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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하는 힘>과 필자가 10년 동안 모아온 기록들을 담은 박스. 이 책은 40년 동안 모아온 노트 600권에서 뽑은 내용으로 엮은 것이다.
ⓒ 양승요
<계속하는 힘>은 누구나 아는 '꾸준함'을 강조하는 책이다.

만약 184쪽의 얇은 볼륨, 그리고 정말 희귀한(?!) 도요타 자동차 회장의 추천사가 아니었다면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1시간 30분 남짓 지하철을 타는 내내, 필자는 제법 깊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유사한 형식의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나 <인생수업>이 죽음을 매개로 한 '절박한 감동'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주는 삶의 활력과 상쾌함이 느껴진다(지지리도 일 못하고 밉상인 사람에 시달려봤다면 필자의 말이 쉽게 다가올 것이다).

40년 동안 써온 600권의 노트에서 뽑아낸 책

아직도 팔팔한 75세의 현역 경영자 다카하라 게이치로가 직접 쓴 문장들은 책의 주제만큼이나 소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내가 계속해온 것, 그것이 나의 인생이요 나의 능력이다."

약 2000여 년 전에 히포크라테스도 비슷한 투로 이야기했다. "당신이란 사람은 당신이 계속 먹어온 음식물이다(You are what you eat)" 뻔하고 별 거 아니다 싶은 말인데 생각할수록 가슴이 뜨끔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대학을 졸업했던 1997년이 떠오른다.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계속해왔던가? 저자는 40년 동안 기업을 경영해오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노트를 한 결과 그 숫자가 무려 600권에 달한단다. 이 책 또한 거기에서 뽑아낸 내용으로 엮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1998년 이후의 온갖 기록들을 모아놓은 박스부터 열어보았다. 생각보다 묵직하다. 600권의 노트만큼은 아니지만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흔적 정도는 재구성해볼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자문해본다. '나는 무엇을 계속해왔는가?' 딱히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2007년의 계획 가운데 지금껏 지키고 있는 것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회생활을 해왔는데, 생각보다 결과는 신통치 않다. 무엇을 했어도 적잖은 결과를 냈을 시간인데 말이다. 물론 굳이 도요타 자동차 회장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꾸준함'이 왜 소중한지는 알 '짬밥'은 됐다.

세상의 시계와 나의 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일은 결코 혼자서 안달복달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내 사정이 급하니까, 내가 '할 만큼 했다'고 느낀다 해서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보상은 불가사의한 세상 나름의 메커니즘에 따라 주어질 뿐이다. 결국 사람은 꾸준해야 뭐 하나라도 얻는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처럼 꾸준하지 못한 자신을 타박한다. 학생, 직장인, 예술인, 경영자, 시민운동가, 교사 등등 직업 불문, 남녀노소 불문, 보통사람의 최대 고민은 '작심삼일 증후군'이다.

2007년의 시작과 함께 세웠던 계획이나 결심 가운데 지금껏 지키고 있는 것은 과연 몇 개나 될까? 당장 누군가 이런 리플을 다는 것 같다. '누가 몰라서 못하나?' 왜 나는 꾸준하지 못할까?

이유 하나 - 인간은 본래 꾸준하지 못한 동물이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지음, 김영사)라는 책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끈기라는 것과는 인연이 없도록 진화해온(!)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현재의 상황'에 맞춰 모든 것을 생각하고 느끼는지라, 과거에 대한 평가도, 미래에 대한 예측도 현재의 상황에 따라 조석변개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 당장 효과를 실감하지 못하면 흥미나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다.

현재에 초점이 맞춰진 인간의 본능에 비해 인생은 참으로 느릿느릿 움직인다(복장 터질 노릇이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세태는 온통 티끌 모아 태산을 냉소하게 만든다. 정치-사회면 뉴스를 매일 읽고, 거기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악플'까지 계속 읽다보면 어느 새 마음은 조급(그리고 허무)해지고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거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물론 <10년 법칙>(공병호 지음, 21세기북스)이라는 책에서 말하듯, 10년을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결과가 눈에 뵈지 않는다. 마음은 끝없이 꾸준해야 한다고 게을러터진 우리의 몸을 강박해지만 효과는 신통찮다.

