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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갑사 대웅전의 화려한 꽃창살.
ⓒ 서부원
계절의 여왕, 5월. 지금 남도는 어느 고장엘 가나 축제입니다. 장성 홍길동 축제, 담양 대나무 축제, 함평 나비 축제, 보성 다향제(녹차 축제) 등 손가락으로 다 꼽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꽤 알려진 곳에는 불과 며칠 사이의 축제 기간 동안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곤 합니다.

고장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막상 축제가 열리는 곳의 분위기는 대동소이합니다. 축제를 알리는 대형 애드벌룬 아래 한쪽에서는 왁자지껄한 품바 공연이 펼쳐지고, 고기 굽는 연기가 매캐한 장터에는 한 잔 술에 불콰해진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이미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 위에는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쯤 남도 지도를 펴 놓고 올해는 어느 축제를 보러갈까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보지만, 어차피 축제는 '사람 구경'이려니 하며 어련히 그럴 줄 압니다. 그런 북적거림이 조금 꺼려진다면, 요즘이 외려 차분한 전남 영광에 들러보길 권합니다.

외려 차분한 영광에 들러보시기를...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주말, 나비 축제가 한창인 함평 가는 길에 살짝 영광에 들렀습니다. 칠산 바다를 마주한 비산비야의 영광의 산자락에 보석처럼 박힌 내산서원과 불갑사를 찾아볼 요량이었습니다.

과거 영광은 삼남 지방에서 지방관이 가장 부임하고 싶어 하는 풍요로운 고장이었다고 합니다. 칠산 바다에 조기가 사라지고, 농업마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쇠락했지만,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인물과 명승이 제법 많이 남아 있는데, 이 두 곳이 그 대표 격입니다.

▲ 내산서원 입구에 세워놓은 수은 강항 선생의 동상. 저 멀리 서원이 보인다.
ⓒ 서부원
영광에서 함평 가는 길, 불갑면 소재지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채 1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내산서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 지어서인지 무척 새뜻하지만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 성리학(퇴계학)을 전파한 수은 강항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수은 강항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인 이곳 영광에서 의병들을 모집하고 친히 전라좌수영 이순신의 휘하에 귀속하고자 시도하다가 왜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내 일본으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했는데, 이때 성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승려 후지와라 세이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 조선의 성리학 이론을 가르쳤고, 후지와라 세이가는 불교를 버리고 일본에 새로운 성리학을 일으켜 일본 성리학의 비조가 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퇴계의 학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정작 퇴계보다는 수은 강항의 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담징과 백제의 왕인 등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인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등 '대단한'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하여 수은 강항은 역사 전공자들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조선 세조 때의 명문장가 강희맹의 5대손으로, <간양록> <근사록> 등 수많은 명저들이 일본 내각 문고에 소장될 만큼 뛰어난 인물임에도 크게 부각되지 못함은 아쉽습니다.

▲ 내산서원의 표지인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문장처럼 입구를 지키고 섰다.
ⓒ 서부원
그런 아쉬움 탓일까. 대형버스 십여 대는 너끈히 댈 만한 넓은 주차장부터, 우람한 동상과 홍살문, 정원처럼 꾸며 놓은 형형색색의 꽃밭과, 연못 위 정자가 하나 같이 크고 화려합니다. 워낙 넓고 새뜻하다보니 스승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서원이라기보다는 잘 가꿔진 공원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홍살문을 지나 300여 미터를 산책하듯 걸어 오르면 서원에 닿습니다. 입구에는 1868년 대원군이 이곳을 폐철하는 모습에서 최근 되살린 모습까지 두루 지켜봤음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버티고 섰는데, 자못 당당합니다. 이곳을 대표하는 표지라 할 만합니다.

사당인 용계사부터 강학당, 장서각에다 유물 전시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잘 갖춰진 번듯한 서원이지만, 이곳저곳 매달린 거미줄에다 문에 달린 고리가 모두 녹슬었고 뜰엔 잡풀만 무성하여 박제화된 유적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굳게 닫힌 유물 전시관을 뒤로 한 채 생각해 보건대 역설적이게도 이곳에서 수은 강항의 자취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강항의 자취 느낄 수 없는 내산서원

내산서원에서 부르면 들릴 듯한 거리에 불갑사가 있습니다. 수은 강항이 비록 유생이었지만 가까운 이곳 불갑사에서 오랜 기간 지낼 정도로 이 부근에서는 '열린' 공간이었던 모양입니다. 불교와 성리학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 어울리는 곳은 비단 이곳뿐만은 아닐 겁니다.

