 내용은 언론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이 글은 언론의 칼럼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의 대선기획팀에서 최고위원회에 보고한 건의서라 보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다.

아마 마지막의 결론만 "두 사람의 정치적 사망이고 우리 한나라당 지지세력의 좌절이며 한나라당의 한계이자 대한민국의 불행일 뿐이다"는 식으로 바꾸면 될 것이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정치인사관학교'

둘째로는 <조선일보>라는 조직 자체의 문제다. 이미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해오면서 '정치인사관학교'의 구실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병렬이나 서청원의 경우같이 오래 된 경우는 제쳐두더라도, 근래 이명박 전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캠프에 <조선일보>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합류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물론 이들은 과거 신문사에 근무할 때와 현재의 정치적 행위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대선 캠프나 국회의원 공천을 향하는 <조선일보> 사람들의 행렬은 줄줄이 이어지고, 신문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위해 훈수나 놓고 있는 형국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면 과연 이걸 언론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02년 12월19일 대선 당일, <조선일보>의 기념비적인 사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도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라며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는 최소한의 인내심만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김대중 고문은, 나아가 <조선일보>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자하는 지상 목표를 위해 언론이라는 최소한의 형식도 아예 벗어 던지기로 한 모양이다. 한나라당더러 대선 승리를 위해 막판 단일화로 '가자'고 한다.

김대중 고문은 이제 '위장심판 노릇' 그만하고 당당히 '선수'로서 한나라당으로 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대한민국 언론을 위해서나, 정치를 위해서나 나은 길인 것 같다. 그토록 좌파정권을 혐오하고, 햇볕정책을 비난하고, 이번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이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면서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왜 직접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서지 않고 신문사에서 칼럼이나 쓰고 있단 말인가?

태그:#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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