이유 둘 - 우리는 좀처럼 인생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를 꾸준함과 담쌓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자기성찰'의 부족이 아닐까?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는 당연히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오죽하면 '미래에 대한 공포'야말로 제1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들리겠는가). 인생에도 수능시험 대비 요령과 같은 '매뉴얼'이 있다면 오죽 편할까?!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기규정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것이 꼭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질문만은 아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적어도 '나'라는 사람이 해온 일이나 겪어온 체험, 만났던 사람, 읽어온 책들을 계속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은 앞으로의 삶에 적잖은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것들을 해왔구나. 이런 변화가 있었구나.'

기록과 성찰은 사람의 마음에 뚜렷한 이미지를 그려준다. 차곡차곡 '수익'이 쌓인다는 온갖 부자 통장만큼 자극적이진 않겠지만 인생을 좀 더 꾸준하게 살아갈 힘을 준다.

600권의 노트와는 언감생심 비교할 수 없지만, 10년 동안 꾸역꾸역 모아둔 메모, 기획안, 보고서, 이력서, 감상문, 영화표, 영수증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느끼게 한다(또한 운 좋게도 편집자이고 프리랜서 저술가로 일하는 덕분에 하나하나의 책이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이유 셋 - 우리는 과도하게 열심히 살려 한다

우리가 꾸준함과 담을 쌓게 되는 세 번째 이유는 너무 열심히 살려하기 때문 아닐까 한다. 1998년 벽두에 IMF 시대가 도래하면서 크게 히트했던 책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 지음, 생각의 나무)이다.

이 책을 필두로 시작된 자기계발 전성시대의 표준형 인간은 전철에서도, 회사에서도 '성공'을 향해 맹진하는 그런 사람으로 그려진다. 과연 그것이 계속될 수 있는 삶, 이른바 지속가능한 삶일까? 아니 행복한 삶일까?

물론 세상살이는 그렇게 만만치 않다. 적당히 일하는 시늉내고 공금 축내서 술판 벌이는 것이 좋은 인생살이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IMF 사태 이후 10년 동안 마라톤을 100미터 경기처럼 뛰라고 스스로를 강박해온 것은 아닌지.

급성형, 급질문 등 '급(急)'이라는 신종 접두어가 유행할 만큼 조급한 세태 뒤에는 분명 '성공 강박증'이라는 지난 10년의 흐름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은 그런 흐름을 잠시 멈추고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은 아닌지.

평생 감동, 평생 공부, 평생 청춘

<계속하는 힘>의 25페이지에는 올해로 90이 넘은 아오키 주로(靑木十郞)라는 첼리스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80이 넘으니 바흐의 맛을 알겠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4시간씩 연주 연습을 하고 악보 연구를 한다고 한다.

꾸준함은 참으로 좋은 습관이다. 대한민국 어느 도시를 가도 몇 십 년째 꾸준하게 제 맛을 지켜가는 음식점이 있다. 그런 곳에서 한 끼 식사를 하고 나면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두툼하게 쌓인 일기장이나 메모를 볼 때면 비록 대단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뚜렷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작정 강조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꾸준하게 공급되는 '에너지'가 없다면 꾸준함도 없는 것 아닐까. 75세의 인생 선배인 저자는 책의 말미에 '평생 감동, 평생 공부, 평생 청춘'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이 대목을 보는 순간 책 전체가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일벌레처럼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무조건 열심히 사는 삶'을 반대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 포인트이다. 가슴과 머리에 생기를 꽉 채워주는 충만한 삶이야말로 진실로 '계속될 수 있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책의 저자는 여성 및 유아 용품 생산업체를 40년 넘게 경영하고 있다. 나이 60세에는 아버지 병 간호를 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를 살려서 성인용 팬티형 기저귀를 개발했다고 한다.


계속하는 힘 -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게 하는

다카하라 게이치로 지음, 정락정 옮김, 이아소(2007)


태그:#노력하는 삶, #인생의 의미,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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