▲ '불갑사는 공사 중.' 소담한 부도밭에도 공사용 석재들이 널브러져 있어 볼썽사납다.
ⓒ 서부원
불갑사는 현재 공사 중입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대규모 공사가 한창입니다. 고즈넉해야 할 경내에 굴착기가 버티고 있고, 절 입구에 소담한 부도밭에도, 요사채 주변에도 자투리 석재들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경내도 대웅전과 법당 한두 채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 건물일 정도로 탈바꿈했고, 충남 부여 무량사 5층탑을 본뜬 석탑 한 기와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중흥사터 쌍사자 석등을 베낀 석등 두 기를 보란 듯 세워 두었는데, 어색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빼어난 산책로였던 절 입구의 흙길은 푹신푹신한 블록이 깔린 차도, 사람도 두루 다니는 새길로 바뀌었고, 짙푸른 숲이 터널처럼 하늘을 가렸던 천왕문 오르는 돌계단 길은 이미 네모 반듯한 돌이 깔려 예스러운 맛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갑사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볼거리에다 여전히 풋풋한 정감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가 중국 남방으로부터 바닷길을 통해 전래되었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전설과 수백 년 전 신심 깊은 목수의 땀방울 서린 정성을 보여주는 화려한 꽃창살이 그것입니다.

▲ 대웅전의 용마루 기와. 이것에 관해 밝혀진 바가 없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 서부원
이 고장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불교의 북방전래설이 '맞다'고 배웠을 텐데도 여전히 남방전래설을 믿고 있습니다. 384년 고승 마라난타가 칠산 바다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들이대는 증거도 한결 같습니다.

"왜 동네 이름이 법성포(法聖浦)겠습니까?"
"이 고장의 옛 이름이 뭔 줄 아세요? 바로 부용(芙蓉)입니다."
"불사(佛寺) 중 최초이자 으뜸이라고 해서 불갑사(佛甲寺)라고 이름 지은 겁니다."
"불갑사 대웅전 위의 용마루 기와 보셨죠?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지만, 남방 불교의 특징이 분명합니다. 다른 절에서 저런 것 보셨어요?"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전설과 역사적 사실이 마구 섞여 있긴 해도,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다 보니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묘미를 줍니다. 그것도 공부라면 공부고,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입니다.

풋풋한 정감 남아 있는 불갑사

대웅전 지붕 위 종기처럼 솟은 용마루 기와에서 독특함을 맛보았다면, 연꽃과 국화꽃이 어우러진 화려한 '꽃밭'을 구경해야 합니다. 대웅전 꽃창살에는 계절을 앞서 여름과 가을이 이미 와 있습니다. 목수의 신심과 정성, 정교한 기술을 단박에 느낄 수 있습니다.

▲ 누군가 대웅전 앞에 꽃바구니를 놓아두었는데, 꽃창살과 어울려 무척 화사해보인다.
ⓒ 서부원
누가 가져다놨는지 대웅전 앞에 화사한 봄꽃들이 수북한 꽃바구니가 놓여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무슨 재(齋)를 치를 모양입니다. 앞뜰에 서서 물기 가득 머금은 예쁜 꽃바구니를 보고 있노라니 뒤로 꽃창살에 달린 꽃들과 겹쳐졌습니다. 모르긴 해도 꽃창살을 만든 목수도 실제 꽃을 이렇게 앞에 세워두고 보면서 깎았을 겁니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것은 그 때문일 겁니다.

축제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휴게소 삼아 잠깐 들른 곳에서 그냥 멈춰버렸습니다. 바쁠 것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한나절이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번잡한 곳을 피해 사람 발길 뜸한 한적한 곳에서 보낸 하루가 훨씬 더 알찬 재충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영광에 들어올 때는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만 내산서원을 돌아 불갑사를 나서려니 어느새 짙은 구름 사이로 봄 햇살이 빠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 서해안고속국도 영광나들목->영광읍->함평 방향 23번 국도->불갑면소재지 불갑초등학교 지나 좌회전해서 800미터->내산서원->불갑사 표지판 보고 2킬로미터 막다른 길->불갑사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내산서원, #불갑사, #전남 영광, #수은 강항, #남방전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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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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